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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 Sep 23. 2023

단골손님

미용실에 다녀왔어요.



아침에 일어나 머리를 감고 거울을 보니 그런대로 마음에 든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 머리카락이 마르면서 점점 부풀어 오르는 데 있다. 태생이 반곱슬인 내 머리카락은 보통 잘 만져주지 않으면 부스스해지는데 비 오는 날은 더 심해진다. 그런 날은 머리가 찰랑거리고  윤기가 차르르 흐르는 볼륨매직이라도 해볼까 하다가 그만둔다. 기분전환이야 되겠지만 그 예쁜 모양이 얼미 지 못하고 잦은 파머와 염색으로 머리카락이 상하고 머리숱도 적어지는 것이 신경 쓰이기 시작해서다. 그래서 최근에 와서는 집에서 관리하고 한동안은 미용실 문턱을 넘어보지 않았다.


긴 머리를 단말로 자르고 싶을 때나 가끔 커트를 하고 싶을 때 미용실에 가면 미용사에게 먼저 "너무 짧지 않게 해 주세요."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이렇게 머리 손질 결과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지 않게 된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어릴 적 머리만 손질하고 나면 아무도 없는 구석에 가서 눈물을 뚝뚝 흘렸던 기억이 난다. 집에서 엄마가 그냥 최대한 짧게만 깎은 머리모양은 언제나 마음에 들지 않았고 촌스러웠다. 게다가 너무 짧아 머리카락을 아무리 당겨도 남자아이처럼 보였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중학교 때까지는 미용실에 가지 않았던 것 같다. 스무 살이 넘어 직장생활을 하면서 스스로 미용실을 다니기 시작했다. 월급을 타면 미용실로 갔다. 처음에는 곱실거리는 파마머리가 좋았다. 머리숱이 많아서 파머를 하고 나면 푸들 강아지처럼 풍성해진 머리가 마음에 들었다. 그러다가 얼마 못 가 매직을 했다. 그러면 머리카락이 찰랑거리는 것이 기분이 좋았다. 염색도 해보고 내 마음대로 길이도 짧게 했다, 다시 길렀다를 반복했다. 그 시절에는 머리카락을 붉게 염색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머리카락을 넘길 때마다 은은히 붉은빛이 도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그때 그 시절 머리카락이 검은색인 친구는 거의 없었다.


언제부턴가 미용실에 잘 가지 않았다. 기분 전환 겸 가끔 하뎐 염색으로 정수리가 휑해지고 머리숱도 적어지면서 덜컥 겁이 났다. 하얗게 길이 보이기 시작하는 정수리를 들여다보고 있자니  야속한 세월에 쓸쓸한 마음이 들었고 겨울이면 왜들 그렇게 모자를 하나씩 쓰고 나타나는지 알게 되었다.

파마를 하거나 해도 미용실 다녀와서 그때 잠시 뿐이고 매직파마를 하면 얼마 못 가 웨이브를 하고 싶고 웨이브를 해놓으면며 칠 못가 부스스 해지는 머리를 다시 곧게 피고 싶어 안달이 났다. 이렇게 머리카락을 못 살게 굴었으니 남아나지 않는 것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한동안 미용실에 가지 않으니 머리숱은 풍성해지고 상한 것들도 원상 복귀된 것 같았다.


그런데 미용실에 가지 않을 수밖에 없는 일이 생긴다. 앞머리를 길러보겠다고 열심히 고비를 넘어서며 뒤로 시원하게 넘겨 보니 얼마 못 가 또 마음이 변덕을 부린다. 그래도 앞머리를 조금 내려 보는 것이 한 살은 어려 보이는 것 같단 말이지. 그렇다고 앞머리하나 다듬자고 미용실로 가기는 좀 그렇잖은가! 그래서 집에서 잘 다듬어보다가 결국은 삐뚤어지고 너무 짧아져 이마까지 올라간 머리모양이  우스워지고 말았다.


오랜만에 미용실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가는 미용실은 동네에서도 서너 군데 되고 가끔은 길을 가다가 아무 곳이나 들어가기도 한다. 그래도 얼굴이 익은 곳이 두 곳 정도 있는데 오늘은 약국에 들렀다가 같은 건물 이층에 있는 미용실로 갔다. 발길 닿는 대로다. 손님이 좀 많아 보여서 다시 나와 옆 상가로 갔다. 이번에 가는 미용실은 그중에서 자주 갔던 곳이다. 원장님이 상냥하고 친절해서  많은 단골이 있다. 난 단골행세가 오히려 불편해서 이곳저곳 떠돌았다. 조용히 머리만 하고 싶고 조용히 커피만 마시고 싶고 그런 거였다.


그런데 가끔씩은 '단골손님'이라는 것이 흥미로워 보인다. 오늘 머리를 한 미용실 안에는 또 하나의 샵이 있다. 네일아트를 하는 곳이다. 가운을 걸치고 커트 준비를 하고 있는데 손님 한 명이 들어오면서부터 말을 시작한다. 네일아트 자리에 앉으며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동네애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미용실에서 오고 간다. 주식이야기, 입시, 어느 집의 사업과 사진 잘 찍는 집까지 알려주고 영양제와 병원 정보까지 알 수 있다. 정보뿐이겠는가 어려운 일을 당한 사람을 걱정하고 위로하는 일들도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나는 머리를 하러 가면 주로 잡지책을 읽었다. 요즘은 단골손님이 되어 함께 편안하게 아무 때나 들려 수다를 나누는 것도 재밌어 보인다. 사랑방처럼 모여드는 사람들이 즐겁게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 행복이 꽃피는 것 같다.


여행길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 말을 걸고 인생을 나누는 것도 좋고, 매일 걷는 동네 골목에서 떡볶이가게 언니와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습관처럼 들르는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때가 되면 머리를 다듬으로 들르는 가게에서 편안하게 일상의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네 단골손님이 되는 일도 즐거운 일이겠다.





사진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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