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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두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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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위나 Jul 25. 2020

너와 나의 온도 차이, 속도 차이





비가 많이 쏟아진다. 거리의 가로수들이 누우려고 하는 게 바람도 제법 분다.  이런 날씨에 상반된 상황이 있

"어! 시원해서 좋다."

"어우, 추워."

우리 부부의 동시이어(同時異語)이다

연이어 비 내리는 날씨에 남편과 에어컨 실랑이를 벌일 일이 없으니 잠잠한 하루하루가 평온하기는 하나 이 또한 길게 가지 않을 것이기에 조만간 해마다 찾아오는 여름 전투를 예상한다.

"어우, 추워. 에어컨 좀 끄면 안 돼요?"

"안돼!"

"엄마, 나 추워."

"방으로 들어가자."

남편은 거실 소파에 자리 잡고 에어컨을 쐬고 딸아이와 나는 안방으로 피신을 한다.

거실과 주방을 나가려면 봄가을 걸치는 카디건이라도 걸치고 나가야 한다.

밤이 되면 잠자리에 들 때도 에어컨을 피해 나는 안방에서, 남편은 거실에서 잠을 잔다. 북극 같은 거실에서 혼자 호의호식하며 남편은 그렇게 여름을 보낸다.

"점점 더하는 거 같아, 당신."

"체중 때문에도 그렇지만 속에서 열불이 느껴져. 수록 화가 많아지는 거 같아."

"에휴, 그 성격 어디로 가나요."


원래 급한 성격에 갱년기까지 겹쳐져서 (내가 생각하기에) 별거 아닌 거에 불타오른다.

그러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그라드는데 이게 당하는 입장에서는 혼란스럽다. 처음에는 속으로 참다가 그 사람의 온도 변화를 이해한 다음부터는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게 되었는데 나도 나이가 먹어질수록 서서히 속에서 부싯돌이 부딪쳐 연기가 피어오르는 지경이다.

이렇게 되면 나도 남편의 온도를 따라잡을 법도 한데 상승하는 나의 온도보다 저쪽에서 계속 치고 올라가니 나와 남편의 온도 차이는 살아질수록 좁혀질 기미가 감감무소식이다.






살아지면서 차이 나는 게 온도뿐이겠는가.

갑자기 화르르 타오르다가 꺼지는 짚불 같은 성격과 웬만해서는 불이 붙지 않는 부싯돌 같은 성격은 속도에서도 여실히 극명한 차이를 드러낸다.

불은 역동적이고 활동적이다. 상승하고 앞으로 치고 나간다.

무엇이든 빨리빨리 해야 하고 상대가 가만히 뭉개는 것을 못 참고 못 기다린다.

남편과 시부모님은 초고속열차이다.

결혼 초반 월드에서 속도 차이는 확연 드러났다.

시어머니는 저녁 찬거리를 아침 식사 끝내고부터 준비하셨다. 점심 전후로 완성하시고 쉬셨다가 저녁이 되면 데우고 차려내신다. 결혼 전 우리 집과는 너무 다른 것이었다. 엄마는 막 요리해낸 냄비를 바로 식탁으로 가져오셨다. 밥때가 훌쩍 지나서...

라면과 떡볶이만 해봤을 뿐 할 줄 아는 것 없이 시월드에 입성한 나는 모든 것을 시어머니로부터 배워야 했는데 손이 빠른 시어머니를 따라가랴 무던히도 숨이 찼었다.  지금은 놀라신다. 시어머니의 흔했던 말 "아직 안했냐"가 "벌써 했어?"로 변경되기까지 그 사이의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기에 나는 자부심을 느낀다. 이즘 되면 남편과의 속도전에서 나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건만 커다란 복병이 나타났으니 나의 원석(原石)으로 우뚝 선 큰아들이 바로 주인공이다.


"벌써 출발요? 아직 시간이 멀었는데요?"

"미리 가서 기다리는 게 낫지 않아?"

""뭐하러요.. 시간낭비 아닌가요 집에 있다가 시간 맞춰 나가면 되는걸.""

"그럼, 미리 준비는 하고 있어야지."

"......"

함께 모처럼 기차를 타고 지방을 가야하는 때에 남편과 아이의 신경전이 발발했다. 급하게 나의 중재로 시간을 늦추고 앞당겨서 출발할 수 있었다.

나를 기다리게 하는 그 아이는 남편과 속도전에서 속도 차이 마지노선을 넘었기에 제 아비도 기다리는 것을 포기하 큰아이는 나처럼 시속 300킬로의 고속열차가 될 가능성은 없단 말인가. 적어도 무궁화호만큼은 되어야지 지금은 사라진 비둘기호가 웬 말인가...

한 가지 재밌는 것은 딸아이는 학교 갈 준비를 다하고 소파에서 핸드폰을 하면서 함께 등교하는 단짝의 연락을 기다리는데 이 또한 느지막이 일어나 분주히 서두르다 할아버지의 픽업으로 여러 번의 지각 위기를 모면했던 큰아이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점이다.


아무튼 지간에 뭐든 빨리빨리 해치우려는 고속과 천천히 시간에 임박해서 마치려고 하는 저속의 팽팽한 줄다리기는 거미줄처럼 우리 집의 공기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외부적인 상황에 반응하는 온도는 제각각이다. 하나의 자극에 화르르 불타오르다가 이내 사그라드는 짚불 같은 불완전고온, 여러 자극에도 온도 상승 없이 미지근하게 반응하는 불연소저온..

는 아무것도 아닌 것에 화르륵하지만 나는 별일에도 그런가 보다 넘어가고..

그의 온도 변화가 극심하여 정신건강이 염려되기도 하지만 사실 안에 쌓아두는 것 없이 밖으로 발산을 하는 것이 오히려 낫다. 반대로 자각을 못하는 사이 화가 쌓이는 무감응저온상태가 훗날 화병에 고생을  가능성이 많다.

적당히 불타오르고 적당히 사그러주는 중간지점을 찾을 수는 없을까...

이 끝에서 저 끝 사이의 온도 차이를 극복할 수는 을까...

낮은 온도와 높은 온도가 만나서 중간 온도가 되기 위해...

그러려면 뜨겁고 차가운 피부가 서로 닿아야 하는 거 아닌가, 이 더위에...

 

속도전에서는 부지런히 따라가는 수밖에 없다.

거북이처럼 부지런히 따라가야 한다. 토끼는 잠시 쉬면서 뒤에 오는 거북이를 기다려주면 된다.

나야 장기간 훈련으로 무궁화호에서 KTX로 승격은 했지만 비둘기호 큰아들이 걱정이 돼서 한마디 해두었다.

"속도를 좀 높여야 나중에 아니, 조만간 사회생활이나 가정생활에서 숨이 안찬다. 너의 동료나 배필이 네 속도를 기다려주면 좋겠지만 그래도 부지런히 따라가야지, 안 그러면 상대방이 무척 답답하겠지..."


저와 내가 서로 다르다. 

하지만 다른 게 뭐 어쩌랴. 다른것을 같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온도가 다르면 서로 손을 잡아주자. 열기와 냉기는 서로 전도되어 온도 차이가  좁혀질것이다. 속도가 다르면 종종걸음으로 따라가자. 뒤돌아 잠시 기다려주.

서로 마주보는 온도와 속도만이 사랑을 지켜주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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