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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위나 Jan 29. 2021

대단하지 않지만 동네 한의원입니다.





 "원장님,  ㅇㅇㅇ님 환자분 좀 이상하신 것 같아요."

 김샘의 말에 귀가 솔깃해진다.

 "왜, 무슨 일인데요?"

 "어제 그분이 찜질하실 때 중간에 찜질팩은 뜨겁지 않은지 물어보는데 아무 대답도 안 하시고 거의 반응이 없으신 거예요." 

 "맞아요, 그분 원래 말이 별로 없으시지."

 나의 맞장구에 김샘의 숨은 가빠졌다.

 "그래서 귀가 잘 안 들리시나 해서 좀 더 큰소리로 한두 번 더 물어보니까 나중에는 그분이 얼굴을 무섭게 찡그리시더라고요."

 "아, 당황스러웠겠네요. 그런데 그분은 귀가 잘 안 들리시는 건 아니고... 원래 귀가 약하신 분들은 반응을 꼭 보여요. '뭐라고?' 아니면 귀를 말하는 사람쪽으로 가까이하시던가..."

 "아, 그렇군요. 전 그것도 모르고.. 화난 표정을 지으시길래 제가 무슨 잘못을 했나 싶어 당황스러웠는데 치료 다 끝나고 가실 때는 또 아무렇지도 않게 나가시는 거예요."

 김샘은 환자들한테 다정다감하고 친절한 직원이다. 그런데 어제 그 친절을 오히려 부담 느끼는 환자한테 상처를 받은 것 같았다.

 "김샘 잘못은 없어요. ㅇㅇㅇ님은 조용하게 쉬고 싶고 방해받고 싶지 않으셨나 봐요. 다음에 오시면 평소처럼 대해주세요. 반응을 기대하지는 말고 ㅎㅎ"



 ㅇㅇㅇ환자는 70대 초반 여성으로 다리가 시려서 침을 맞으러 다니는 분이시다. 처음 진료 때도 말수가 별로 없으셨고 일주일에 한 번 고정된 요일 저녁 6시 전후에 오신다. 붉은 양볼, 거친 손, 찬 곳에 노출이 되어 시린 양 발과 다리.. 추측 건데 야외에서 노동을 하시는 분인 것 같다. 일주일 중 하루, 일이 끝나고 저녁에 들러서 치료를 받는 시간, 그분한테는 아마 유일할지도 모르는 치료를 겸한 휴식시간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간호조무사 직원의 친절에 부담을 느끼고 부정의 반응을 보이신 것이다. 연세에 비해 노동의 부담이 큰 것 같아 그분의 현재 삶이 녹록하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 편으로 그분이 과거에 여유가 있었다가 말년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이 누리던 부귀영화가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어버리면 정신적으로 박탈감과 상실감으로 질병이 발생하는데 이를 탈영실정(脫營失精)이라 한다. ㅇㅇㅇ님의 지나온 과거를 알 수 없기 때문에 탈영실정의 상태라고 단정 짓기는 힘들지만 현재 육체적 피로와 정신적 우울의 상태에서 그분에게 중요하고 필요한 건 증상의 치료와 마음의 휴식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공간이 여기 동네 한의원이 아닐까 하고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저.. 빨리 가봐야 돼서 침만 맞고 갈게요."

 이런 안타까운 경우가 있다. 육아와 살림을 하다 보면 여기저기 안 아픈 데가 없다. 하루 종일 집에서 씨름을 하고 나면 밤에 녹초가 되어 잠을 자는지 꿈은 꾸는지 모르게 하룻밤을 지내고 아침엔 또 일어나야 한다. 그래도 아침에 해를 보면 몸은 또 일어나 져서 또다시 반복되는 하루들, 그러다 과부하가 걸리면 어느 곳에 브레이크가 걸린다. 자고 일어나도 어제와 똑같이 아프고, 그나마 다친 게 아니라면 다행인데, 손목, 발목, 허리, 무릎, 어깨 어디 한 군데라도 다쳤다면 그냥 놔둘 수가 없다. 아이가 잠깐 어린이집 가 있는 사이, 친정어머니나 시어머니가 잠깐 와 계신 사이, 아니면 남편의 금쪽같은 토요일 오전, 집으로부터의 탈출 아닌 탈출이 이루어지고, 이제나 저제나 고대하던 치료를 받지만 좌불안석이요, 가시방석이니 치료가 잘 되려면 몸과 마음이 편해야 하는데, 치료를 하는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안타까울 수가 없다.

 "손목 치료는 손목을 사용하는 거에 따라 경과가 달라요. 사용하는 만큼 치료도 자주 받으셔야 좋아집니다. 시간 내시기 힘드시겠지만 꼭 자주 나오셔서 치료받으세요."

 "네, 원장님."

 그 후 그 환자분은 오지 않았다. 아니 못 왔다가 맞는 것 같다.

 그리고 해가 바뀌어 다시 내원을 했다.

 손목은 괜찮으며 다른 곳이 아프다고 치료 받으러 온 것이다.

 "아기 많이 컸겠어요."

 "네, 하하, 저 복직해서 일 다녀요. 주말에 운전을 좀 했더니 허리가 아프네요."

 그 날은 치료를 다 받고 가셨다.








 "주말에 아무것도 하지 말고 푹 쉬시다가 다음 주 치료 나오세요."

 "네네. 근데 쉽지는 않겠네요. 쉬고 싶지만.."

 "그럼, 틈틈이 쉬세요. 그렇지 않으면 좋아지기 전으로 다시 아파요."

 "네. 노력해볼게요."

 "혹, 다시 아프더라도 치료를 계속하면 좋아질 테니 걱정 마시고요."

 근골격계 질환은 관절이나 근육을 쓴 만큼 통증이 나타난다. 치료 중에 계속 사용을 한다면 일반적으로 경과가 길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경우는 꼭 관절과 근육을 쉬게 해줘야 한다고 티칭한다. 

 사람의 몸은 정직하다. 쓴 만큼 채워줘야 한다. 그게 휴식이고 쉼이다.



 화장기 없는 얼굴, 헝클어진 머리, 대충 걸쳐 입은 니트, 양말도 신지 않은 채 바쁘게 다녀간 아기 엄마.

 푹 눌러쓴 털모자, 겹겹이 껴입은 방한복, 거칠게 튼 손, 붉은 얼굴의 근로자.

 누가 오든지 여기 동네 한의원에서 치료를 받는 동안만이라도 휴식을 하다 가길 바라는 마음은 오래전부터 내가 품어온 생각이다. 이런 마음은 어쩌면 나의 바람에서 나왔을지도 모른다. 일과 가정을 잠시 훌훌 털고서 오롯한 나의 휴식 시간을 가져보고 싶은 바람.. 이 바람을 내 앞에 누워있는 고단한 환자들의 몸과 마음에서 느낀다.

 대단하지 않은 동네 한의원에서 해줄 수 있는 것, 그것은 바로 '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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