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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두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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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위나 Jul 09. 2020

장독 김치맛을 기억하시나요

김치맛은 추억의 발효이다






눈꺼풀이 무거워지는 오후 무렵, 할머니 환자분이 무겁게 뭘 들고 오셨다.

"내가 근자 허리가 아파서 아무것도 못했는데, 침 몇 번 맞고 열무를 담갔지 뭐여.  좀 가져와봤어. 그리고 작년 김장김치가 많이 남았길래..."

"어머, 뭐 이런 걸 다.."

집에는 초록색과 사투를 벌이는 아이들이 있을 뿐이고, 입맛 까다로운 남편이 있을 뿐인데, 먹을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걸 아무에게 알리지 않고 그저 호들갑 떨면서 받아 들었다.

한약찌꺼기(한약을 달인 후 남은 약재)를 제공받으시고(밭에 뿌리면 작황이 좋다고 한다) 수확한 작물을 가져오신 분계셨는데, 이렇게 완성된 요리를 받은 기억가물가물하다. 열무김치의 젓갈 냄새와 묵은 김장김치의 시큼한 향이 어설프게 묶은 비닐 매듭 틈새로 새어 나온다. 서둘러 수납장에서 비닐팩을 꺼내 이중삼중 냄새 잠금장치를 한 다음 탕비실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냉장고에 넣어둔 김치들을 까먹고 다다음날에야 집에 공수해왔다.

맛도 못 본 김치가 맛있다며 너스레를 떨었기에 괜한 미안함에 퇴근하자마자 김치 꾸러미를 푼다.

열무김치는 익혀야 한다는 말이 스쳐 지나간다. 갓 담근 김치맛도 좋아하지만 그래도 열무김치는 익혀야 제맛이다.

주방 한켠에 열무 김치통을 조심히 놓아둔다.

이젠 김장김치 차례..

별다른 고명도 없고, 빨간 고춧물만 물들어 놓은 포기지였다.  속줄기 하나를 찢어 입에 넣어본다.

그.러.나.

이로 씹히는 묵은 김치는 빨간 단색에서 형색색의 맛으로 분화한다.

분화된 맛들은 혀의 미각세포를 지나 머릿속에서 맛으로 지각되는 게 아니라 어떤 기억으로 재생된다.

예전 언젠가 어떤 시절에 먹던 어렴풋한 김치 맛으로...








"이 집 추어탕 하나도 안 매워. 괜찮아, 먹어봐."

그녀를 처음 만난 건 둘째 아이가 초등 2학년 새 학년 봄날 추어탕 집에서였다.

그때 나는 셋째를 출산해 모유수유하던 때라서 추어탕이 얼마나 매울지 고민하고 있었다.

이런 나앞에 앉은 단발머리의 그녀는 마치 주방 메인 아줌마처럼 단호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말을 믿고 덜컥 먹어본 추어탕은 어찌나 매웠는지... 오랫동안 매운 것을 입에 대지 않았기에 더 맵게 느껴졌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속았다는 느낌만 들어 얄궂은 수저만 휘휘 젓어댔다.

새 학년 반모임에서 그렇게 인연을 맺은 그녀는 나보다 몇 살 위인 선배맘으로 유치원 다니는 셋째와 초등 딸 2명을 둔 아이 셋 맘이었다.

우리는 같은 나이에 셋째를 낳았다는 공통점과 친정이 멀다는 유대감으로 아이들이 학교에 가 있는 동안 그녀의 집에서 티타임을 즐겼다. 막내딸을 업고 찾아간 오전의 자유시간은 그렇게 달콤 수가 없었다.

어느 날, 그녀의 집으로 들어섰을 때 그녀는 한참 분주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고 주방에서는 감자와 갖은 야채가 끓고 있는 냄비가 김을 모락모락 올리고 있었다. 수제비를 만드는 중이라고 했다.

"어머, 오늘 같은 날 딱 좋은데요."

"어서 먹자, 아침 안 먹었더니 배고프네." 

희뿌연 감자 국물과 수제비 한아름 우물거리다가 곁들여놓은 김치 한 조각 입에 넣는다. 묵은 김장 김치 같은데 어떻게 익었는지 아삭한 배추 줄기 속의 알록달록한 발효맛이 오래전 익숙한 기억으로 입안을 채색한다.

"와, 이 김치 너무 맛있어요."

"그래? 맛있지? 작년에 내가 담근 김장 김치야. 이따가 갈 때 좀 싸줄게."






이른 아침 평소와 같이 서둘러 학교에 갈 준비를 한다. 셔틀을 타려면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아침은 늘 분주하고 긴장의 연속이었다. '딸각' 문소리가 나더니 할머니께서 들어오신다. 손에 쥔 양푼에 소복하게 김치가 담겨있다.

"할머니, 빨리 밥 주세요."

"마당에 가서 김치 좀 내왔지, 그래, 내 강아지 어여 밥 묵자."

다른 식구들은 아직 눈곱도 안 떼었는데 수험생은 밥 먹으면 이제 출타이다.

입이 깔깔한 수험생은 그 새벽 분주하게 앞마당에 나가서 땅속 묻어둔 김칫독의 김장김치를 꺼내오신 할머니의 부지런한 사랑을 밥에 올려 먹고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하며 하루 문을 연다.


그땐 몰랐. 급하게 국에 밥 말아 김치 올려 먹고 나오던 그 시절이 먼 훗날 타임슬립이 되리라는 것을...








"와, 김장독이네요."

그녀가 제 몸이 들어가도 될 만큼의 커다란 독 속에서 김치를 꺼낸다.

"어, 직접 이천에 가서 사온 거야. 여기에 겨울 동안 넣어두고 먹으면 정말 맛있어."

겨우내 햇빛이 들지 않는 뒷베란다 김장독 안에서 그녀의 김치들은 그렇게 추억과 기억의 맛으로 익어가고 있었다.

"땅속 김치보다야 못하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먹으면 얼마나 맛있는데..."

그녀의 얼굴에 스가는 물결이 내 눈에 비치었다.

그리고 서로에게 무언의 순간이 잠시 내려앉았다. 각자가 기억하는 김치맛이 김장독 안에 보관되고 있던 것이었다.

지금도 그렇고  당시에도 그랬듯이 집집마다 들여진 김치냉장고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발효의 과학을 이룬 현대 기술의 정점에서 우리는 커다란 혜택을 누리며 살고 있다. 그 고마움을 잊은건 아니지만 우리에겐 놓치기 싫은 아스라한 추억이란 브랜드가 있다.

그녀의 김치 두 포기는 그 후 일주일 정도 나를 행복하게 해 주었다.  젓갈 푹푹 넣고 청양 고춧가루 범벅에 알맞게 익은, 친정 맛의 그 김치를 나 홀로 차지하고 먹는 기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다.







"이 김치 정말 맛있어."

'아구작, 아구작' 거리며 씹는 김치 맛 하나로 이렇게 행복할 수가 있다니...

역시 맛있는 것은 혼자 먹어야 제맛이다. 

나의 입맛은 변한 게 아니었다.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좋아하는 맛은 여전하다.

젓갈이 적게 들어가는 시댁 김치에 젖어든 지 오래 건 만, 친정 김치를 못 받아먹은 지 오래건만, 익은 김치, 안익은 김치, 젓갈이 많이 들어가도, 적게 들어가도 어떤 종류의 김치도 다 잘 먹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건만, 오래전 어느 시절 김장독에서 겨울과 봄을 지내면서 제 스스로 몸을 익힌 김치의 맛이 재현되자 내 몸이 잘 익은 배추김치 한 포기가 되어 그 시절 밥상 위에 누워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열심히 내 할 일을 했을 뿐인데, 맘씨 좋으신 동네 할머니로부터 보석 같은 김치를 얻었고, 그 김치를 먹는 순간, 한 폭의 추억의 문 열으며 그 문 안에 존재했던 공간에서 또 다른 시간의 문 열었다.

지금은 되돌아갈 수 없는 시간들이지만, 지금은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 되었지만, 먹고 싶다는 소망조차 희미해져 이제 추억이 되어버린 김치지만, 언젠가 또 불쑥 찾아와 나만의 웜홀을 열 수 있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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