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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올라 Jan 29. 2023

방콕 사원 도장 깨기와 팟타이 기행

동남아시아 - 태국 방콕 01, 사원과 마리화나의 나라

 방콕으로 가는 공항에서 체크인을 하는 데 한국인 단체 아저씨들을 만났다. 서로 말을 한 건 아니지만, 옆 카운터에서 체크인을 하는 데 비키지도 않고 스튜어드가 한국인인걸 알고 '안녕하세요~'라며 한국어로 말을 걸었는데도 무시하는 모습에 정말 내가 다 부끄러웠다. 내가 한국인인 걸 모르시는 것 같았다. 결국 내가 '선생님, 옆으로 좀 가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한국어로 말하자 화들짝 놀라면서 옆으로 비키는 모습을 보고 제발 우리 부모님이 어디 가서 저렇게 행동하지 않기를 속으로 바랐다.

 방콕에 도착해서 그랩을 타고 숙소로 갔다. 내가 지냈던 곳은 람푸하우스라는 곳인데 그렇게 비싼 곳은 아니었다. 방은 혼자 쓰는 곳이고 화장실과 샤워실은 공용이었다. 공용 샤워실을 쓰는 숙소는 처음이라 조금 걱정이었는데 생각보다 괜찮았다. 내가 쓰는 방은 복도로 작은 창문이 있었다. 창문에 유리로 만들어진 블라인드가 있어서 블라인드가 완벽히 닫히지 않는 곳이어서 자칫 잘못하면 복도에서 방이 보일 수도 있길래 첫날에는 조금 불안했었다. 그래도 조용한 것 같아서 좋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날 저녁, 내 방 바로 옆에 있던 공용 샤워실에서 프랑스 남자애들이 노래를 엄청 크게 틀고 서로 이름을 소리 질러대고 문을 서로 두드리고 난리를 쳐서 너무 놀랐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 마약을 한 거 아닐까 싶다. 그게 아니면... 정신머리 없는 놈들이거나.

 다른 투숙객들이 조용히 할 거라고 믿고 귀마개를 안 끼고 그대로 일찍 잠든 나는 우당탕탕 말도 안 되는 밤을 보냈다. 너무 피곤해서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일찍 잠이 들었다. 복도에서 사람들이 떠들고 뛰어다니는 소리에 10시쯤에 잠에서 깨버렸다. 당연히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떠드는 거면 아침 열 시이겠거니 싶었다. 사원을 돌아다니려고 하루 계획을 다 짜놨는데 늦잠을 자버려서 망했다고 생각했지만 너무 피곤해서 조금만 더 눈을 붙여야겠다고 생각하고 다시 잠들었다. 중간에 다시 깨보니 열 두시였고, 오늘 하루를 그냥 날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너무 졸려서 또 잠이 들었다. 그러고 일어나니 두 시가 되었고 왜 이렇게 피곤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큰일 났다고 생각했다. 바로 화장실로 가서 양치를 하면서 창문을 봤는데 밖이 너무 깜깜하길래 오후인데 비가 오는 줄 알았다. 샤워를 하고 방으로 돌아가서 머리를 말리는데 복도가 너무 조용하고 밖이 너무 깜깜하다는 생각과 함께 등이 오싹해졌다. 카카오톡을 켜서 확인하자 오전이었다. 내가 핸드폰 시간 설정을 12시간 제로 해서 몰랐던 것이다. 이 날 이후로는 여기서도 내내 귀마개를 꽂고 잤고, 핸드폰 시간 설정도 24시간 제로 바로 바꿨다. 신기한 건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시끄러워서 잠을 깨운 건 모두 서양인 남자 무리였다. 가정교육을 유튜브로 배워서 그런가 보다고 생각하고 있다.

 

 아침에 알차게 호스텔 조식을 챙겨 먹고 본격적인 사원 구경을 시작했다. 왓 아룬부터 시작했는데 수상 택시를 타고 가는 사원이었다. 수상 택시가 어떤 건지 궁금했는데 정류장에서 5바트를 내고 여러 명이 탈 수 있는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 거였다. 왓 아룬은 중간 정도까지만 올라갈 수 있었는데 워낙에 날씨가 너무 후덥지근해서 코끼리 바지를 입고 나오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더워서 방콕 왕궁으로 바로 가려다가 이렇게 걸어가다가는 열사병에 걸리겠다 싶어서 근처에 있는 스타벅스를 찾아서 들어갔다. 여행을 할 때 만나는 전 세계에 분포되어 있는 맛과 안전성이 보장된 스타벅스나 맥도널드 같은 체인점들은 진심으로 신이 인간에게 내린 축복이자 선물이다. 태국에서는 레드벨벳 프라푸치노라는 메뉴를 한정 판매하고 있었는데 진짜로 레드벨벳 맛이 나서 마음에 들었다. 얼어서 죽을 것 같을 때까지 스타벅스에 앉아서 몸의 열기를 식히고 왕궁과 왓 프라깨우를 보러 걸어갔다. 방콕 왕궁과 왓 프라깨우는 정말 크고 번쩍번쩍한 금색이라 화려함의 절정이었다. 태국은 금과 같이 화려한 장식품들을 정말 좋아하는 것 같았다. 햇빛도 쨍해서 사진도 엄청 잘 나왔다. 왕궁 티켓을 사면 뮤지컬도 볼 수 있어서 다 둘러본 뒤에 입구에서 뮤지컬을 보러 가는 셔틀을 타고 극장으로 갔다. 공연장 안은 굉장히 시원하고 춤도 다양하고 멋지고 박자가 신나서 보는 내내 즐거웠다.

방콕 왕궁과 사원들


 구글맵에 검색해 보니 '팁 마사이'라는 팟타이 맛집이 유명하다고 해서 열심히 햇빛을 맞으며 걸어갔다. 그런데 화요일은 휴무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마침 근처 식당들도 문을 다 닫아서 근처에 인기가 많은 타로 튀김 가게에서 튀김을 하나 사 먹고 현지 식당치고는 조금 비싼 '크루아 압손'이라는 곳을 갔다. 여기서 웃겼던 점은 나를 포함한 가게 손님들이 모두 한국인이었다. 아마도 식당들이 문을 다 닫아서 열린 가게 중 그나마 나은 곳으로 다 온 것 같았다. 조금 양이 많긴 했지만 새우 팟타이와 게살 오믈렛을 혼자 다 먹었다. 팟타이는 굵은 당면에 살짝 붉은색을 띠어서 살짝 매콤했고 새우도 엄청 컸다. 게살 오믈렛은 정말 폭신폭신했고 게살이 한 군데에 몰려있어서 조금 짰다.

무우 튀김, 타로 튀김, 두부 튀김이 섞여있고 스윗칠리 소스를 준다.
'크루아 압손'에서 먹은 퐁실퐁실한 게살 오믈렛


 '왓 랏차낫다람 워라위한' 이라는 불교 사찰이 5시쯤에 문을 닫는다고 해서 늦은 점심을 먹고 뛰어갔다. 막 들어가려고 하는데 태국인이 갑자기 나에게 사찰에서 나가면서 무슨 말을 해주셨다. 아마도 곧 문을 닫는 시간이었어서 이미 입장이 끝났다는 이야기를 하신 것 같았다. 태국에서 돌아다닐 때 이런 일들이 종종 있었는데 아마도 내가 태국인처럼 생겼나 보다. 여행 다닐 때 현지인으로 오해받는 일은 언제든 환영이다. 아무튼 급하게 5분을 남겨놓고 꼭대기 층까지 올라가 보았다. 위에서 보는 전경이 정말 반짝거리고 마음에 들었다. 다섯 시를 조금 지나서 1층 출구로 나왔는데 직원 분께서 내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문을 잠그셨다. 계단을 내려오면서 혹시라도 문을 잠그실까 봐 조마조마했는데 다행이었다.

 오늘 하루는 아예 사원들을 다 둘러보기로 마음먹은 날이었다. 가는 길에 물을 10 바트 주고 산 다음, 바로 '왓 싸켓'으로 걸어갔다. 황금산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일몰에 맞춰서 가면 정말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다고 해서 일부러 저녁 시간대에 가려고 했던 곳이다. 계단을 오르고 올라서 황금산 꼭대기에 도착하자 굉장히 큰 창문이 있었다. 큰 창문을 통해 일몰을 지켜볼 수 있었는데 정말 아름다웠다. 20분 정도 앉아서 일몰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지는 해를 보며 내려왔다.

황금산 사원


 마지막 사원은 '쑤탓 사원'이었다. 사원 앞에 엄청 큰 그네 모형이 있는 곳이었다. 쑤탓 사원은 굉장히 넓고 컸다. 굉장히 큰 금 불상을 보고 스님이 들어오셔서 법회를 하길래 잠깐 앉아서 구경을 했다. 늦은 시간대라 사람이 많이 없어서 마음 편하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 둘러보는 데 공사 중이거나 막힌 공간이 있을 거라는 표지판을 보고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을 잠깐 헤맸었다. 여러 명이 다 같이 옆 문으로 가길래 따라가 보았다. 그쪽으로 갔더니 나가는 길을 찾을 수 있었다. 나가는 길 중간에는 사찰 스님들의 숙소가 있었고, 엄청 귀여운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는 사찰 직원들이 있었다. 매일 정기적으로 밥을 주시는 건지, 한 분께서 밥그릇을 들고 나오자 고양이들이 갑자기 모든 골목에서 튀어나오기 시작했었다. 그렇게 몇 분 동안 고양이를 구경하다가 숙소로 돌아갔다. 아침부터 아예 사원 도장 깨기의 날이라고 생각하면서 돌아다녔기 때문에 굉장히 만족스러운 하루였다.


 하루는 카오산 로드가 유명하다고 해서 갔는데 아쉽지만 나랑은 결이 안 맞았다. 너무 시끄러웠고 사람도 징그럽게 많고 클럽을 거리화해 놓은 곳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갔을 때가 딱 저녁 시간이라서 뭘 먹어볼까 두리번거리면서 걷자 누군가 내 앞에 메뉴판을 들이밀었다. 드디어 식당 호객 행위를 하시는구나 싶어서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런데 이건 음식이 아니라 대마초 메뉴판이었다. 대마초 메뉴판을 저한테 주시다니요. 정말 당황스럽기도 하고 나는 한국인이기 때문에 메뉴판을 던지듯이 밀쳐내고 그 자리에서 당장 도망갔다. 그 이후로도 몇 번을 나에게 대마초 메뉴판을 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카오산 로드에서 밥을 포기하고 숙소로 도망치듯이 달려갔다. 괜히 죄를 짓지도 않았는데 지은 기분이 들었다. 이래서 사람이 조금이라도 찝찝한 짓을 하면 안 되는 거다. 대마가 너무 많았고 살면서 대마 냄새를 맡아본 적이 없는데 길에서 맡자마자 썩은 풀 같은 냄새가 나서 바로 이거구나 싶었다. 정말 최악이었다. 대체 왜 합법화한 걸까. 사실 카오산 로드에서 내 유일한 목적은 두리안을 도전하는 거였는데 가판대에서 찾아볼 수가 없어서 물어보자 아쉽게도 제철이 아니라 지금은 태국에서 찾아볼 수 없을 거라고 했다.

 결국 숙소로 돌아와서 숙소 바로 앞에 있는 팟타이 노점에서 팟타이를 하나 시켰는데 옆에 있는 음료 가게에서 음료를 사서 거기에 앉아서 먹으라는 거다. 솔직히 음료를 먹고 싶지도 않고 돈도 아까워서 그냥 길바닥에 앉아서 현지인처럼 먹었다. 조금 싱겁긴 했지만 40바트라서 용서가 가능한 맛이었다. 이 날 아침은 한국인들에게 유명한 '조조 팟타이'에 가서 먹었었는데 확실히 거기가 더 짭조름하고 맛있었다. 팟타이 기행처럼 삼시 세 끼를 거의 매일 팟타이만 먹어댔지만 좋았다. 방콕에서의 일정이 벌써 절반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볼 게 많이 남아있기 때문에 앞으로의 일정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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