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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두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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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위나 Dec 22. 2020

당신은 누구의 우산입니까






 유모차를 앞세워서 부랴부랴 집을 나선다. 찌푸린 하늘이 금방이라도 비를 떨어뜨릴 것 같다. 서둘러 가서 우산을 건네주면 5교시 끝나고 하교할 때  비가 와도 걱정 없다. 녀석은 우산을 쓰고 집에 오면 된다.

 "이거 왜 가져왔어. 나 필요 없는데.."

 교실 뒷문에 기대서서 녀석은 툴툴거렸다.

 "필요 없긴... 곧 비 올 텐데 쓰고 와야지..."

 "난 비 맞으면서 가고 싶었단 말이야."

 어이가 없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순간이었다.

 "알았어. 우선 가지고나 있어.  엄마는 동생들 데리고 집에 갈 테니까 네가 알아서 해."


 4교시를 마친 둘째를 데리고 막내가 타고 있는 유모차를 끌고 서둘러 집에 돌아온다.

 5교시 후 집으로 올 큰 아이가 안심이 되어 이슬비에 옷 젖는 줄 모르고 있었다.




  


 빗줄기가 굵어지기 시작했다.

 '쏴쏴.'

 "위나야, 잘 가. 안녕."

 "온화야, 잘 가"

 우산을 함께 쓰고 하교하던 우리는 갈래길에서 멈췄다.

 우산이 없던 나는 혼자 비를 맞고 가야 했다. 작별 인사를 하고 돌아서 홀로 걷는 길은 빗줄기처럼 무겁고 길었다.

 잠시 후, 젖은 옷을 갈아입으려고 옷장 서랍을 열어둔 채 방에 앉아서 큰 소리로 울고 있는 내가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가뭇가뭇한 나의 기억 속에 그 애와 헤어지고 우산 없이 집으로 가는 장면이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흑백 장면처럼 펼쳐진다.

 그때 우리 집은 큰집과 50미터 정도 거리에 두고 있었고, 맞벌이하시는 부모님 때문에 학교를 마치면, 할머니가 계시는 큰집으로 가곤 했다. 그 날은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가려고 할 때 비가 왔다. 우산이 없던 나는 친구의 우산을 함께 썼고 서로 갈래길에서 나는 비를 맞으면서 집으로 달려갔다. 멀지 않은 거리였음에도 불구하고 비를 맞으면서 집으로 오는 길은 나에게 깊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굵은 빗줄기 너머 아련히 보였던 친구의 모습, 홀로 주저앉은 방 안, 젖은 옷과 커다란 울음소리는 몇 안 되는 어릴 적 기억의 파노라마이다.








 비가 오는 날이면 어릴 적 비 속을 뛰어갔던 그날과, 아무도 없는 방에 주저앉아 비에 젖은 울음을 기억한다. 그 이후 비 오는 날의 울음을 알고 있었다는 듯, 비가 오는 날이면 우산을 챙겨주시는 아버지가 기억 속에서 자라난다. 아버지는 군청 토목과에서 일하셨었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바람이 불거나 날씨가 안 좋은 날은 비상근무하기가 일쑤였다. 그래서 항상 날씨에 촉각을 곤두세우셨는데,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그저 날씨만 확인한 것이 아니었다. 날씨가 춥다는 예보를 보면 옷 따뜻하게 입고 가라 하고, 비가 온다는 예보를 보면 우산을 챙겨주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 오는 날엔 우산이 되어주고, 추운 날에는 방한복이 되어주고, 바람이 부는 날엔 바람막이가 되어주신 일들이 이제야 떠오른다. 이 기억을 공유할 아버지는 지금 이 세상에 없는데...

 방 안에서 홀로 앉아있었던 그 아이는 어느덧 한 가정을 이루어 살면서 자신의 아이들에게 분주하게 우산을 챙겨주고 있다. 요즘 같은 겨울 한파에 두껍게 입고 다니라는 잔소리도 잊지 않는다. 아버지의 우산은 이제 나의 우산이 되어 내 아이들을 씌어주고 있는 것이다.






 삶의 길에서 추적추적 비를 맞게 될 때가 있다. 아니면 누군가가 비를 맞고 걸어가고 있다. 인생에 내리는 비는 피하기 힘들어 비를 맞을 수밖에 없다가도 비가 그치고 해가 뜨면 그 길을 다시 씩씩하게 걸어간다. 다시 걷는 동안 또다시 변덕스러운 인생의 날씨에 누군가가 씌어주는 우산이 있다면 그것은 당신의 조력자가 곁에 있다는 뜻이다. 누군가 홀로 터덜터덜 걸어가는 길에 비와 바람을 일부 막아줄 수 있다면 당신은 누군가의 우산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누가 나의 우산이 되고, 내가 누군가의 우산이 되는.. 그것을 알았을 때 당신은 삶의 길은 걸어갈만하다고 느끼게 되지 않을까...

 우산은 그다지 큰 담보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따뜻한 말 한마디, 그것도 아니면 무언의 동감 어린 지지,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어깨, 니 옆에 내가 있다는 든든한 믿음, 상대방을 걱정해주고 배려해주는 진심 어린 마음, 아주 작고 실낱같은 연결고리조차도 지나칠 수 없는 관심...

 "추운데, 옷 잘 챙겨 입어." "맛있는 거 잘 먹고 푹 쉬어, " "밤인데 운전 조심하고." "몸 아프지 않게 조심해, "

 언제든 들을 수 있고, 언제든 말할 수 있는 저 우산들을 손에 놓지 않고 길 한 모퉁이에 서서 누군가를 기다린다.





 베란다 너머로 흐린 하늘이 보인다. 핸드폰을 들고 날씨를 검색해본다.

"오늘 비 온데, 우산 챙겨라."

"가방에 있어."

 외출하는 큰아이에게 급하게 말을 건넨다. 비 맞고 싶다고 우산을 거절했던 철없던 녀석은 어느새 성인이 되었다. 이미 가방에 우산을 챙겨 나가는 녀석이 든든하다.

 녀석에게 물리적인 우산은 더 이상 챙겨주지 않아도 된다. 주섬주섬 우산을 넣어둬야겠다. 품을 떠나 제 갈 길을 가는 녀석의 뒤편에서 묵묵히 바라만 보고 있어 주면 된다. 아버지가 나의 뒤에서 그렇게 하셨듯이... 아니, 지금도 진행 중일지도 모른다. 저 하늘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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