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올라 Nov 06. 2022

조금 이른 인생 2막 시작

세계 여행을 시작합니다

 '와 루트 진짜 극악이다.'

 세계 여행을 다녀온 지인이 내가 짜 놓은 여행 계획을 들은 다음 가장 먼저 한 말이다. 어쩌다 보니 구글링이나 네이버에 검색하면 보통 나오는 세계 여행 루트와 굉장히 다르게 여행을 가게 되었다. 내가 봐도 정말 웃기는 루트이기는 했다. 돈을 아껴야 하는 데 갑작스럽게 첫 여행지로 가는 비행기를 충동적으로 결제해버린 뒤에는 걷잡을 수가 없었다. 계속 나도 모르게 미루고 있길래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일단 첫 비행기 티켓을 사는 짓부터 저지르고 봤다. 뭔가 일을 하나 벌려야 시작 전까지 어떻게든 미루던 일들을 쳐낼 것 같았다. 첫 시작은 아시아를 전반적으로 둘러보고, 그다음에 아프리카, 유럽 순서대로 돌아본 뒤에 한국으로 돌아올 계획이다.


 여행 루트의 큰 틀은 이렇게 짜보았다.

 구글 맵을 켠다. 나라 별로 가보고 싶었던 도시를 찍는다. 도시 안에서 유명한 관광지와 내가 가보고 싶었던 장소들을 저장한다. 나라마다 옆에 붙어있는 나라와 이동이 가능한 교통수단을 찾아보고 가고 싶은 나라 순서대로 잇는다. 끝.

현재 내 구글 맵 상태 - 확대하면 더 복잡하다


 내가 계획적이지 못한 사람인 것에 비해 욕심이 너무 많아서 구글맵에 다 정리를 하고 났더니 내가 가야 할 장소가 너무 많아지기는 했다. 하지만 촉박하게 돌아다니고 싶지는 않아서 여유롭게 일정을 짜다 보니 여행 기간은 점점 더 길어지고 예산은 점점 늘어나게 되었다. 다시는 없을 수도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후회 없이 다녀오고 싶다. 현지인들 사이에서 문화를 체험해보고, 스킨스쿠버 다이빙도 해보고 싶고, 등산도 가고, 여행을 하면서 우연히 만난 사람과 친구가 되어보고도 싶다. 현지 사람들과 사진도 많이 찍고 싶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이성적인 의미의 사랑이 아닌, 인간적인 사랑이 넘쳐흐르는 여행을 경험하고 싶다.

 내 삶의 거창한 전환점이 되면 좋겠지만 한 편으로는 별 거 아닌 경험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다. 너무 크게 기대를 하고 세계 여행을 갔지만 생각보다 별 거 아니었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깊은 마음속에서는 내 인생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경험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여행의 시작은 베트남을 정했다. 한국인들도 많이 가고, 관광지인만큼 여행 난도가 낮을 거라고 짐작되는 하노이. 해외여행을 다녀온 적이 너무 오래전이라서 괜스레 걱정도 되지만 호랑이 굴에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 무슨 일이 생겨도 나만 정신을 똑바로 차리면 된다. 만약 여행 중에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내 운명이려니 생각한다. 여행을 하는 동안 내가 가질 가장 중요한 마음 가짐 중 하나는 이것이다. 안 좋은 일을 겪더라도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이지 말고 툭툭 털고 일어나서 가기.

 그렇다고 해서 소위 말하는 '호구'처럼 누군가가 관광객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등쳐먹거나 부당한 대우를 하면 참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가끔 내가 잘못하지 않았어도 괜스레 혼자 마음이 약해져서 내 권리를 주장하지 못할 때가 있다. 비웃을 수도 있겠지만, 여행을 가기 전에 정색하고 말하는 걸 연습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해외에 나가서 혼자 다닐 때는 나를 지켜줄 사람은 나 밖에 없으니까!

 인종 차별은 아프리카에서 단련되었기 때문에 괜찮다. 여행객을 상대로 적당히 바가지 씌우는 것도 어느 저도 참을 수 있다. 그저 나는 내가 친절을 베푼 만큼 상대방도 적당한 친절을 베푸는 여행이었으면 좋겠다. 어쩔 수 없기는 하겠지만 여행을 하다가, 나의 호의를 이용하여 바가지를 씌운다면 그건 상처가 될 것 같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에 생채기가 남겨질 것 같아서 두렵다. 이러한 부정적인 경험들이 쌓여서 내 표정이 점점 굳어져가고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는 것을 느낄 때마다 회의감이 든다.


 좋아하는 밴드 중 하나인 'AJR'의 노래들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100 Bad days'이다.


A hundred bad days made a hundred good stories

100번의 안 좋은 날들이 좋은 이야깃거리 100개를 만들거든

A hundred good stories make me interesting at parties

재밌는 이야기 100개는 날 파티에서 더 흥미로운 사람이 되게 만들지


 오토바이 시험에서 떨어진 일, 밤새도록 만든 눈사람을 아침에 일어나서 누군가가 일부러 발로 차서 부순 걸 봤던 날, 만리장성에 갔을 때 기념품 샵에서 자석을 깨서 결국 샀던 기억. 그 당시에는 모두 안 좋은 일이었지만 시간이 흐른 뒤 지금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때 덕분에 경험담을 하나씩 풀어놓을 수 있게 되었다. 여행을 하면서 안 좋은 일을 겪을 때마다 이 노래 가사를 되새길 것이다. 즐거운 경험, 즐거운 여행! 제발!!


작가의 이전글 만남이 있으면 이별도 있기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