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거기서 거기’에 대한 단상
1
얼마 전 누군가에게 의견을 물은 적 있다.
“A와 B 중 무엇이 나을까.”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소심하게.
“ ~관점에서 보면, A나 B나 거기서 거기이겠지만…”
내가 내뱉은 말을 곰곰히 생각해본다. 오늘 무언가를 읽다가 문득 ‘이것들(이런 문제의식/개념/접근 들) 또한 다 거기서 거기’라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다 거기서 거기.
과연 그런가. 분명 어떤 심리적 기제가 작동할 것이다. 1) A와 B 모두 폄하하는 자세를 내비침. 2) 그럼에도 A나 B와 같은 (자장의) 선택지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나’의 입장을 내보임. 3) 상대방의 의견이 어떠하든 ‘나’는 둘의 차이가 대수롭지 않다는 것을 이미 인지하고 있음을 넌지시 알림. 4) 한마디로, 모종의 자격지심.
과연 차이가 없나. 위악은 가장 편리한 자기방어 기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거기’서 ‘거기’ 사이의 거리가 대단한 것은 아닐지라도, 거기-1과 거기-2 사이에는 분명 차이가 존재한다. 미세한 차이를 명확히 인식하기 위해 우리는 이 둘을 비교하고, 고민하고, 연구하고, 판단한다. 뒤집었다가 다시 뒤집으며 미래를 전망한다. 그렇게 현재 ‘나’의 행위를 정당화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타인에게 이 노고를 내비치고 싶지 않다. 슬쩍 선수를 친다. 다 거기서 거기이겠지만…
2
여기까지는 어디까지나 ‘나’와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진 경우이다. 그렇다면 제3자의 시각에서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 그러니까, 누군가 내게 똑같은 질문(“A와 B 중 무엇이 나을까”)을 던지고, 이에 대해 내가 똑같은 표현(“다 거기서 거기”)을 되돌려준다면? 질문한 상대방은 상처받을 수도 혹은 안도할 수도 있다. 상처받는다면, 상대방이 A와 B의 차이를 확인하고 싶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안도한다면, 상대방이 A든 B든 별 차이 없다는 의견을 들음으로써 고민의 필요성 자체를 소거하거나 그 무게를 덜고자 하는 욕구를 가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3
주목할 것은 ‘~관점에서 보면’이라는 전제이다. ~의 관점에서 보면, 고민하고 집착하는 나의 행위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어떤 관점? 상위의 관점. 보다 높고 넓은 시야를 갖춘 관점.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사 그 어떤 것도 하찭아지는 것처럼. 이것은 영리한 자기 위안인가, 딱한 정신 승리인가.
- 자살을 생각하는 남의 집 아이를 보면, 우리 아이의 이러저러한 결점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 극심한 몸의 통증으로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면, 줄지 않는 식욕으로 늘어난 몸무게를 고민하는 이의 고민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 생계의 위협 앞에 내몰린 이들의 사연을 들으면 누군가의 정신적 허기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4
그러나 늘 이런 식으로 생각하며 살 수는 없다. 다 거기서 거기,라는 말은 이중적이다. 열등감과 우월감, 자격지심과 오만, 폄하와 동경, 방어기제와 공격성이 동전의 양면처럼 자리한다. 어떤 사안, 어떤 사람, 어떤 텍스트를 만났을 때 ‘다 거기서 거기’라고 말하는 것은 자신의 결핍과 과잉을 동시에 드러내는 일인지도 모른다. 결핍과 과잉은 대척점에 서 있지 않다. 결핍 심리와 과잉 행동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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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을 하려고 이 글을 시작했나. 이 글을 시작하게 된 마음이나 쓰고 난 이후의 마음이나. 다 거기서 거기.
(202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