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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두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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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위나 May 20. 2020

딸이 달라졌다

딸아이와 나의 평행세계




"안녕하세요."

"어... 어, 그래 안녕."

딸아이 방에 들어선 남편이 바로 나오고 만다.

"저 방에는 **이 친구가 있어."

당황한 남편의 말을 듣고 나는 소리 없는 웃음을 지었다.

아침에 자고 있는 딸아이 방에 들어섰을 때 침대 밑 충전기에 꽂혀서 전날 밤부터 그 시간까지 음악을 뱉어냈을 스마트폰을 발견하고 나도 당황했었다

딸아이의 방에는 친구가 있다. 밤새 흐르는 음악이 있다.

그 방 컴퓨터 화면에는 BTS의 동영상이 펼쳐져 있고, 옆에 세워둔 스마트 폰 속에는 딸아이의 친구가  있고, 책상 위에는 잔소리 무마용으로 영어학원 교재가 펼쳐져 있다.

딸아이는 하루의 대부분을  친구와 함께 화상으로 수다를 떨어가며 좋아하는 가수를 보면서 영어 숙제를 하고 있다.


딸이 달라졌다.

불과 두 세 달전까지 내가 옆에 누워있어 줘야 잠이 들고 '엄마가 제일 좋아'라는 말을 입에 달고 지냈던 딸아이가 180도 달라졌다.  

엄마 없이도 혼자 잠이 든다. 혼자가 아니라 단짝 친구와 수다를 떨다가 혹은 BTS의 음악을 들으면서 잠이 든다.

엄마가 해주는 볼 키스를 거부한다. 연년생 아들 둘을 키우다 둘째와 8년 터울로 낳은 막내딸은 그렇게 이쁠 수가 없었다. 오빠들을 제치고 사랑을 독차지하면서도 일하는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던 아이는 이제 단짝 친구와 BTS를 더더 좋아한다.

딸아이의 이런 변화에 한동안 나는 서운한 감정을 추스를 수가 없었다. 남편과 주변 엄마들은 이제 해방된 민족이니 마음껏 스스로의 생활을 누리라고 다독여줬다.

그리고 이런 변화에 동화가 되어가던 어느 시점에 나는 어떤 기억을 떠올리게 되었다.


"인숙아, 놀자~"

파란 페인트칠이 햇빛에 반사되어 눈이 부시다. 살짝 열린 대문을 조심스레 밀었다. 햇빛에 데워진 철문이 따뜻하다.

"어서 들어와. 나 이것 좀 해야 하니까 잠깐 내 방에 가 있어."

인숙이는 빨래를 널고 있었다.

인숙이네 엄마와 나의 엄마는 두 분 다 선생님이셨다. 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나와는 달리 인숙이는 가끔 집안일을 하곤 했는데, 동생들을 돌보기도 했다.

그 애의 방에는 커다란 카세트가 있었고 그 주변으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책들이 쌓여 있었다.

잠시 후 인숙이가 들어왔고 햇빛이 조금은 기울어진 희미한 방에서 우리 둘이는 음악을 들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어제 티브이에서 듀란듀란 뮤직비디오 봤어? 너무 멋지더라"

"아니, 외갓집에 다녀오느라 못 봤어. 흑흑"

당시 우리는 팝에 빠져 있었는데 나는 A-ha를, 그 애는 Duran Duran과 Wham을 좋아했다. 주로 팝송과 팝가수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고 때로는 함께 서점에 가서 잡지를 고르는데 좋아하는 가수의 사진이 그럴듯하게 장식돼 있으면 사기도 했다. 각자 다른 잡지를 사서 바꿔보기도 했고, 부록으로 받은 가수들 사진을 서로 주고받기도 했다. 그러다가 우리는 서로 다른 중학교를 진학하면서 소원해졌고 나는 그 이듬해 인근 도시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기억에서 차츰 멀어져 갔다.


친구가 좋아지고, 가수라는 우상이 생기고, 혼자만의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는 딸아이가 나의 그 시절과 오버랩되면서 서운했던 마음은 눈 녹듯이 사라지고 마음 한켠이 포근해진다.

일하는 엄마를 두었던 나와 인숙이, 역시 일하는 엄마들을 두고 서로 의지하는 딸아이와 친구(사는 곳도 같은 아파트 옆 동이고 작년에는 매일 함께 등하교도 했었다)는 어제와 오늘이라는 시간차가 있지만 초등 고학년에서 사춘기로 성장해가는 첫발을 내디딘 동지처럼 느껴진다.

이제 딸아이가 어떤 변화를 겪고 어떤 길을 가도 옆에서 소리 없이 웃어주고 울어주고 응원해줄 수 있겠다. 어린아이를 안아주고 다독여주고 앞장서서 인도해주던 자리가 아닌,  내 키를 이제 막 넘어선 아이 옆에서 어깨동무하고 앞을 바라보는 친구같은(오로지 내입장에서만..) 자리에서...

 

앞으로 딸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면서 나는 또 어떤 평행세계를 만나게 될까...

내가 네가 되고 네가 내가 되는 그런 세계

다르지만 다르지 않은 그런 세계

혼자이지만 혼자이지 않은 세계


"엄마, 방탄 노래는 정말 좋아, 가사가 예술이야."

"딸아, 아하 노래는 지금 들어도 정말 좋아."

"엄마, 석진 오빠가 얼마나 잘 생겼는지 알아?"

"딸아, 모튼 하켓이 얼마나 잘생겼는지 넌 모를 거야""




딸아이 덕분에 BTS 7명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잊혀진 A-ha의 사진들이 인터넷에 가득하다!


 



입덕한 딸아이의 방탄캐릭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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