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명 Feb 22. 2021

아름답지 않은 예술에 대하여

우리에겐 아름답지 않은 예술이 필요하다

 예술작품을 보며 사람들은 흔히 '아름답다'고들 말한다. 비단 사람이 예술을 보며 '아름답다'는 감상만 느끼는 것은 아닐 텐데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예술은 고귀하고 아름다운 것이라고만 여기고 예술작품은 당연히 아름다워야 한다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것만 같다. 생각해보면 굉장히 안타깝다. 예술을 보며 느낄 수 있는 인간의 섬세하고도 복잡한 감상들을 표현할 수 있는 그 많은 어휘를 두고 하나같이 '아름답다'고 뭉뜽그려 말하는 현실이라니. 사회가 예술을 보면 그저 아름답다고 말하도록 사람들에게 집단 최면이라도 건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우리에겐 '아름답다'거나 '아름답지 않다'는 표현 말고도 내 생각과 느낌을 담을 수 있는 많은 어휘들이 있지 않은가? 그런데 그것들을 시간 들여 고민해볼 생각은 하지 않고 바로 '아름답다', '아름답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내 세계를 너무나도 좁히는 일이다.


 예술에서 아름다움이 중요하다면 당신이 생각하는 '아름다움(美)'의 기준은 무엇인가? 우리는 자주 아름다움에 정형화된 기준이 있는 것처럼 굴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는 것은 모두가 알 것이다. 아름다움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물론 사회마다 보편화된 아름다움의 기준이 있으나 그것은 진짜 아름다움의 기준이 아니다. 그런 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다 사람에게부터 기인되어 미디어에 의해 주입된 가짜 아름다움의 기준일 뿐이다. 잘 모르겠다면 지난 미술사를 조금만 돌아보자. 기존에 없던 파격적인 도전을 한 예술가들의 작품은 항상 처음엔 굉장한 비난과 조롱, 괄시 그리고 대중들의 철저한 외면을 받았다. 그러나 새로움은 시간이 흐르면 점점 사람들에게 새로움이 아닌 익숙함이 된다. 그러면 그 시점부터 작품은 더 이상 '끔찍한 작품'이 아니라 '아름다운 작품'이 되는 것이다. 이상하다. 작품은 그대로인데 그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다. 예술품은 작가가 죽어야 값어치가 올라간다는 황당무계한 소리도 아마 여기서 나왔을 것이다.


 '아름다움'은 익숙함에서 온다. 우리는 낯선 것을 반기지 않는다. 낯선 사람, 낯선 장소, 낯선 상황, 낯선 경험…. 이것들이 당신에게 주는 느낌은 어떤가? 모두 그다지 달갑지 않은 느낌일 것이다. 우리는 익숙함에서 안정을 찾고 낯섦에서 불편함을 느낀다. 때로 우리는 낯선 것을 찾아 먼저 떠나기도 하지만 그건 내 단조로운 일상에 조금의 재미를 주기 위할 뿐 완전한 새로움, 완전한 낯섦을 바라기 때문이 아니다. 디자인으로 예시를 들어보자. (예술과 디자인은 엄연히 다르긴 하지만) 몇 년 전 명품 브랜드에서 처음 출시했던 '어글리 슈즈'를 아는가? 기존의 운동화 디자인과는 다르게 크고 투박한 '어글리 슈즈'는 이름도 '못생긴 신발'이라는 뜻이었다. 어글리 슈즈를 처음 접한 사람들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진짜 못생겼다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어글리 슈즈는 유행을 타고 다른 온갖 브랜드에서 비슷한 디자인으로 판매되기 시작했다. 패션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 하는 사람들은 다들 하나씩 어글리 슈즈를 장만했다. 이제 조금은 이해가 될까? 아름다움은 절대적이지 않으며 그것은 곧 익숙함에서 온다.


 그러므로 예술에 있어서 아름다움은 필요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 꼭 예술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인 이야기지만 말이다. 그럼 예술은 어때야 할까? 그것이야말로 난제다. 이전 글에서 말했듯이 예술은 사실 어때야만 한다는 기준이 없다. 예술은 그저 예술가들의 또 다른 언어이고 기록일 뿐이다. 시시한 예술도 예술이고 끔찍한 예술도 예술이다. 아름답지 않은 예술도 예술이다. '예술[藝術]'은 한자로 재주 예, 재주 술자를 쓴다. 영어 'art'의 어원은 라틴어 'ars(아르스)'이고, ars(아르스)는 '숙련된 솜씨'를 의미한다. 예술은 인간 정신을 표현하고 담아내기 위한 하나의 기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내가 이렇게 예술에 대해 역설하는 이유는 예술의 가치를 폄하하기 위함이 아니다. 필요 없는 예술의 권위를 무너뜨리고 더 이상 예술이 외롭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사람들이 아름답지 않은 예술도 포용하고 관심 가지길 바라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다양성'이 중요한 이슈다. 이전부터 다양성과 개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왔고 우리는 그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사회로 변화하는 지점에 서있다. 그리고 현재도 여전히 공장에서 찍어내듯 만들어지는 것들의 문제점, 획일화된 기준으로 줄을 세우거나 그것을 평가하고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꾸준히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예술계의 다양성에 대해서는 논의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아니 사실은 거의 전무하다고 봐도 될 것이다. 아직 우리 사회가 갈 길은 멀었지만, 또 지금은 코로나 전쟁터에 왜 예술이 필요하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우리에겐 아름답지 않은, 더 다양하고 많은 예술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들은 우리의 일상 곳곳에 스며들어 인간의 감각을 풍부하게 넓히고 지금까지의 우리 삶을 완전히 바꿔놓을 것이다.


 '아름답지 않다'는 이유로 누군가에 의해 걸러진 작품들이 실은 언젠가 당신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순간을 만들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당신이 모르는 새에 예술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으로 이렇게 당신의 세계는 더 좁아져 가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예술은 쓰레기에 불과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