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위나 May 29. 2021

대단하지 않지만 동네 한의원입니다.

그대여, 걱정 말아요.





"원장, 어딨어!. 원장 나오라 그래!!"

"무슨 일이신데요."

"아, 글쎄 원장 어딨어!!"

 어느 조용한 오후 갑자기 밖이 시끌벅적하다. 나는 서둘러 대기실로 나갔다. 낯이 익은 것 보니 나한테 치료를 받은 환자이다.

 "네, 무슨 일이죠?"

 "내가 엊그제 여기서 침을 맞았는데 오늘 더 아파. 이런 식으로 치료를 해서 되겠냐고. 이거 어떻게 책임질 거야!!."

 다짜고짜 소리를 버럭 지르는 통에 가슴은 뛰고 눈에서는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았다.

 '내가 그렇게 잘못을 했나..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어떻게 할 줄을 몰라 당황하고 있던 나에게 직원이 재빠르게 차트를 내민다.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차트를 살펴본다. 이틀 전 발목 염좌로 침을 맞은 60대 후반의 남자 환자이다. 당시 근처 정형외과에서 엑스레이를 찍고 관절에 이상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침으로 인대를 치료하고자 내원한 것이다.

 "ㅇㅇㅇ님 환자분, 발목 염좌는 일주일 이상 침 치료를 해야 원상태로 가능합니다. 하루 맞고는 치료를 장담하기 어려워요. 어제도 치료를 안 받으셨으니 아픈 게 그대로이거나 더 아픈 건 당연합니다."

 "엊그제 맞고는 좋아졌는데, 근데 왜 다시 아프냐고 내 말은."

 "그건 일시적으로 좋아진 거지 인대가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어요. 그리고 어느 정도 좋아지실 때까지는 발을 조심해서 쓰시고 되도록 2,3일 동안은 걷는 것을 피하셔야 하고요. 오늘부터라도 열심히 침을 맞으시면 엊그제보다 더 좋아지실 테니 걱정 마세요."

 "..."

 신기하게 시끌하던 한의원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 환자는 놀랍게도 조용히 치료실로 들어갔다. 침을 맞으면서 고백하기를 첫날 침을 맞고 많이 나은 거 같아서 어제 전철을 타고 친구 모임에 다녀왔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 기가 찼다. 본인이 발목을 무리해서 증상이 악화가 된 것을 나한테 화풀이를 하다니... 잠시 화가 났지만 금세 수그러들었다. 고성의 환자를 침묵으로 이끌어낸 것이 무얼까하는 궁금증 때문이었다.


 






 "원장님, 여기가 왜 아픈 거예요?"

 "침은 어떤 작용을 하나요?"

 "정말 한약을 먹으면 좋아지나요?"

 "어제는 여기가 아파서 치료를 받아서 좋아졌는데, 오늘은 다른 곳이 아파요. 왜 그러는 건가요?"

 환자들 중에는 끊임없이 질문하는 환자들이 있다. 아무리 설명을 해도 꼬리의 꼬리를 무는 질문의 꼬리는 그 끝을 볼 수가 없다. 도대체 이 환자는 어떤 말이 듣고 싶어서 이러는 걸까, 입으로는 열심히 설명을 하면서 나는 누구인가 여기는 또 어디인가 현실 자각 타임이 밀려오는 중에 어느 순간 신기한 마법을 경험했다. 갑자기 꼬리가 스르륵 사라지는..

 그 마법의 지팡이는 응답하라 1988의 유명 ost.  <그대여, 걱정 말아요.>였다. 

 자신의 몸상태에 대한 궁금중을 규명하려는 네버엔딩 질문들에 <걱정 마세요. 좋아질 겁니다.> 란 대답은 그 어떠한 것보다 강력한 해답이 되었다. 환자의 질문공세는 걱정과 불안의 표현이었고, 걱정과 불안을 상쇄시킬 수 있는 대답을 들은 뒤에야 평안한 상태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작년에 티브이를 뜨겁게 달궜던 드라마 중에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있었다. 조만간 시즌2로 다시 돌아올 거라는 반가운 소식이 들리고 있는 이 드라마는 마음이 따뜻한 의료진들이 나와 시청자들의 시선을 묶어두었다. 

 한 환자가 수술을 앞두고 있고, 조금은 위중한 상태와 수술 후의 예후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보호자는 불안과 걱정에 휩싸여 있다. 환자의 생명이 오가는 어둠의 순간에 조그마한 빛이 던져진다. 

 "최선을 다 하겠으니 믿고 기다려주세요." 

 그들을 살리고 회복시켰던 건, 의료진의 치료와 더불어 환자와 가족들을 안심시키고 위로해주었던 저 대사였다. 걱정과 불안에 떨고 있던 환자와 가족들은 마음의 평온을 찾고 이후 환자는 병으로부터 회복이 된다. 단지 드라마의 한 장면이라고 생각하고 넘겨버리기엔 나에게는 여운이 길게 남은 부분이었다. 환자는 의사를 믿고, 의사는 환자를 안심시키고 최선을 다해 치료하는 것, 이보다 더 가슴 깊어지는 일이 또 있을까...



  





라포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상호 이해와 공감을 통해 형성되는 신뢰관계와 유대감. 환자와 의사, 프로파일러와 용의자, 협상가와 인질범, 영업자와 고객 사이에 형성되는 심리적인 신뢰감을 의미한다. 라포는 상호 관심사의 공유와 공감,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이해, 경험을 통한 공감대의 형성 등을 통해 만들어진다. 라포가 형성된 후에는 보다 장기적인 신뢰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

<다음 백과 인용>


 의사와 환자 간의 라포는 치료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  

 환자를 치료해주고자 하는 마음과 병을 낫고자 하는 마음의 교집합이 무한대가 될 때 그 어떤 질환도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치료를 받고 호전이 되지 않아 불안감과 걱정에 한의원을 찾아와 고성을 내질렀던 환자에게 정확한 정보와 치료 수칙, 예후를 안내하고 열심히 치료를 받으면 좋아질 거라고 안심을 시킨 결과 그 환자분은 하루가 멀다 하고 매일 치료를 받으셨다. 예상대로 그분은 호전이 되었고 그 후 어느 날,  지인을 데려와서 치료를 받게 하였다.  혹자는 말한다. 지인을 소개해주는 환자가 찐팬이라고.. 

 내 눈물을 쏙 뺐던 환자가 찐팬이 되었던 그 일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떤 빈자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