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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두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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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위나 Aug 21. 2020

내 생에 새 차는 처음이라





'띠리 띠리리...'

"여보세요, 네네..."

핸드폰을 받고 통화한 남편이 서두른다.

"지금 밖으로 내려오래, 어서"

"알았어요."

퇴근하자마자 바쁘게 저녁을 차려먹고 막 설거지를 끝내려던 찰나에 한 통의 전화는 우리를 긴장과 초조와 설렘으로 감쌌다.

주섬주섬 정리된 주방을 뒤로하고 땅거미가 내려앉은 아파트 마당으로 내려갔다.

"흐흡"

심호흡을 했다.

내 생에 새 차는 처음이다.






나의 첫차는 흰색 중고 베르나였다.

연년생 아들 둘을 키우느라 몇 년간 전업주부를 하던 중에 다시 일을 시작하려고 준비를 하고 있을 즈음 어느 날 저녁 남편으로부터 키 하나를 받았다.

"그동안 고생 많았어. 새 차도 아니고 좋은 차도 아니지만 처음 운전 시작하기에 또 출퇴근용으로 몰고 다니기에 괜찮을 거야."

남편에게 진정으로 고마웠던 몇 순간중의 한 순간이 그 순간이었다.

육아와 살림에 지쳐 일로 도망치려고 했던 만큼 힘겨웠던 나날들이 자동차 키 하나에 안개가 걷히듯 사라져 버렸다.

대학 때 어쩌다가 한번 만에 운전면허 시험에 합격하여 장롱에서 썩고 있던 면허가 그 날 이후부터 십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출퇴근 아이들 라이딩뿐만 아니라, 몇 년 전부터 아예 뚜벅이 신세로 전향해 핸들에서 손을 내려놓은 남편 대신 가족의 이동을 책임지는 운전 가장 노릇을 하게 될 줄은 그땐 미처 몰랐다.



 




남편은 지쳤다.

왕복 세 시간의 운전에 두 손 두 발 다 들고 차를 내팽개치고 전철로 출퇴근을 시작다.

남편의 차는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독수공방을 하게 되었고 나의 첫 차 중고 베르나는 점점 연식이 높아지고 있었다.

"내가 그 차를 몰면 안 될까?"

"나도 같은 생각이야."

이렇게 해서 나의 두 번째 차는 남편이 10년 가까이 던  S 중형차가 되었다.

크기 감에 차이가 있어 조심스럽게 몰고 다니던 어느 날 시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늘 차 팔렸다."

"네? 그럼 이제 그 차 없는 거예요?"

"왜, 서운하냐.."

시아버지의 공감 어린 한마디에 울컥했다.


바쁜 핸들을 움켜쥐고 삶의 일터와 쉼터를 함께 오고 다니며 동반자가 되어주었던 나의 첫차...

차를 타기 전과 차에서 내리고 난 후의 나는 이제야 아무리 생각해봐도 왜 그렇게 숨 가쁘게 살아왔는지, 매번 차에 타고 있는 순간만이 한숨 돌리는 순간이었고 슬픔과 기쁨의 눈물도 운전석에서 홀로 흘린 적도 많았으며 어리석게도 차 안에서 빵이나 김밥 조각으로 끼니를 때우던 적도 있었다.  그때의 난 뭐든 어설픈 인간이었다. 직장에서는 최선을 다하지 못했고 가정에서는 무심한 아내, 무지한 엄마였으며 부족한 딸이고 며느리였다.  당시 내비게이션이 없던 그 시절을 함께 하며 인생의 초행길에서 초조함과 무모함, 설렘과 기대로 무작정 여행을 다니다가 어느 순간 핸들을 잡은 두 손에는 여유와 연륜이 생겨나고 길을 바라보는 눈이 점차 밝아지는 것을 느꼈다. 어린 어른의 도로에 동고동락을 했던 나의 첫차는 그렇게 내가 성숙한 어른으로 자라는 것을 지켜보았다.

중고차는 어디 먼 나라로 배를 타고 팔려나간다고 했다.

나의 과거와 눈물과 추억을 드넓은 태평양 한가운데에 날려 보내고 새로운 나라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했다.







2년 동안의 암 치료를 받으시던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나에게 남겨주신 건 그렇게나 아끼시던 소나타였다.

남편의 차를 몰고 다니던 내가 그 차보다 불과 1,2년 젊은 친정아버지의 차를 순순히  된 건(주변에서는 오래됐다고 처분하라고들 했었다) 순전히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다.


결혼 후 남편의 고향으로 올라와 보금자리를 튼 나는 옛날 사람처럼 친정보다 더 가까이 시댁을 가족처럼 여기고 그 속에 녹아들었다. 연중행사 때마다  고향으로 내려가 친정에 가방을 풀고 하루 이틀은 쉴 수 있었으나 어김없이 출가외인처럼 친정을 뒤로하고 제2의 고향으로 귀향을 해야 했다.

그렇게 가깝고도 멀게 친정부모님을 뵙고 살아온 시절이 쌓여갈 무렵 청천벽력이 날아왔다.

친정아버지의 암 선고였다.

친정부모님은 고향을 떠나 딸네 둥지 옆에 새로운 둥지를 트셨다.

친척, 친구들 다 등지고 올라오신 이유가 단지 병원 때문이 아니게 됐다는 사실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생을 마감하시기 전 얼마간의 기간을 과년한 나이가 되자마자 멀리 시집을 가버린 딸의 에 사시면서 병원을 오가시고 딸이 제공하는 한방치료를 받으시고 또 딸이 챙겨드리는 음식도 드시고 또또 딸과 함께 외식도 하시면서 그렇게 지내셨다.

방사선 치료 중에 합병증이 와서 생각지도 못하게 돌아가시게 되어 나로서는 트라우마가 얼마간 있었다.

내가 좀 더 잘했어야 했는데.. 내가 좀 더 잘 알았어야 했는데.. 후회되고 안타까운 심정이 한동안 내 마음에 먹구름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차를 몰고 다니면서 몇 달간은 먹구름에서 비가 쏟아지듯  나 홀로 차 안에서 눈물을 참 많이도 흘렸다.

하지만 누가 그랬던가, 시간이 약이라고..

세월이 흐르면서 괴로웠던 기억은 색이 바래고, 바랜 기억은 세월의 덧칠로 윤이 나고 빛이 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떨어져 살았던 친정부모님이 내 곁으로 오셔서 함께 보냈고, 아버지의 아픈 손가락인 친정어머니를 장녀 나의 곁에 맡겨놓고 편안히 눈을 감으셨다는 생각이 나무처럼 자라났다.


아버지의 마지막 차를 타고 다닌 지 4년이 된 지금 이 차를 떠나보내는 심정은 이렇다 할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다.

새 차를 처음으로 맞이하는 설렘 뒤편에 피어오르는 한 가지 생각은 이제야 아버지를 보낼 수 있다는 나의 담담한 마음이다.  

새 차를 운전해서 친정어머니와 함께 조만간 아버지를 찾아갈까 한다.






"밟어, 밟으라고, 아니 운전경력 10년도 훨씬 넘었는데 뭐 이리 겁을 내냐 ㅎㅎ"

"새 차잖아요.. "

"어차피 똑같아, 발로 밟고 핸들 잡고 하는 건. 오늘 퇴근부터 혼자 해봐, 걱정하지 말고"

출근길에 시아버지가 조수석에 타고 동행하셨다.

어둑어둑한 저녁에 새 차를 받고 주차장에 겨우 주차하고 다음날 저 차를 끌고 어떻게 출근을 할까 밤새 뒤척이는 나를 보고 남편이 아침부터 시아버지께 전화를 한 것이다.

초보시절, 남편으로부터 키를 받은 이후 도로연수를 일주일간 받았었다.  후, 출근을 시작할 때 일주일간 시아버님 옆에서 조교 역할을 해주셨는데 덕분에 금방 초보 딱지를 뗄 수 있었다.

하지만 내일부터는 혼자의 힘으로 새 차, 신형, 나의 네 번째 애마를 타고 달릴 것이다. 과거의 나를 태웠던 차들을 떠나보내고 처음 겪는 새 차의 매끄러운 휠의 감촉을 느끼면서 익숙하지만 낯선 것 같은 길을 훨훨 달릴 것이다.

 차를 타고 달리면서 나는 또 어떤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게 될...

이 차는 나를 어떤 길로 안내를 하게 될지...


내 생에 새 차는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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