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진짜 눈이 오고 있네."
새벽에 내려다본 바깥 풍경은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이번 날씨 예보는 한치의 어긋남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날 꼼꼼히 싸 둔 케리어가 현관에 듬직하게 놓여 있다. 바라보던 나의 마음도 단단히 여며진다.
"고고, 출발시간을 이르게 하고 대신 조심해서 운전하면 돼."
"그래 가자, 더 이상 미룰 수도 물러날 수도 없어."
남편과 나, 막내딸 이렇게 셋은 잠시 후 눈 내리는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 차 안에 있었다. 내 생애 처음으로 눈(雪)을 운전하고 있었다.
코로나로 2년째 아이는 별 이벤트 없이 나이만 먹어가고 있었다.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면 엄마 아빠와의 여행은 머나먼 나라의 일, 그렇게 되기 전에, 코로나가 염려되긴 하였으나 여행 계획을 세운다. 숙소를 예약하고 기차표를 예매하고 하루하루 날짜 가기만을 기다리던 어느 날 남편은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된다. 숙소를 취소하고 기차표를 반환하고 다음을 기약하던 중 시어머니께서 돌아가시게 되었다. 무기한 연기가 된 여행은 해를 넘기게 되었고 다시 숙소를 예약하고 기다리던 어느 날 우리는 코로나에 휩싸이게 되었다. 부랴부랴 또다시 숙소를 취소하고 (자가용 운전을 결심한 터라 더 이상 취소할 것은 없었다) 전염병 회복에 전념을 하게 된다. 이렇게 몇 번의 우여곡절 끝에 가게 된 여행길은 꽃샘추위와 대설경보로 내 생애 첫 장거리 여행을 장식하게 되었다.
초행길, 장시간 운전, 눈 내리는 날씨, 악조건 속에서 운전을 해야 하는 나는 캄캄한 밤이 아닌 게 얼마나 다행인가 위로하면서 심호흡을 해본다. 가족 여행의 안전을 책임지는 운전 가장으로서...
"와, 대박, 겨울왕국이다!!.
뽀드득뽀드득 차창을 가리는 눈발을 걷어내는 와이퍼 사이로 하얀 세상이 펼쳐져 있다. 겹겹이 이어지는 하얀 산속에 고속도로와 눈과 자동차들만이 주말 오전을 장식하고 있다. 텔레비전이나 인터넷 사진으로만 가능했던 풍경들이 우리들 앞에 펼쳐져 있다. 다행히 자동차들이 거쳐가는 도로 위는 눈이 녹아 크게 위험해 보이진 않았으나 돌다리도 두드리는 심정으로 브레이크와 액셀의 조화에 심혈을 기울였다. 나의 앞과 뒤를 달리는 차들도 마찬가지였으리라.
"당신은 그때 그 장거리 여행을 어떻게 다녀왔데요. 나 같으면 그런 운전은 엄두도 못 내요."
문득 오래전 남편의 운전으로 여행을 다녔던 기억들이 소환되었다.
"나도 지금 하라고 하면 못해. 그땐 아이들이 어렸으니 어디라도 함께 가고 싶었고 그리고 젊었으니까... 대신 다녀오고 나면 하루 종일 뻗어 잤었지."
차는 굽이굽이 산속을 돌고 있었다. 아이들은 잠이 들었고 차창 너머 보이는 산들은 조그마한 하늘을 둘러싸고 우리를 둘러싸고 있었다. 초록의 세상은 조용했지만 내 마음은 흔들렸다.
"와, 이런 곳에 살고 싶다. 산속 마을이란 게 이런 거구나.."
경치를 보면서 감탄하는 나에게 조심스럽게 커브를 돌며 운전을 하던 남편은 흥미로운 말투로
"나중에 애들 다 크면 귀산촌 하자고"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이렇게 문경새재를 넘어갔다.
지금은 성인이 된 두 사내아이들이 유치원 다닐 때였으니 15년도 더 오래전 여행 이건만 눈앞에 펼쳐진 산세와 아기자기한 마을들은 아직도 나의 마음을 포근하게 해 준다.
막내딸이 태어나기 오래전 우리 네 식구는 지방 곳곳 여행을 곧잘 다녔다. 당시 남편이 여행 계획을 세우고 난 그저 고만고만한 연년생 사내 녀석 둘을 챙기기에 바빠서 자세히 몰랐지만 요즘 각종 매체에서 소개하는 유명 명소들 중에 우리가 갔던 곳들이 적지 않음에 놀라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그 먼 곳을 구석구석 운전을 했던 남편을 떠올리면 지금 처음으로 장거리 운전을 하는 나로서는 그가 대단하게 느껴진다. 새벽 컴컴할 때 출발하여 남들보다 일찍 명소들을 둘러보고 남들보다 좀 더 일찍 맛집에서 식사를 하고 남들보다 더 이르게 고속도로를 달리며 귀가했으니 남편의 운전이 아니었다면 아이들과 편안히 여행을 다닐 수 있었을까...
(단양 8경, 영주 부석사, 양산 통도사와 해인사, 목포 향일암, 변산반도, 만경평야, 청송 주산지, 고성의 공룡박물관, 동해 촛대바위, 죽서루, 정동진, 안동, 거제도, 통영, 해남, 평창, 춘천, 경주, 전주, 부여, 부산, 제주...)
셋째가 태어나고서는 우리 식구끼리만의 여행은 엄두를 내지 못했다. 커가면서 고집이 점점 세지는 둘째(장애가 있다는 것을 이미 밝힌 바..), 어린 딸아이, 오랜 기간 장거리 출퇴근으로 지쳐 뚜벅이로 전향한 남편의 운전 알레르기 때문이었다. 그 후 우리는 시부모님과 두 시누이들 가족들과 함께 가는 대가족 여행을 꾸렸다. 운전은 베테랑 시아버지께서 해주셨고, 막내딸은 사촌언니들과 어울렸고, 둘째는 할머니 할아버지, 고모들과 고모부들 말에 경청했다. 주로 펜션에서 함께 먹고 즐기던 여행이었는데 코로나 전, 어머니의 병환이 깊어지기 전까지 해마다 계절마다 떠나곤 했다. 어머님이 안 계신 지금의 시댁에 다 같이 모이면 그 시절 사진들을 보면서 소중한 추억 여행을 한다.
딸아이와의 추억 쌓기 여행의 운전자가 된 내가 이번 여행을 잘 이끌 수 있을지 저 하얗고 굵은 목화솜 같은 눈들에게 마음속으로 묻고 있다. 과거의 남편처럼... 더 과거의 누군가처럼...
눈이 날아와 부딪히는 차창 너머로 또 다른 세계가 열리고 있었다.
목포의 향일암에서
영주 부석사 대웅전 앞에서 내려다본
춘천 소양호
<그 시절 사진들은 인물 위주의 사진이라서 몇 안 되는 경치 사진을 올려보았다>
해는 왼쪽 산 너머로 사라졌다. 오른쪽으로 펼쳐진 동해바다는 점점 회색빛으로 변해갔다. 눈에 선하던 푸른 바다와 하늘과 산 중턱은 점점 어둠에 묻혀갔다. 앞장서서 달리던 용달차의 후미등은 한쪽 등만이 살아 아슬아슬한 해안도로를 굽이굽이 달리고 있다. 사위는 캄캄해져 왔고 뒷자리에 앉아 희미한 외등에 시선을 떼지 않던 나는 문득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아버지의 첫 동해안 운전이었다. 가족 여행의 운전대를 잡으신 아버지의 뒷모습은 숨소리마저도 숨죽이게 했다.
아버지는 늦게 운전면허를 따셨다. 남동생까지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야 우리 집엔 자가용이란 게 생겼다. 그해 여름 아버지는 진해 이모 댁을 비롯해 남해와 동해를 아우르는 장거리 여행을 계획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역대급 스케줄을 소화해낸 아버지가 대단하게 느껴지는 건 전혀 이상하지 않다.
외눈의 트럭은 사라지고 우리는 삼척으로 입장을 했다. 작은 중소도시는 밤을 뚫고 들어서는 외지인을 조용히 맞아주었다. 군데군데 불빛이 모여있는 중심가에 자리한 숙소에 차를 쉬게 한 다음 근처의 음식점에서 늦은 저녁식사를 했다.
대학생이 된 두 남매와 엄마와 아빠는 식탁에 둘러앉아 낮동안 둘러보았던 동해안의 경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버지는 소주를 들이켜시며 하루 종일 운전하느라 쌓였던 긴장과 피로를 푸셨다.
"나는 이렇게 쭐(아버지는 우리에게 술을 이렇게 애교 있게 표현하셨다)을 먹고 한숨 푹 자고 나면 피로가 싹 풀린다니까. 자, 너희들도 한잔씩 혀. 내일은 강릉 경포대로 가자고!!"
그때 아버지가 건네신 술잔은 그 후 내가 결혼하고 육아와 일을 하면서 지칠 때마다 이어졌다. 지금은 받을 수 없게 되었지만 삶이 그리워질 때면 나는 스스로 나에게 술잔을 건넨다. 그럴 때마다 그 술잔은 아버지가 나에게 건네는 술잔이 되었다.
밤새 아버지의 코 고는 소리에 잠을 설쳤던 삼척의 밤은 고요하고 고즈넉했다.
"집에 가기 싫다. 가기 싫어.."
"그럼, 여기서 살 거야? ㅎㅎ 다음에 또 오면 되지."
바닷가 모래사장에 앉아 일어서지 않는 아이를 달래고 달래었다. 전날 도착한 해안은 비와 눈과 바람, 파도로 인해 대부분의 시간을 숙소에서 보냈다. 마침내 아침에 내다본 동해의 바다는 구름 사이로 보이는 푸른 하늘을 맞잡고 깊고 짙은 온몸을 파도로 내보였다. 꽃샘추위는 바닷가를 휘감고 있었고 우리는 1박 2일의 여행을 아쉽게 마감하고 되돌아섰다.
눈 속을 헤치고 왔던 전날보다는 훨씬 맑은 날씨 속에서 운전을 할 수 있었다(국지적으로 눈이 여전히 날리는 곳도 있었다). 전날 눈안개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던 풍경들이 멀리 설산의 모습을 드러내었다. 높게 펼쳐진 겨울산의 모습은 당당하지만 마지막 계절의 뒤안길을 지키는 외로운 모습이기도 했다. 이제 먼 산의 눈은 녹아내리고 새로운 계절을 환복할 것이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온 나와 가족들도 새로운 계절 속으로 녹아들어 갈 것이다. 심호흡을 해본다. 운전대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은 순간, 눈앞에 펼쳐진 풍경들은 나에게 힐링과 응원을 멈추지 않는다. 그 시절 남편과 더 오래전 아버지도 그랬을 것이다. 가족을 태우고 머나먼 여행을 하고 돌아는 길에 느꼈을 행복감 역시 그랬을 것이다.
먼 길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은 먼 산을 가슴에 품고 돌아오는 길이다.
집에 가기 싫은 이유
집으로 달려가는 길 집으로 달려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