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겨울의 싸늘한 바람이 진료실 창문 틈새에서 머뭇거린다. 코로나 19로 인해 그런 것도 있겠지만 오늘처럼 날씨가 변덕스러운 날은 유난히 한의원이 한가하다. 환자들이 북적북적하면 좋겠지만 내가 근무하는 이곳은 늘 그렇지만은 않다. 오랜만에 치료를 받으러 오시는 분들이 한꺼번에 몰리는 날이 있는가 하면, 모두들 다 나으셨는지 아니면 어딘가 바쁜 일이 있으신지 그것도 아니면 궂은 날씨 때문인지 한의원이 조용할 때도 있다. 환자분들이 나를 기다리는 날이 있는가 하면 내가 환자분들을 기다리기도 한다. 늘 오시던 환자분이 안 오시던 때가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치료가 되어 아프니 않으니까, 신변의 일이 바쁘니까, 오늘처럼 날씨가 좋지 않으니까 하는 이유가 아니라 이제 이 세상에 계시지 않기 때문에 내가 치료를 해드리고 싶어도 영영 다시 마주할 일이 없는...
"오셨어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냇가에서 오리를 한참 구경하다 왔어요."
"어머, 오리가 있었어요?"
"네, 날이 풀리니까 어디 숨어있던 오리들이 헤엄을 치고 먹이도 먹고... 아주 이뻐요, 허허"
일상적인 인사와 그날의 특별한 대화가 오고 간다. 그리고 늘 그랬던 것처럼 침 치료를 시작한다.
ㅇㅇㅇ 환자분은 당시 70대 중반으로 3년 전 뇌출혈로 반신불수가 되어 재활병원과 요양병원에서 치료를 받으시다가 가정에서 요양을 하시게 되어 동네 한의원에 1주일에 2~3일 정도 아내분과 요양보호사와 함께 내원하는 분이셨다. 다른 곳보다 공간이 넓은 1번 치료실 한편에 휠체어를 들이고 배드에는 아내분이 누우신 상태로 두 분이서 함께 치료를 받으셨다.
집에서는 누워만 계시고 한의원 치료를 받으러 오시는 날에는 휠체어에 의지해 외출을 하시기 때문에 한의원에 오시는 날은 ㅇㅇㅇ님 기분이 대체로 좋은 상태이시다. 하지만 옆에서 치료받으시는 아내분 하소연을 듣다 보면 몸을 마음대로 거동을 못하시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님을 짐작할 수가 있다.
중풍 후유증 환자는 뇌손상으로 인한 팔다리의 신경장애와 통증치료, 중풍 재발에 대한 예방관리도 중요하지만 발병 전과 발병 후의 삶의 질의 차이에서 오는 극도의 스트레스 관리도 중요하다. 또한 장기간 간병으로 인한 보호자의 심리적 육체적 피로에 대한 대처도 빠질 수가 없다. 할머니는 관절마다 안 아픈 데가 없으셨고 할아버지로부터 받는 스트레스 또한 만만치 않아서 한의원에서 이래저래 하소연하시는 것이었다.
"할아버지가 나한테 소리를 얼마나 지르는지 몰라. 내 심장이 가라앉겠어."
"이놈의 여편네가!!"
나는 두 환자를 동시에 다독이면서 치료를 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런저런 얘기를 들어주고 맞장구를 쳐야 하는데 두 분 사이에서 애매모호한 포지션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가끔 실없는 사람이 되기도 했다.
한 번은 아내분 머리가 부어서 오셨다. 남편분이 뭘 집어던지셨다는데, 또 그러면 요양원에 보내버린다고 소리치셨다고 한다. 그 소리를 제일 무서워하신단다. 그 날의 다툼은 말 한마디로 일단락되었지만 나는 두 분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할머니께는 상대방이 화를 내기 전에 언쟁을 멈추기를, 할어버지께는 화를 내시면 병이 재발할 수 있으니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시라고... 두 분은 싸움을 하시는 와중에도 한의원 치료를 게을리하지 않으셨고 아웅다웅하는 나날들이 지날수록 서로 의지하고 보살피는 게 느껴져 노년의 삶이란 무엇인가 종종 숙연해지기도 했다.
내가 출근하기 전부터 와서 기다리시던 분들이 한동안 안 오신다. 3주 정도 지나 다시 내원하셨다.
"할아버지가 감기가 걸렸는데 폐렴이 와서 병원에 입원했다가 어제 퇴원했어. 이 양반, 한의원 오고 싶다고 얼마나 난리였는지 몰라."
할아버지의 모습이 예전과 많이 달라져있다. 살은 야위었고, 목소리에 기운이 없으셨다. 그동안 건강상태의 부침은 늘 있어왔지만 그 날은 침을 놓는 나의 마음에 그늘이 드리워지고 있었다. 오실 때마다 말수도 적어지고 눈꺼풀이 무거워 보인다. 나도 덩달아 말수가 적어진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주 적다는 생각에 마음이 어두워지는 나날들이었다.
2016년 5월부터 2019년 2월까지 내원하셨던 그 환자분은 7년간의 와병 생활을 끝으로 생을 마감하셨다.
또다시 한동안 두 분이 무소식이었고, 무소식이 희소식이 아니라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할아버지가 저 세상으로 가셨어. 어느 날 아침에 보니 숨이 끊어지셨더라고.. 말해 뭐해. 고생만 하다 가셨지.. 에휴.."
한 달여 만에 오신 할머니는 몸이 많이 축나셨다. 나는 어떡하냐고 어떡하냐고 몇 마디를 반복한 후 전과 다름없이 할머니를 치료해드렸다.
3년 가까이 단골환자로 오고 가며 어떤 때는 친척 어르신을, 어떤 때는 돌아가신 친정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던 그분에게 나는 무엇을 느꼈던 것일까... ㅇㅇㅇ환자의 빈자리는 그 해 초봄의 싸늘했던 진료실에 홀로 앉아 있던 어느 날, 불쑥 흘러내리는 연민의 눈물로 채워졌다. 단 한 번이었던 그 날의 애도는 깊어가는 봄날 사이로 아련해져갔다.
아직도 할머니는 일주일이 멀다 하고 내원하신다. 당시 할아버지를 보내고 몸이 여기저기 아프셨는데 한의원 치료를 계속 이어가셨고 홀로서기에 적응을 하셨다. 지금은 노인회관과 공공근로, 자제분들과의 왕래로 바쁘게 보내신다.
"어머, 지금 점심시간인데요."
"나, 그냥 침대에 누워있을테니까, 어여 볼일 보고 쉬어. 2시까지 기다릴게."
점심시간에 들이닥쳐 곤란해하는 간호사를 보고 내가 괜히 머쓱했다. 침을 놓으면서 부드럽게 얘기를 건넨다.
"다음에는 점심시간 피해서 오세요. 식사도 해야하하고 환기도 시켜야 하고 소독도 해야 하고 준비할게 많아요."
"알았어. 어디 갔다가 집에 가는 길에 한번 들러본 거야... 하하 그런데 ㅇㅇ골(동네 이름) 노인정에 20명 할머니들이 있는데 19명이 과부인거 있지. 할아버지랑 같이 사는 그 할머니가 '니들은 복 받은 줄 알아. 남편 먼저 보내고 얼마나 팔자들이 좋아.' 그러면서 할아버지 밥해주러 가는데 왜 이렇게 웃기는지, 아이고 배꼽이야.하하"
힘들었던 시기를 지켜보았던 나로서는 할머니의 어떤 행동도 어떠한 말도 어색하지 않다. 그저 건강하게 맘 편히 잘 지내시는 게 다행일 뿐이다. 암투병을 하시던 친정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홀로 서신 나의 친정어머니처럼...
*사진출처는 픽사베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