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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두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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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위나 May 16. 2020

나의 할머니

  





내 어렴풋한 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까마득한 어린 시절의 첫 정거장에서 출발한다.

어린아이는 낮잠을 자다 일어난 것 같았고 아무도 없는 방에서 홀로 앉아 서럽게 울어다.

한참을 울고 나니 누군가 들어왔고 아이를 안고 달래주다가 본인의 볼을 아이 이마에 비벼댄다. 잠시 후 아이 이마에 젖은 수건이 올려져 있다.     


다음 정거장은 초등학교 1학년 소풍이다

많은 아이들  엄마 손을 잡고 소풍 길을 가는데 그 날 한 할머니께서 오셨고 도시락 들고 말없이 한 아이 곁을 지켜주셨다   


중학교 어느 정류장, 함께 방을 쓰던 막내 고모가 시집을 갔고 그 날 할머니는 많이 우셨다.

할머니가  맞벌이하시는 엄마를 대신해 우리 남매를 키워주시고 살림을 하시는 노고 뒤에 나와 함께 성장한 고모가 있었음을 깨달았다.     


고등학교 시절, 새벽같이 일어나 할머니가 끓여주시는 말간 장국에 밥을 말아 휘휘 들이키고는 가방 메고 바삐 나서는 나에게 현관 앞으로 따라오셔서 빨대 꽂은 요구르트를 건네주시며 등을 쓸어주셨다.     


내가 대입에 실패했을 때 이불을 뒤집어쓰고 하루 종일 울어도 묵묵히 지켜봐주시던 할머니...

대학시절 연애하는 걸 엄마보다 먼저 알아차리셨던 할머니...

내 친구의 이름을 엄마보다도 더 많이 알고 계셨던 할머니...


할머니의 칠순잔치였다.

나와 사촌들이 한복을 차려 입고 절을 하였다. 그때만큼 할머니의 얼굴이 만연히 환한 웃음을 지으시는 걸 본 적이 없다. 그 날 할머니 입가와 눈의 웃음주름은 둥글고 둥글어 목련꽃 같은 얼굴이 되셨다.      


결혼 후 아이를 낳고 기를 때 친정에 가면 할머니는 외증손주를 하루 종일 안아주셨다.

아이가 이뻐서 그랬는지, 아님 내가 조금이라도 더 편하길 바라셨는지 나는 아직도 궁금하다.


그날도 두 아이를 돌보느라 정신없을 때였다.

갑작스러운 비보를 듣고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걸 처음으로 알았다.     

어린 두 아이를 시댁에 맡기고 달려간 종착역에는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는 할머니가  누워계셨다.   


종착역에 내리지 않고 열차는 더 달린다.

세째 아이와 나는 할머니의 산소 앞에 앉아있다. 산소 주변에 둥근 목련이 활짝 피어있다.


추억의 열차는 내 마음속 간이역마다 정차하여

때로는 심장을 뛰게하고

때로는 숨이 차오르게 하며

때로는 몽롱한 환상을 일으키기도 한다.     

나는 종종 이 열차를 타고 여행을 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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