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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희 Nov 16. 2020

스무 살에 은퇴한 축구선수,
잘 살고 있습니다.(27)

평범한 삶의 어려움

평범한 삶의 어려움

  2012년 취업시장은 2009년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 이후 경기가 회복세에 있었기에 지금보다는 수월했습니다. 물론 당시에도 좋은 회사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은 치열했으므로 취업에 성공해서 평범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대한축구협회의 실패를 교훈 삼아 자신을 더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했어야 했는데 계속해서 교만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교만이지만 당시에는 성공에 대한 무조건적인 확신이었습니다. 실패해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이 계속해서 차올랐고 이 희망으로 힘겨운 시기를 버틸 수 있었습니다.

      

  취업을 준비하는 과정이 힘겨운 것은 단기간에 너무나 많은 실패를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공채시즌이 되면 취업준비생들은 수십 개의 입사지원서를 제출하게 되는데 웬만한 경우가 아니면 합격보다는 불합격 통보를 더 많이 받게 됩니다. 목표한 대학에 입학을 하고 이런저런 자격증을 따며 크고 작은 성공만을 경험했던 사람들에게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실패는 사람을 낙담하고 좌절하게 만듭니다.

     

  세상 보는 눈이 어두웠던 저는 취업시장의 어려움을 모르고 ‘학벌도 좋아졌고 대외활동도 이만큼 했으니 무엇보다 선수 출신에서 지금의 위치에 이르렀으니 어디든 무조건 될 것이다.’는 착각 속에서 입사지원서를 제출하였습니다. 주제 파악은 못했지만 가치관은 분명해서 ‘사회공헌을 많이 하는 기업, 브랜드 이미지가 높은 기업’에만 입사지원서를 10개 정도 썼습니다. 결과는 모두 불합격. 서류전형조차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명문대학교로 편입을 했다고 하지만 사실 체육교육과는 취업시장에서 기업들이 원하는 전공이 아니었기에 지원할 수 있는 분야는 전공과 무관한 ‘영업관리직’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다른 직무에 비해 선호도는 떨어지지만 대기 업은 ‘영업관리직’에 대한 경쟁도 심했기에 4~5월 한 달 사이에 며칠 간격으로 계속되는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그런데도 무조건 된다는 생각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맹목적’으로 한 군데는 된다는 확신에 차 있어 남들처럼 실패에 흔들리지 않았던 것은 힘든 취업경쟁을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취업시장은 축구에 비유하자면 한 골만 넣으면 승리하는 게임입니다. 승패도 필요 없이 내가 구직을 원하는 기업 중 한 곳에만 합격을 하면 되는 경기였으니 결국 한 골을 넣은 사람 즉, 한 곳에서라도 합격통지를 받은 사람이 승리하는 곳이 취업시장입니다.


기회를 잡아야 승리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원서를 쓰고 기다렸던 한화그룹 공채의 서류합격 통지를 받았습니다. 이후 이어진 인적성 검사는 취업한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공부를 해서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인적성 시험까지 통과하자 남은 것은 실무자 면접과 임원 면접이었습니다. 보험회사가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영업관리자가 어떤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무작정 학교에서 제일 가까운 한화생명 지점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한화생명 입사를 준비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괜찮으시다면 지점에 방문해서 몇 가지 질문을 드려도 될까요?” 전화를 받은 지점장님이 흔쾌히 허락해주셔서 다음 날 지점에 방문을 하였습니다.

     

  그 날 지점장님과 한 시간 가량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는 사실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돌아와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어떤 업무를 수행하는지 감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실무진 면접은 과장, 차장급 면접관 앞에서 경쟁자와 1:1로 프레젠테이션을 한 후 그것에 대해 질의응답을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면접장 앞에서 대기하던 중 저와 같이 면접을 보게 된 지원자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면접을 준비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뿌듯한 마음으로 “지점을 방문해서 지점장님을 만나고 왔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그 지원자는 자기는 4군데 지점을 방문하고 왔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속으로 약간 당황한 채 면접을 시작했습니다.

     

  1:1 경쟁 프레젠테이션의 주제는 보험회사 지점 운영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취업준비를 하는 4학년 2학기에는 일부러 조별과제 발표도 도맡아서 하고 수업시간에 질문도 많이 하며 프레젠테이션에 대한 두려움도 없었고 요령도 체득하였습니다. 자신 있게 지점장님의 조언에 따라 프레젠테이션을 먼저 했고 경쟁자의 프레젠테이션을 들었는데 그 지원자는 당황했는지 내내 위축된 모습을 보였습니다.

      

  결정적으로 프레젠테이션 내용이 저와는 반대되는 것이었는데 제 의견이 보험영업의 정수에 가까웠습니다. 당연히 결과는 실무진 면접 합격. 입사하고 일을 경험하자 방문했던 지점의 지점장님께서 보험 영업의 정수를 짧은 시간에 잘 알려주셨다는 것을 깨닫고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렸습니다.

     

  마지막 관문은 대표이사 면접이었습니다. 소위 임원진 면접이라고 하는 최종면접에서는 그룹 부회장이자 한화생명 대표이사 사장, 한화생명 부사장, 영업관리 본부장, 인사과장을 면접관으로 두고 4명의 지원자가 들어가서 면접을 보는 다면 면접이었습니다. 최종면접을 앞두고 절대로 면접에서 떨어질 일은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화그룹이 도전과 신용을 기업의 철학으로 삼고 있었기에 더 자신이 있었고 이러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최종 합격을 하게 되었습니다.      


  10번의 시도 중 1번의 유효슈팅이 골로 연결되어 졸업하기 전 취업을 성공해서 남은 학교생활을 편안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무조건 한 곳은 된다.’라는 근거 없는 확신 속에서 이뤄낸 결과였습니다. 취업을 한 당시에는 몰랐지만 회사에 가보니 왜 대기업을 선호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연봉, 복지, 교육 등 아무것도 모르던 학생에서 사회인으로 성장하는데 필요한 많은 것들을 충족시켜주는 곳이었습니다.


  '평범하다.'는 의미와 그 수준은 모든 사람들에게 다를 것입니다. 그 시절의 저에게는 일반적인 사람들처럼 삶의 평균적인 속도와 방향을 쫓는 것이 평범함을 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운동을 시작하며 평범함을 잃어버렸던 제가 운동을 그만두고 뒤늦게 편입을 준비하며 진학을 위한 공부도 해보고, 취업준비도 해보며 7년만에 평범한 사람들에게 보폭을 맞출 수 있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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