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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위나 Dec 11. 2021

통기타의 기억





통기타

어쿠스틱 기타(acoustic guitar)라고도 한다. 기타의 한 종류로, 금속 줄을 사용한다. '클래식 기타'와 구별하며 '포크기타'라고도 하지만 주로 통기타로 통용된다. 6현이며, 음계와 화음, 리듬을 모두 연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기본적으로 별도의 전기장치의 도움 없이 울림통(body)에 의해서 소리를 내지만, 종류에 따라 전기 장치에 의해 앰프로 소리를 출력하기도 하는데 이런 기타를 '세미어쿠스틱 기타' 혹은 '일렉트릭 어쿠스틱 기타'라고 한다.

 <위키백과 출처>




"아이고야, 이게 웬 난장판이라니..."

"엄마가 알아서 해줘.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전면 등교가 시작된 어느 날의 아침, 초등학교 6학년 딸아이의 방은 폭탄 맞은 것과 같다.

부랴부랴 현관을 나서는 딸아이를 배웅하고 작은 방으로 들어가 폭탄의 파편들을 주섬주섬 주워 든다.  나는 어릴 때 어땠을까 생각해보았다. 나도 별 수 있었겠는가 싶더니 문득 어릴 적 살림을 도맡아 해 주셨던 할머니가 잠시 떠오른다.  침대에 쌓여있는 옷가지들을 구분해서 몇 개는 세탁기에 넣어두고, 또 다른 옷은 벽에 걸어두고 그 밑에 팽개쳐진 학원 가방이며 이런저런 물건들을 제자리에 차곡차곡 넣어둔다. 무심코 옷장과 벽 사이 모퉁이에 가방들이나 옷들에 가려 평소에는 보지 못하고 지나치던 어느 커다란 물건이 눈에 들어온다. 어둡고 좁은 그곳에 있던 먼지가 쌓인 기타 가방과 그 안에 들어있을 기타가...






"엄마, 저 기타를 사야 될 거 같아요."

"어, 그래, 사러 가자."

고등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큰 아이의 말에 아무런 지체 없이 악기점으로 데리고 갔다. 수행평가에 필요하다고 하니 어떤 망설임이 을까마는 기타라는 악기가 나에게 낯설지 않은 악기였기에 더욱 그랬는지도 모른다. 기타를 사들고 오는 길에 아이에게 어디서 어떻게 배울넌지시  물어본다. 동아리 활동을 하거나 혼자 책이나 인터넷으로 배워본다고 한다.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다 보니 내가 더 기대감에 벅차오른다.

 나의 설렘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그 후 수행평가 때는 비교적 다루기 쉬운 다른 악기로 수행을 했다. 3년 가까이 그 기타는 방 한구석에 놓여있다가 고3 수능이 끝나고 나서야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나마 그것도 시간 여유가 생겼을 때 잠깐 강습을 받았을 뿐 아이는 더 이상 기타를 팔에 끼지 않았다. 어디 둘 데도 마땅치 않아 딸아이 방구석에 세워두고 나니 저나 나나 잊고 또 3년이 지나가는 무렵 방 정리를 하다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나에게도 기타가 있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기타에 흥미를 느끼게 된 건 나보다 두 살, 네 살 위인 사촌 오빠들 때문이었다.

 명절마다 혹은 방학 때나 제사 때나 큰집에 가게 되면 건넌방 냄새 퀴퀴한 골방에서 쉴 새 없이 기타를  쳐대는 오빠들의 손놀림과  기타 줄의 공명 소리에 나의 눈과 귀는 황홀 그 자체였다.

 기다리다 지칠 때쯤 오빠들이 기타를 던져주면 나는 재빨리 그것을 끌어안는다. 총 여섯 개 중의 금속줄 중에서 다섯 개의 줄을 왼손의 다섯 손가락 끝이 전기가 오도록 있는 힘껏 누른 다음 쭉 뻗은 오른팔의 검지부터 새끼손가락까지의 손톱으로 기타 줄을 위에서 아래로 차례로 튕겨본다. 디리링~  나무판으로 이루어진 기타의 몸체 안에서 각 기타줄의 공명 소리가 화음이 되어 울려 퍼진다. 그 순간 기타의 울림은 나의 질풍노도에 시원한 바람이 되어주었다.

 하루나 이틀 그렇게 통기타에 젖어있다 집으로 돌아오면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은 악기의 울림과 그것을 연주했던(연주라고 하기가 민망하지만..) 양손의 제스처의 기억은 그대로 남아 집안의 빗자루, 심지어는 필통이라도 옆에 끼고 띠리링 손을 내두르는 흉내를 내곤 했다.

 그렇게 지내는 동안 나는 아빠를 졸라댔고 그 시절 적지 않은 돈을 들여 기어이 기타 하나를 장만하고야 말았다.

 나는 마냥 좋아서 방구석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 기타를 만지고 튕기고 빨개진 손 끝 호호 불어 가면서 듣기 민망한 목소리로 노래도 내지르면서 기타 삼매경에  빠져지냈다. 다만, 누구한테 교습받을 생각은 꿈도 고 그냥 나 혼자, 그리고 가끔 방문하는 큰집의 오빠들을 보면서 그것을 튕겼으니 그때의 나의 기타 실력은 지금도 여전히 부끄러운 노래만큼이나 아주 형편이 없었다.(요즘은 인터넷과 유튜브의 도움을 받으면 얼마든지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양희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한계령, 신촌블루스의 아쉬움 같은 노래는 코드가 쉬워서 제법 즐겨 쳤던 기억이 기특하게 남아있다.

 혼자 방구석에서 만지작거리기만 하고 실력은 늘지 않고.. 또 변덕스러운 사춘기 여중, 여고생이었던 주인을 만난 죄로 얼마 지나지 않아 기타 가방에는 뿌연 먼지만 쌓이게 되었고, 이후 친정집 어느 방구석에서 나를 시집보내고 남아있던 주인 잃은 애물단지는 나중에 어디 입양을 보냈는지 결혼 후 가끔 갔던 친정집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고, 내가 그것을 쳤었다는 기억조차 희미해졌다.







그렇게 아스라하게 기억너머로 사라진 물건이지만 나에게는  기타에 대한 아련한 억이 있다.

그날은 할머니의 생신날이었다. 케이크에 초가 켜 있고 할머니께서 초를 끄기 전 생일 축하노래를 시작할 무렵  "잠깐만요."

외치며 건넌방에 후다닥 다녀온 사촌오빠의 두 손에는 기타가 들려있다.

"하나, 둘, 셋, 시이작!"

디리링 기타가 울리고 노래가 울려 퍼진다.

"생일 축하합니다, 이히~ 생일 축하합니다, 오호~ 사랑하는 할머니, 앗싸! 생일 축하합니다, 오레~~"

경쾌한 박자의 기타 소리에 절로 신이 난 총 10명의 손주들은 노래 사이사이에 박수를 치고 추임새를 외치며 휘파람과 하이톤의 목소리로 합창을 이어갔다. 엄마, 아빠, 큰아버지, 큰어머니, 고모들과 고모부들 모두 박장대소하셨다. 노래의 흥은 한 번에 그치지 않아 두세 번 연거푸 반복되었고 노래가 계속되는 동안 할머니는 함께 박수를 치며 목련꽃 같은 함박웃음을 지으셨다. 기타라는 악기 하나로 축제 같은 하루를 보냈던 그날은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아직도 나에게는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나에게 있어 할머니는 엄마와 같은 존재였다. 맞벌이를 하신 엄마를 대신해 나와 동생을 돌보신 할머니는 내가 결혼 후에 돌아가셨고 지금은 가슴 깊은 곳에서 아스라이 자리하고 계시다가 가끔 물결을 일으키시곤 신다. 그날의 기타 연주 생일 축하 노래와 함박웃음으로...






 등교한 딸아이 방을 대충 정리한 후, 나도 출근 준비를 한다.

 먼지 쌓인 기타 가방과 그 안에서 어떻게 자리하고 있을지 궁금한 기타가 떠오른다.

 내가 다시 그 악기를 만질 수 있을까. 어린 시절 그냥 지나쳤던 시간과 노력을 다시 들일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피어오른다. 

 내가 그 기타를 만져보기전에 어쩌면 딸아이가 문득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엄마, 기타가 필요할 거 같아요."









 두 세계라는 매거진입니다. 현재에서 과거로의 추억여행이지요.

 추억여행의 여정은 끈끈하게 이어져 있어 과거의 세계에서 더 깊은 과거의 세계로 이끌어줍니다.

 현재와 과거, 그리고 과거에서 더 과거로의 회상은  마치 우주의 웜홀을 오가는 탐험과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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