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기자에서 조종사로
이제는 꽤나 오래전 얘기지만 나는 신문기자였다
지금은 비행기를 몰면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기자 생활에 허우적대던 어느 순간, 이건 아니라는 현타가 세게 왔고, 시간이 지날수록 생각은 무르익어 삶의 방향을 전환하게 됐다
(비행에선 ‘Diversion’ 이라고 한다. 원래 가려했던 공항에 안전하게 도달할 수 없다고 판단해 목적지를 변경하는 행위이다)
그런 결정을 하루 아침에 한 건 아니고
그 사이에 셀 수 없는 개 같은 시간들이 있었고, 이대로는 X 될 것 같다는 불안함이 들락날락 거려 온 몸과 마음을 흠씬 두들겨 맞은 뒤에
생겨난 균열들 사이로 무언가는 빠져나가고, 어떤 것들은 채워지며 점점 형체를 갖추게 된 생각들을 실현으로 옮긴 것이다
언젠가 그 과정들을 다시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지만
단순히 기자생활을 떠올렸을 때 생각나는 첫번째 풍경은 언젠가의 밤과 새벽의 교차점이다
그날도 술자리에서 폭탄주를 잔뜩 마시고 지하철 3호선을 타고 동호대교를 건너던 한강의 풍경이다
불빛 사이에 한강의 넒은 어둠을 계속 바라보며 빛 보다는 어둠에 더 동화되는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여느때와 같던 새벽이 지나고(나는 석간신문 기자라 출근이 오전 6시였다) 여유가 있던 어느날 오후였던 것 같은데
푸른 하늘을 참 오랜만에 보게 되었다
하늘이 참 파란색이었지…
그 때 씁쓸하던 기분, 무언가에 빼앗긴 것 같던 지난 시간들, 저절로 떠오르던 의문들
이게 맞는 건지 혹은 이게 살아간다고 할 수 있는 것인지
한 밤의 동호대교의 주황색 불빛, 까맣던 한강, 어두컴컴한 새벽 출근길, 한 낮에 만났던 푸르고 높은 하늘
그것이 내가 나의 기자생활에 대해 떠올리는 가장 대표적인 심상이다
약간 우습게도 지금의 나는 민항기 조종사가 되어 매일 하늘에 대해 생각하고, 하늘 안에서 하늘을 보며 근무를 하고 있다
그토록 오랜만에 보았던 푸른 하늘이 일상이 되고 근무환경이 되었다
이 하늘은 대체적으로 맑고 푸르고, 때로는 어둡고 침침하며 눈과 비가 오며 가며, 바람이 몰아치고 안개가 끼기도 하는 변화무쌍한 생명체이지만
적어도 아직까지는 이 하늘은 나에게 위안이 된다
활주로 위에서 항공기가 떠오르는 창을 가득 해우는 푸른 하늘을 떠올릴 때마다
지금의 나는 그 시절 빼앗겼던 무언가를 조금은 찾아온 기분,
내가 한 선택으로 나의 풍경을 이 색으로 바꾸었다는 만족감으로 조금은 충만해진다
아마도 이것은 행복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