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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 Dec 04. 2023

천사는 있다




뺨을 어루만지는 차가운 아침 공기가 기분 좋습니다. 따뜻한 카페라테의 맛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습니다. 경쾌한 발걸음으로 도서관으로 가는 시간이 좋습니다. 서가에서 그림책을 고르고 펼쳐 읽으면 마음이 맑아집니다. 도서관에서 매주 수요일에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줍니다. 그림책을 읽어주며 함께 해 온 시간이 벌써 10여 년이 지났습니다. 그림책이 좋아서, 동화가 좋아서, 사람이 좋아서, 아이들이 좋아서 그렇게 모인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코로나시절에는 책 읽기를 할 수 없었는데 봄부터 다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과 율동도 하고 신나게 함께 뛰던 시간들이 지나 이제 무릎 관절도 좋지 않고 몸이 많이 무거워졌습니다.  봄을 맞이하며 활기를 찾는가 싶었지만 도서관을 가득 채우던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찾기 어렵습니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단체로 오던 아이들의 발걸음이 뜸해졌습니다. 빈 공간에 앉아 그림책을 들쳐봅니다. 눈부신 가을하늘을 바라보며 씩씩했던 의욕이 조금 떨어집니다. 사람들과 계속 만나고 싶고 그림책도 읽고 싶지만 빈 공간에 앉아 있다 보면 이제 그만 정리할까 싶은 마음이 밀려옵니다.




그때 문뜩 거의 매주 아빠의 손을 잡고 오는 예쁜 아이가 올랐습니다.

그 아이를 앤젤이라 불러보겠습니다.




언제부턴가 앤젤이 아빠의 손을 잡고 도서관에 왔습니다. 보통 아이들은 어린이집을 가거나 유치원에 가는데 4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앤젤은 몹시 부끄럼을 탔습니다. 어린이집 단체와 함께 그림책을 볼 때는 한쪽 구석에서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앉아 있었는데 기분이 별로 안 좋아 보였습니다. 그래도 싫지 않았는지 책 읽으러 거의 매주 왔습니다. 봉사자 중 앤젤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어지요. 그렇게 앤젤은 도서관의 단골손님이 되었습니다. 봄부터 다시 시작한 책 읽기에 앤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제 다 커서 유치원에 갔나 보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몇 달 후에 앤젤이 다시 등장했습니다. 지방에 잠시 다녀왔다고 하더군요. 오랜만에 만난 앤젤은 조금 달라져 있었습니다. 부끄러움도 없어지고 책을 읽으며 자신의 의견을 잘 이야기했습니다. 보지 못한 사이에 많이 성장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한 동안 가끔은 어린이집 단체로 온 아이들과 함께, 때로는 앤젤과 일대일로 책 읽기는 계속되었습니다. 거의 책 읽기 과외 수준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여러 명의 선생님이 한 명을 관리해 주는. 그러면서 저는 문뜩 이런 책 읽기가 계속되어야 하는지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한 명의 관객이라도 좋다지만 지속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었지요.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을 던졌습니다. 계속할 것인가?

그러다 어느 날 문뜩 이런 생각이 떠오르는 겁니다.



아! 앤젤의 우리 모두의 스승이었구나.



그림책을 읽게 하고 우울한 마음을 가지고 나와 풀 수 있게 해 주고 좋은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만나 서로 치유받고 있었던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삶의 어려움들이 생기고 주변 지인들의 죽음도 마음을 쓸쓸하게 하고 있습니다. 장례식장에 다녀올 때마다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지요. 동생이 아파서 병간호로 정신없는 언니들도 있습니다. 아침에 챙겨 먹어야 할 약들은 하나둘 늘어나고 병원을 수시로 들락거립니다. 그런 어지러운 우리들의 마음을 함께 나누며 위로받고 그림책을 읽으며 마음이 맑아지는 경험을 합니다. 이제 크리스마스를 맞이해서 작은 공연을 준비합니다. 무대를 만들어 가는 시간은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닌 바로 우리를 위한 시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연습을 통해 어려움을 함께 극복해 나가며 완성해 가는 무대와 함께 어울려 먹는 밥상에서 위로와 사랑을 느낍니다.




앤젤은 우리에게 온 행운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온 사랑이었습니다.  






사진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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