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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위나 Jan 12. 2022

대단하지 않지만 동네 한의원입니다.

당신의 꽃 구두




막내 딸아이의 초등학교 졸업식날, 나이 많은 엄마가 모처럼 복장에 신경이 쓰였다.

언제부터인가 굽이 있는 구두를 멀리하게 되었는데 그날만큼은 오랜만에 구두를 꺼내었다. 모처럼 입은 복장에 평소에 신던 단화는 어울리지가 않아서였다.

코로나19로 인해 졸업식은 각자 교실에서 진행을 한 다음 졸업식이 끝난 이후에 운동장에서 가족들과 사진 촬영을 할 수 있게 개방을 한다고 했다. 졸업식이 끝나는 11시부터 운동장에는 꽃다발을 든 가족들이 중앙현관과 북쪽 현관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곧 졸업장과 앨범을 손에 든 아이들이 반별로 몰려나왔고 저마다의 가족들 품에 안겨 졸업의 기쁨을 기념하였다.

반나절의 축제는 지나버리고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뭔가 부작용을 느낀 건 그다음 날이었다. 걸을 때 양쪽 발가락과 발바닥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졌고 걸으면 걸을수록 통증이 있었다. 발을 다친 건 아니었는데 문득 든 생각에 전날 오랜만에 신은 구두가 떠올랐다. 신을 때는 몰랐다가 발이 아프고 나서야 오랜만에 신은 구두가 이제 더 이상 편한 신발이 될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게 무슨 대수인가...  나는 딸아이가 6년 동안 다녔던(제 오빠들이 다닌 세월까지 합하면 그 이상이겠지만) 학교를 한껏 멋을 내어 방문했고 영원히 기념될만한 장밋빛 하루를 보내지 않았는가.






"며칠 못 나오셨군요. 증상은 심하지 않으셨나요."

"아휴, 시골에서 장 담근다고 오라고 해서 거기 일 도와주고 왔지요."

"어머, 장을 직접 담가요?"

"시골은 아직도 직접 메주 뜨고 만들지요. 집집마다 하느라 양도 많이 해요. 침을 맞고 발이 좀 좋아져서 그나마 일을 잘 마칠 수 있었네요"

000 환자분은 그레이의 올림머리가 중후하게 느껴지는 약간 마른 체형의 60대 후반의 여성 환자분이시다. 발 저림으로 한동안 치료를 받으셨는데 일주일 정도 내원을 안 하시다가 다시 치료를 받으러 오셨다.

침을 놓고 나서 내방으로 들어와 혼자 생각하기에 000 환자분은 전통요리 무형문화재 또는 장인 정도쯤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종갓집의 아낙으로 대대로 물려받은 비법을 간직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늘 바쁜 일정에 한치의 소홀함이 없이 열심히 치료받으시다가 좋아졌다는 말씀을 간간이 남기시더니 이후 석 달 동안 내원을 안 하셨고 어느 날 다시 내원하셨다.


"안녕하셨어요. 오랜만에 오셨네요.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네, 발도 안 저리고 잘 지냈는데... 지난 주말에 결혼식 다녀오느라 구두를 신었더니 발이 다시 저리더라고요."

"오랜만에 신으신 구두가 불편하셨군요. 이제 불편한 구두는 신지 마셔요. "

오직 치료에만 중점을 둔 일방적인 나의 언급에 그녀는 먼 곳을 아련하게 응시하고 있었다.






딸아이의 졸업식에 모처럼 신은 구두로 인해 발에 통증을 느낀 나는 기억 속의 그녀를 떠올렸다.

문득, 그 당시에는 몰랐던 깨달음이 물안개처럼 피어오른다.

오랜만에 신은 그녀의 구두는 단순한 구두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신발장 한편에서 구두는 지나간 그녀의 시간을 겹겹이 두르고 있었을 거다.

그녀는 그날 그 구두를 신고 추억의 사람들을 만나고 왔을 거다.

구두를 신고 그녀는 지난날의 젊은 시절로 되돌아갔을 거다.

그녀는 그 구두가 지난날의 행복을 가져다주었다고 생각했을 거다.

그녀는 먼 곳을 응시하면서 구두를 다시 신을 날을 고대했을 거다.



그녀가 다시 온다면 나는 이런 말을 해드려야겠다.

"제가 발은 치료해드릴 테니, 언제든 원하실 때 쁜 구두, 꽃 구두 신고 외출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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