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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두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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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위나 Jun 15. 2020

여름의  한가운데에

나의 여름 안에서


     


머리맡 햇볕이 뜨거운 6월이다.

이글거리는 길 위를 걷는 사람들 얼굴에 마스크가 씌어있다.  마스크 안 입김마저 뜨거운 여름이다.


아이들이 코로나 학기로 인해 집에서 생활을 주로 하고 있다.  

겨울 방학부터 지금까지 집콕 생활을 하는 탓에 신경 쓰이는 게 여간 많은 게 아니다. 그래도 아이들이 고만고만했던 예전에 비하면 지금은 무덤 탈출인 셈이다.(아직 무덤에 계시는 분들께는 송구하지만.. 탈출할 날이 올 것이기에..)

나에게 무덤 같았던   여름 평소에 피해다니던 에어컨을 솔선수범하여 먼저 켜대, 집안 청소를 하건 음식 장만을 하건 에어컨 없이는 아무것도 못했다. 초등 1, 2학년 철부지 연년생 아이들과 뱃속에서 점점 커가는 셋째로 인해 그 해 여름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지금까지 겪었던 여름 중에 제일 더웠던 것 같다.

사실, 막내딸이 태어났던 그다음 해도, 제법 콩닥콩닥 뛰어다니던 그다음 해도 덥긴 매한가지였다. 지금에야 생각하지만 매해 여름 한가운데서는 늘 더웠다.

                      

얼마 전 코로나로 인해 연기된 개학 발표가 나면서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교실에 에어컨을 틀지 않다는 지침이 있었다가 철회된 적이 있었다. 요즘 일주일에 하루 등교하는 초등 딸아이의 얘기로는 창문 한두 개 열어놓고 에어컨 가동 중에 수업을 한다고 하니 그나마 아이들이 시원하게 학교 생활을 하게 된 것이 다행. 그 옛날 선풍기 몇 대에 의존해서 요즘 아이들의 두 배나 되는 학생들이 교실에 모여 지냈던 중고교 시절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고3 여름방학...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다 알 것이다.

힘들었던 그해 여름의 한 복판에서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하고 있는 사건 하나 있었다. (사실, 사건이란 단어조차  창피 정도로 어처구니없다;;;)

당시 방학었음에도 불구하고 보충수업 있어서 매일 학교를 가야 했다.  고3 슬럼프였는지, 아니면 느지막한 중2병이었는지, 그것도 아니면 더위를 먹어 무기력했는지, 보충 기간 중의 어느 날 등교지 않고 학교 가는 방향과 반대의 길을 무작정 걸었다.

무거운 가방을 메고 동네를 빠져나왔을 때 이미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더위가 머리끝에 위세를 부렸고 더 이상 걸을 힘도, 가야 할 목적지도 없었던 나는 길 건너 보이는 독서실로 들어갔다. 집 나오고 학교 안 가고 간 곳이 겨우 독서실이라니... 더위를 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건만  방학이라 독서실 예약이 다 차서 자리가 없다는 사실에 머리가 멍해진 상태로 열기를 내뿜는 아스팔트 거리로 다시 나왔다

그리고선 근처 구멍가게에서 음료수를 사 먹었던 듯하다.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가 버스 하나를 집어탔다.

그리고 내가 간 곳은 시립 도서관....

다행히 시원했다. 하지만 내 마음과 머릿속은 여전히 뜨거웠다.

내가 왜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왜 학교를 안 갔는지, 뚜렷한 목적 없이 아무 계획 없이 저지른 행동에 대해 후회를 하다가 어느 순간 푸드덕 가방을 싸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니 엄마는 낮잠을 주무시고 계셨고, 다음날 학교로 갔을 때는 몇몇 친구들만이 어제 왜 안 나왔냐고 물었을 뿐이었다. 담임선생님은 아마 내가 학교를 안 나온 줄 모르는 듯했다.

그렇게 나의 어설픈 가출기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끝이 났지만 그때 나에게 쏟아졌던 뜨거운 태양은 해마다 나를 찾아와 허허로운 웃음을 짓게 만든다.


또 하나의 여름이 있었다. 대학 1학년 때의 여름이다.

기말고사를 마치고 방학이 시작되고, 막 여름이 고개를 들 무렵 같은 동아리의 한 선배와 영화를 보았다. 기말고사 전에 그 선배의 리포트를 도와댓가였다.  교재의 어떤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는데 처음에 부탁을 받았을 때 거절을 못했던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다. 여하튼 영화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동방불패나 소오강호 같은 류의 영화였던 것 같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영화를 본 후 밥까지 사주는 방학이라 집에 올라간다면서 헤어진 그 선배가 여름 내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것이었다.

대학 첫 방학이라고 특별히 한 일은 없었친구와 컴퓨터 학원을 다녔을 뿐인데 그 해 여름은 뜨거웠던 날씨만큼 내 마음도 뜨거웠었다.    

저녁이 되면 퇴근하자마자 에어컨을 켜대는 한 남자가 있다.

그는 그해 나의 여름을 알고나 있는지...

            

여름은 더워야 제 맛이다.

나는 더위를 잘 타지 않으나 한여름의 절정을 알고 있다.

내가 여름을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아니지만 언젠가부터 8월 중반쯤 수그러드는 여름때면 왠지 친한 친구를 보내는 듯한 아쉬움을 느낀다. (이쯤 되면 좋아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나의 질풍노도의 시기도, 첫사랑으로 애태웠던 시기도 모두 한여름의 꼭대기였다. 아이들과 힘겨웠던 시절들도 불볕이었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여름은 계속되지 않았다.

나의 뜨거웠던 질풍노도 가을로 변해버렸다.

한여름의 첫사랑으로 애를 태웠으나 지금은 사랑의 결실로 살아가고 있.

아이들과 힘겨운 여름을 보냈으나 그 아이들은 어느덧 성장해 있다.


해마다 여름은 위세를 더해 맹렬해지고 있다.

그때마다 내 안의 여름도 나에게 고난과 열정을 가져다준다.

또한 나의 추억을 되살려주고 그것을 발판 삼아 이번 여름도 무사히 잘 지내보자는 오기와 희망을 갖게 된다.

올여름은 나에게 어떤 여름이 될 것인가...

올해도 계절이 다 할 때쯤 아쉬움을 느낄 것인가...          



여름의 한가운 있 분들에게 이렇게 전하고 싶다

당신의 계절은 지금 가장 찬란하 빛나고 있다고...

이 계절이 지나도 당신의 여름은 또 다른 모습으로 돌아올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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