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 - 베트남, 하노이 01
제일 첫 시작은 이전 글에도 썼다시피 하노이였다. 하노이에서 살았던 친구에게서 여러 가지 조언도 들었고, 한국인들이 많이 가는 만큼 인터넷에도 정보가 많아서 난도가 낮은 여행지이다. 블로그나 티스토리, 브런치, 인스타그램 등 모든 소셜 미디어에서 정말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랩'이라는 앱을 이용해야 택시를 이용할 때 사기당하지 않는다는 것과 야시장에서는 어떻게 흥정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꼼꼼하게 찾아보고 갔다. 베트남으로 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 들은 여러 이야기 중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두 개가 있다. 택시 기사가 요금을 바가지 씌웠고 분명히 눈앞에서 지폐 5장을 거슬러주는 걸 봤는데 호텔에 와서 세어보니 2장이었다는 이야기와 소매 치기에게 돈을 다 털렸는데 단기 여행이라서 하나 가지고 있던 카드로 지내다가 와서 그나마 다행이었다는 이야기.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같은 수법에 절대 당하지 말자고 다짐을 하고 또 하면서 하노이에 도착했다.
내가 워낙 걱정과 겁이 많은 사람이라 공항에서 호텔까지 가는 건 호텔 픽업 서비스를 이용했다. 하루에 3만 원 조금 넘는 호텔이었는데 42만 동(약 24,000원)을 내면 공항까지 4인승 카니발 같은 차량이 와서 픽업해주는 서비스였다. 내 이름을 들고 있는 기사님을 찾아서 바로 차량에 탑승하고 호텔에서 금액을 지불하면 됐다. 한국에서 호텔을 많이 가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비싼 호텔이어야 픽업 서비스가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3만 원이 조금 넘는 호텔에도 있다니 최고라고 생각하면서 신청했다. 만약 베트남으로 여행을 갈 사람이 이 글을 읽는 다면 호텔 픽업 서비스는 사실 쓸데없는 돈 낭비라고 말해주고 싶다. 호텔 픽업 서비스가 물론 몸과 마음이 편하기는 하지만, 위에 말했다시피 나는 원래 걱정과 불안이 많은 사람이라서 이런 선택을 한 것이고, 유심 칩과 '그랩' 앱만 있으면 '그랩' 앱을 이용해서 택시를 잡으면 돈도 아끼고 훨씬 효율적이다.
공항에 도착해서 짐을 찾자마자 한국에서 가져 간 달러를 베트남 동으로 환전할 수 있는 환전소로 환전하러 갔다. 두 군데가 붙어있었는 데 굉장히 경쟁적이었다. 한 군데에서 1달러를 23850동에 해준다고 했고 일단은 알겠다고 한 뒤, 바로 옆 환전소에 가서 얼마인 지 물어보자 23840동에 해준다는 것이었다. 옆은 23850동에 해주신다는데요?라고 하자마자 23855동에 해주겠다고 해서 100달러를 환전하고 기사님을 찾으러 나갔다. 공항에 있는 환전소인데도 흥정을 해야 한다니. 진짜 여행이 시작되었다는 걸 피부로 느낀 첫 번째 경험이었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내가 겁먹었던 것보다 다들 너무 친절했다. 호텔 리셉션에 있던 직원들도 너무 친절했고, 기사님도 친절했다. 호텔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잘 도착했다는 연락을 남기고 바로 밥을 먹으러 나갔다. 현지 음식을 많이 먹어보고 싶다는 바람과 달리 첫 식당은 서양인들이 많이 가는 무난한 식당에 가서 코코넛 볶음밥을 먹었다. 영어가 아주 잘 통한 건 아니었지만, 사장님도 굉장히 친절했다. 밥을 먹고 있는 데 오셔서 칠리소스를 주시더니, 밥을 여기에 찍어 먹으면 더 맛있다고 알려주시기도 하고 거의 다 먹었을 때쯤에는 맛있게 먹었는 지도 물어봐주셨다. 기분 좋은 첫 시작이었다.
첫날이기 때문에 무리하게 일정을 짜지 않아서 호안끼엠 호수를 둘러보고 호텔 근처에 위치한 작은 사원을 둘러보았다. 호안끼엠 호수 한가운데에 있는 응옥 썬 사당도 둘러보고, 현지인들에게 부탁해서 호수와 사진도 왕창 찍고 호수 산책을 만끽했다. 돌아다니다 보니 '그랩' 앱을 이용할 일이 생각보다 많았는 데 첫날, 이동을 하기 위해서 그랩 택시를 탈 지, 그랩 오토바이를 탈 지 고민하다가 용기를 내서 오토바이를 시도해보았다! 하노이에서의 추억을 더듬어보면 가장 신났던 기억 중 하나는 그랩 오토바이를 이용할 때였다.
'그랩' 앱에서 출발 픽업 장소와 목적지를 지정하고 나면 왼쪽 사진처럼 그랩 택시와 그랩 바이크 등 여러 선택지가 뜬다. 하노이에서 지내는 동안 그랩 택시는 한 번 밖에 사용하지 않고, 그랩 바이크를 이용했다. 훨씬 빠르고 가격도 훨씬 저렴하기 때문이다. 비밀인데 세계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오토바이 자격증을 따려고 학원을 다녔었다. 웃기게도 시험에 떨어졌지만! 그래도 그때 연습을 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오토바이를 아예 한 번도 안 타본 상태였다면 도전해볼 생각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내 과거의 모든 것들이 쌓이고 쌓여서 자양분이 되어가는구나.
그랩 바이크를 선택하고 그랩 기사가 수락하면 번호판이 뜨는데 그 번호판을 잘 보고, 해당하는 오토바이가 오면 폰을 보여주면서 '그랩?'이라고 외치면 된다. 기사님이 내가 그랩에 설정해놓은 이름을 말하고 맞다고 하면 오토바이를 세운 뒤에, 헬멧을 주신다. 헬멧을 꼭 쓰고 뒤에 앉아서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가면 끝이다. 기사님 몸을 잡거나 끌어안지는 않고, 오토바이 좌석에 앉았을 때 보통 기사님과 나 사이에 공간이 남는다. 그 사이를 양손으로 꽉 잡고 가거나 대부분은 의자 뒷부분을 꼭 잡고 간다. 오토바이는 모두가 알다시피 사고가 나면 크게 다칠 수 있기 때문에 걱정이 많이 된다면 안전하게 택시를 타면 된다. 하지만 만약 혼자 돌아다닌다면 바이크는 반값에 스릴까지 맛볼 수 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그랩 바이크를 매우 추천한다. 하노이에서 오토바이는 그렇게 빨리 달리지 않기 때문에 생각보다 무섭지도 않다. 처음 탄 날에는 무서워서 바들바들 떨면서 탔는 데 그다음 날부터는 가끔씩 목적지에 잘 가고 있는지 확인하려고 핸드폰을 보면서 가기도 했었다. 당연히 위험한 행동이므로 웬만해서는 하면 안 되는 행동이다. 그랩 바이크를 하루에 한 번은 꼭 탔지만 아직 멀쩡히 살아서 글을 쓰고 있는 나를 보면서 용기 내서 도전해봤으면 좋겠다.
호안끼엠 호수는 한국의 석촌 호수와 한강을 섞어놓은 것만 같았다. 사람들이 호수 주변을 빙글빙글 돌고 벤치에 앉아서 밥도 먹고, 주변 식당과 카페들은 오전이나 오후에나 항상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하노이에 머무는 동안 꽌탄 도교 사원과 쩐 꾸옥 사원도 구경하고, 하노이 문묘와 탕롱 황성도 들려보고, 탕롱 수상 인형극장에 가서 인형극도 보았다. 인형극은 베트남어로 진행되어 이해는 안 되었지만 대충 맥락은 파악할 수 있었고, 백인들이 굉장히 많았다. 아쉽게도 10월이라 호찌민 묘소는 문을 닫아서 한 기둥 사원(못꼿 사원)과 주석 관저 식물원만 보고 왔다. 호찌민 묘소는 매년 10월마다 시체 보존을 위하여 문을 닫는다고 하던데, 방부 처리가 굉장히 잘 되어있다고 해서 궁금했는데 정말 아쉬웠다. 하노이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가고 유명 관광지인 기찻길도 최근에 사고가 생겨서 아쉽게도 2022년 10월 기준, 통행을 막고 입구마다 공안이 지키고 있다. 중간에 짧은 구간만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열어놓아서 사진만 급하게 찍고 나왔다.
식물원과 탕롱 황성, 문묘는 하나씩 둘러보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갔다. 한국어 오디오를 빌려서 돌아다니면서 몇 시간씩 둘러보기도 하고, 탕롱 황성에서는 내가 그 시대 사람이 된 것 마냥 지하 벙커에 들어가서 천천히 둘러보고 사람들이 많이 없어 보이는 장소까지 하나씩 다 들렸다. 개인적으로 하노이에서 제일 재미있고 마음에 들었던 곳은 한 기둥 사원, 탕롱 황성과 호안끼엠 호수였다. 한 기둥 사원은 독특해서 기억에 남고 탕롱 황성은 세 시간 넘게 혼자서 돌아다니면서 구석구석 둘러본 게 기억에 남는다. 호안끼엠 호수는 호수 주변을 빙 둘러서 걸어 다니기도 하고 주변 야시장을 구경하기도 하고 주말에는 사람들이 모여서 줄넘기 묘기하는 것도 보고 좋았던 기억밖에 없다. 게다가 야시장 거리를 걷다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밴드 중 하나인 'The Smiths'의 'Bigmouth Strikes Again'를 버스킹 하는 독일 청년도 만났다! 타지에서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들었을 때의 감정은 언제나 특별하고 기분이 묘해진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큰 행운과 가장 소중한 추억은 하노이 대성당 앞에서 나연 씨를 만난 것이다. 오전에 성당에 가보았을 때는 아쉽게도 내부가 잠겨있어서 제대로 보지 못했다. 저녁에는 더 아름답다고 해서 저녁에 한 번 더 가보았는데 정말 저녁에 더 예쁘고 빛이 나서 참 좋았다. 내부가 너무 궁금해서 입구에 가보았더니 놀랍게도 미사가 진행 중이었다. 구경을 하고 내부 사진을 찍은 뒤에 나와서 성당 앞에서도 사진을 하나 찍어볼까 고민하고 있었다. 혼자 온 여행객에서 사진을 찍어줄 수 있냐고 영어로 물어보고 사진을 찍으려는 데 갑자기 그분이 '한국인이세요?'라고 물어보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대성당 앞에서 나연 씨를 만났다.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둘 다 혼자 왔다는 걸 알게 된 뒤에 같이 다니기로 해서 함께 저녁을 먹고 다음 날 함께 돌아다니기로 하고 헤어졌다. 나연 씨의 계획과 내 계획 중 일치하는 곳은 같이 가고 중간에 따로 각자 관광지를 둘러보고 밥만 같이 먹기도 했다. 베트남에서 반 쎄오를 먹어보고 싶었는데 나연 씨가 찾아놓은 현지인 맛집(1인분에 무려 1200원밖에 안 했다)에 가서 배부르게 반 쎄오도 먹고 백종원의 스트릿 푸드 파이터에 나온 닭구이 골목에 가서 맛있는 반미도 먹었다. 닭구이 골목에서는 모르는 베트남 아저씨가 내게 갑자기 보조 배터리 좀 빌려달라고 해서 충전을 해주었더니 우리에게 베트남 술을 권하기도 했고, 옆 자리에는 한국 여행을 다녀와봤다는 아저씨가 아내와 아기와 함께 밥을 먹으면서 우리와 대화하기도 하고 정말 재미있는 하루를 보냈다. 현지 사람들과 섞여서 이야기도 하고 서로에게 좋은 기억을 남겨주는 상황들이 난 정말 좋다. 물론 보조 배터리를 빌린 아저씨는 술에 취해서 날 만난 걸 기억도 못할 것 같지만.
열심히 하루에 3만 부씩 걸어 다니던 하루의 끝에 나연 씨가 정말 끝내주는 마사지 집을 찾아서 함께 가서 발 마사지도 받았다. 서로 호텔 방에 가서 놀기도 하고 같이 과일도 사 먹고 야시장을 돌아다니면서 물건을 흥정하기도 했다. 덕분에 하노이에서 즐거운 추억들을 쌓을 수 있어서 너무 고마웠다. 먼저 말을 걸어준 것도 고맙고, 같이 다니자는 제안을 거절해주지 않은 것도 너무 고맙고, 맛집과 마사지 가게를 알게 해 준 것도 정말 고마웠다. 지금까지도 나연 씨와 연락을 하면서 잘 지내고 있다. 첫 여행지에서부터 이렇게 좋은 사람을 만나다니 초심자의 운이라는 게 이런 것이 아닐까? 앞으로의 여행에서도 나연 씨와 같은 좋은 사람들을 만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