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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희 Nov 25. 2020

스무 살에 은퇴한 축구선수,
잘 살고 있습니다.(30)

나를 잃어간다는 느낌

나를 잃어간다는 느낌                                                

회사에서의 힘든 하루하루가 쌓여가며 미래가 어둡게만 느껴졌습니다. 돈은 많이 벌지라도 자신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생각과 보험상품과 보험영업에 대한 회의감이 점점 커져감에 따라 지점장으로서 설계사분들을 독려하는 것이 더 힘들어졌습니다. 어떤 조직이던지 리더의 열정과 추진력이 조직을 나아가게 하는데 중요한 요소인데 지점의 리더인 제가 흔들리고 열정을 잃고 있으니 지점의 성과는 점점 떨어지기만 했습니다. 결국, 지점장 부임 1년 만에 이임을 해야 했습니다.


  첫 번째 지점에서 실패를 하고 더 이상 지점장의 역할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회사에서는 한 번 더 기회를 주어 새로운 지점의 지점장으로 발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제 성격이나 가치관이 지점장의 역할과 맞지 않다는 것을 확실히 느꼈기에 상부에 요청하여 다른 보직에서 일하고 싶다는 뜻을 전할까 고민하다 '지점장 한 번 더 해보고, 안 맞으면 회사를 그만두자'는 마음과 함께 새로운 지점으로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어차피 다른 보직을 잠시 하더라도 결국 다시 지점장을 해야 했기에 기왕 하는거 젊었을 때 더 해보자는 생각이었습니다.

      

  첫 지점보다 더 어려운 지점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한, 두 달 잘 된다 싶더니 여지없이 이런저런 사건이 터지고 성과는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지점장이 어쩔 수 없는 외부의 환경적인 요인이 작용했으나 지속적인 부진은 단장님으로부터 받는 질책은 넘어가더라도 개인의 자존심의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왜 내가 좋아하지도 않고, 잘하지도 않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이렇게 돈만 많이 받는다고 내 삶을 갈아넣어가면서, 나를 읽어가면서 일을 해야 하는 것인가? 어떻게 하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 평생 즐겁게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꿈을 좇아 회사를 떠난 사람들의 책을 읽으며 '나는?'이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계속해서 던졌습니다. 


나를 찾아간다는 것  

  운동을 그만둔 후 세상의 평균적인 속도와 방향을 쫓아 바쁘게 사느라 제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이 부족했었나 봅니다. 이 일을 평생 해야 한다는 압박과 스트레스 속에 놓이고서야 비로소 살기 위해, 자신을 찾기 위한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진작 이런 고민을 한 후 직업을 선택했어도 그 일에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을 텐데 나의 길이 아닌 세상이 닦아 놓은 길 위에서 부지런히 걷기만 한 결과 나를 잃어가는 삶을 살게 된 것이었습니다.


  '나를 찾을 수 있는, 내가 조금 더 행복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답은 축구 지도자였습니다. 졸업을 앞둔 대학교 4학년 스포츠 심리와 코칭에 대해 배우는 것이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중학교 시절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었기에 전문적인 지식을 적용한 코칭을 통해 선수가 발전되는 모습을 본다면 참 보람 있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부분들을 적용해서 다양한 선수들에게 맞는 코칭을 할 수 있다면 다른 지도자들보다 경쟁력도 있고, 바람직한 선수를 길러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축구지도자의 진로를 택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운동 지도자는 직업적인 안정성이 매우 떨어지는 일입니다. 당시 지도자의 진로를 택하지 못했던 이유도 직업적인 안정성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제 딸이 축구 지도자와 결혼을 한다면 허락을 해주지 않겠다는 생각을 스스로 했으니 현실적인 조건을 먼저 고려하여 일반 회사로의 취업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러던 중 주기적으로 연락을 주고받던 학교 선배가 유학 중인 독일에서 차근차근 자신의 꿈인 축구 지도자의 길을 밟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소식에 제 일도 아니었지만 어찌나 가슴이 뛰던지. 당장이라도 독일로 날라 가고 싶었습니다. 그 형의 소식을 듣고 난 후에 다시금 대학생활을 되짚어보자 ‘전문성을 갖춘 축구 지도자’를 하면 내가 좋아하고 또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며 평생 살 수 있겠다는 생각만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그렇지만 이미 대기업이 주는 연봉과 사회적인 안정감에 젖어있던 저는 꿈과 진로를 향해 쉽게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지금 누리는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새롭고 불확실한 일을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두렵기만 했습니다. 회사생활이 힘든 만큼 하고 싶은 일에 대한 간절함은 커져만 갔으니 고민과 갈등 속에서 매일을 보냈습니다. 당연히 지점 영업은 더욱더 어려워져 갔습니다. 

    

  이런 상황이었지만 새로운 꿈을 향한 준비는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스포츠 심리학과 관련된 ‘멘털 코칭’ 과정을 이수하고 지도자로 일하고 있는 선, 후배들과 연락을 하며 지도자에 대한 조사를 이어갔습니다. 결국, 언제 그만두겠다는 시기는 정하지 않았지만 저는 축구 지도자가 되기로 결심을 하고 유럽으로의 유학을 꿈꾸고 계획하게 되었습니다.

      

  힘들게 얻었고 만족했던 평범한 삶. 운동을 그만두고 뒤늦게 시작했지만 다른 누구보다 일상적으로 사람들이 추구하는 평균적인 인생의 속도와 방향에서 뒤처지지 않고 살아왔는데 다시 특별한 길을 가려고 결심을 했습니다. 운동을 하느라고 잃어버린 세월을 다시 채우기 위해 그렇게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다시 멈추려고 하다니. 누구보다 치열하게 20대를 보냈기에 가능한 선택이었습니다. 후회와 미련이 남지 않았기에 가능했습니다. 축구를 그만둘 때도 그랬습니다. 결과는 비록 실패였으나 과정 중에는 개인적으로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고 날마다 성장하는 기쁨을 느꼈기에 만족했습니다.

      

어느덧 30살이 넘은 나이였지만 운동을 그만둔 지난 10여 년 누구보다 치열하게 앞만 보고, 위를 추구하며 조금씩 성취를 거두는 삶을 살았기에 인생의 방향을 돌리는 결정을 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는 계속되는 과거의 선택의 결과물입니다. 지금의 삶에 만족할 수 있는 것은 과거에 만족할만한 선택을 계속해왔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불만족스럽고 불안한 선택이었을지라도 그 선택의 가치와 결과는 인생을 돌아보았을 때 비로소 제대로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지금의 저를 있게 한 과거의 선택과 용기에 과거에 저에게 "고민하고 결정하랴 수고했다."는 말을 건네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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