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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올라 Jan 23. 2023

내향형 인간의 캄보디아 여행기 03

동남아시아 -캄보디아 씨엠립 03, 빅투어와 블랙핑크

내향형 인간의 캄보디아 여행기 01 https://brunch.co.kr/@w1989/28

내향형 인간의 캄보디아 여행기 02 https://brunch.co.kr/@w1989/31


 아주 피곤하고도 시끄러운 밤을 보내고 나서 첫 번째 캄보디아 여행기에 썼던 인생 초콜릿 케이크를 파는 Tevy's Place에서 아점을 먹었다. 여기는 모든 메뉴들이 너무 맛있고 정말 비싼 메뉴도 5불을 안 한다는 게 나를 너무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장소이다. 밥을 먹고 펍 스트리트에 가서 이전에 빅투어와 앙코르 와트 일출 투어랑 같이 결제하면 싸게 해 주기로 했던 여행사로 가서 다음 날 빅 투어를 하기로 최종 확정을 받았다. 가는 내내 길에서 툭툭 기사들이 '니하오'를 얼마나 외쳐대던지... 이쯤 되면 내가 중국인처럼 생긴 건 아닌가 돌이켜보게 되는 순간이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엄청 싼 마사지 가게(Taktshang Massage and Spa)를 찾아서 3불에 한 시간 동안 발 마사지를 받고 카페로 갔다.

 커피를 마시면 잠을 잘 못 자는 편이라 카페를 가면 차를 마시거나 프라푸치노 같은 음료를 마시는 편이다. 카페에 가서 차가 있냐고 물어보고 녹차(핫 그린 티)를 달라고 했다. 메뉴판에 차 섹션에 녹차는 없지만 앞에 메뉴판에는 그린티가 있다고 해서 그걸로 달라고 말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그린 티 라테를 주셔서 영수증을 보니 그린 티 라테라고 쓰여있는 것이다. 순간 멍해지면서 내가 정신을 어디에다가 둔 건지 메뉴판을 잘 못 본 건지 당황스러워서 메뉴판을 다시 보여달라고 했다. 진짜 운 좋게도 메뉴판에 그린티라테가 그린티라고 적혀있었다! 내가 잘못 본 게 아니었다!!! 예쓰!!!! 잘못 적힌 거라며 그린티는 없다고 해서 그럼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티를 달라고 했다. 그런데 1분 뒤, 직원이 다시 와서 '얼그레이 티라고 했던가?' 해서 다시 알려줬다. 너무 어이없고 웃기고 우당탕탕 무슨 일이 없으면 하루가 넘어가질 않는구나 싶은 하루의 시작이었다. 유튜브를 했으면 이런 게 진짜 에피소드가 되었을 텐데 참 아쉽구먼. 카페에 앉아서 밀린 일기도 쓰고 브런치도 정리하며 하루를 편하게 보냈다. 어차피 다음 날이 빅 투어 데이였기 때문에 일부러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앙코르 와트 빅 투어는 엄청 길고 피곤했다. 아침 7시 45분에 로비에 앉아서 불개미를 구경하며 픽업 밴을 기다렸다. 불개미는 참 빨갛고 로봇 개미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렸을 때 개미 벼락을 맞은 적이 있어서 개미를 정말 싫어하는데 불개미는 개미 같다는 느낌이 안 들었다. 빨간색이라 그런가. 아무튼 밴을 타고 여행사에 도착한 다음 빅 투어와 스몰 투어, 앙코르 와트 투어 등등 각각 지정된 밴으로 다시 태워줬다. 여행사에 앉아서 기다리는 동안 맞은편에 백인 할아버지가 앉아있었는데 성격이 좋아 보여서 같은 투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이 많은 분 들하고 이야기하는 건 재밌으니까. 나중에 밴을 탈 때 보니까 같이 빅투어를 가는 할아버지였는데 알고 보니 성격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네덜란드 사람이었는데 아시아 국가 여행을 좋아하는 할아버지였다. 특이한 건 한국이나 일본같이 발전이 잘 된 곳보다는 발전이 아직 잘 되지 않은 라오스 같은 아시아 국가들만 골라서 여행을 다니는 사람이었다. 한국을 와보고 싶지는 않냐고 하자 남한은 너무 멀어서 안 와봤다고 하셨다. 그렇지만 북한은 어메이징한 장소이기 때문에 가보고 싶다나 뭐라나. 뭔 소리인지.

 빅 투어는 점심을 먹기 전에 5군데를 가고 점심을 먹고 나서 하이라이트인 반티쎄리를 보는 투어였다. 여행사에서 빅 투어를 간 건 나를 포함해서 총 네 명이었다. 위에서 말한 네덜란드인 할아버지와 스코틀랜드에서 교수를 하는 분, 한 명은 IT업계에서 일하는 중국계 필리핀 남자인 장민, 마지막으로 가이드 '다라'까지. 다라는 정말 귀엽고 착했다. 웃는 게 정말 해맑고 형제가 열 명인데 자기가 막내고 전부 아들밖에 없다고 했다. 어머니가 정말 힘드셨겠구나... 그리고 30살이 넘은 줄 알았는데 20대였다. 사진도 정말 잘 찍어주고 너무 착했다. 엄청 큰 나무줄기를 타고 빙글빙글 날아다니는 장기도 보여주었다. 필리핀 남자 장민은 거의 50살이었는데 다들 장민이 30대라고 생각해서 나이를 듣고 다 충격에 빠졌다. 장민은 정말 외향형 인간이었고 말이 많아서 편했다. 내가 말을 안 해도 혼자 계속 말을 했기 때문에 반응만 열심히 해주면 되어서 너무 좋았다.

 빅 투어의 하이라이트인 반티 쎄리 Banteay Srei는 이름도 신비하고 정말 붉은색이었다. 돌에 하나하나 섬세하게 조각된 걸 보고 멋지다는 말밖에 생각이 안 났다. 어떻게 이걸 하나하나 다 새기고 보존을 한 걸까? 인간은 정말 대단하면서도 이거를 보고 죽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 보고 나와서 기념품 샵 앞에 있던 아기가 너무 귀여워서 인사를 하자 아기의 가족들이 주변에서 아기한테 '기브미 원 달러'라고 말하라며 시키는 데 아... 정말 아프리카 때 생각나서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 애써 무시한 채로 차를 타고 각자 숙소로 데려다줬다. 숙소에 내려서 근처 핫도그집에 명랑 핫도그의 치즈 핫도그 같은 게 있어서 사 먹으러 갔다. 거기서도 남자 초등학생 무리가 와서 돈을 달라고 했다. 아프리카 때 이미 수십 번 경험해 본 짬이 있어서 흐린 눈을 하고 못 들은 척, 핸드폰을 보는 척했더니 갔다. 치즈만 들어간 핫도그를 먹으면서 숙소로 오는 길은 마치 내가 한국의 여름 속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캄보디아 빅 투어


 오후 5시부터 9시까지는 정말 호스텔의 시끄러움을 제대로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사람들이 단체로 고양이에 빙의가 된 건지 노래에 맞춰서 '미아 옹~'소리를 다 같이 냈다. 그냥 웃겼다. 풀파티를 매일 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풀파티가 이렇게 시끄러운 풀파티인 지는 몰랐다. 내향형 인간에게 고통을 선사해 주는 순간들이었지만 솔직히 고양이 흉내 내는 게 웃겨서 방에서 친구들한테 녹음해서 카톡으로 보내줬다. 이런 점들만 제외하면 체계적이고, 정수기도 있고, 세탁기(이것도 문제가 있기는 했다만 해결되었으니 괜찮다)도 있고 하우스 키핑도 매일 해주는 점들 때문에 호스텔이 나쁘지는 않았다.


 다음 날, 호스텔 1층에 혹시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 수 없고 조용하게 나 혼자서만 앉아서 쉴 수 있는 곳이 있나 둘러보았다. 로비 구석에 충전기와 사람도 거의 없는 테이블이 있었다! 덕분에 카페를 가서 쓸데없이 음료를 마시면서 돈도 안 써도 되고 왔다 갔다 고생도 안 하고 호스텔 1층에서 일기 쓸 수 있었다. 일찍 알았으면 엊그제 그린티 라테를 받는 일도 없었을 텐데.

락록과 반 체브

 일기를 다 정리하고 나서는 바넬 베지테리언 레스토랑 Banlle Vegetarian Restaurant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일부러 베지테리언 식당으로 가서 버섯 락록(불고기맛이 나는 소스의 음식)과 Bahn Chev를 먹었다. 버섯이 즙도 많고 탱글탱글한데 불맛도 나서 너무 맛있었다. 밥이랑 비벼먹으니까 두 그릇은 먹겠다 싶었다. 반 체브는 반쎄오 같은 건데 2개 이상부터 시킬 수 있다고 해서 거의 메뉴 세 개를 혼자 먹은 셈이었다. 진짜 배불렀다. 다 먹은 뒤에는 근처에 있는 베이커리를 갔다. 케이크가 먹고 싶어서 간 건데 솔직히 케이크랑 초콜릿 타르트 이렇게까지 맛없기 쉽지 않은데 정말 맛없었다. 그래도 기억에 남는 이유는 후불 결제인 카페였는데 현금만 된다고 하여서 카드밖에 없는 상황이라 그럼 호스텔에 가서 돈을 가져오겠다고 했었다. 그러자 그냥 다녀오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제 지갑을 맡기고 갈게요라고 하자 그냥 다녀와도 된다는 거다. 아니, 내가 다시 안 돌아오면 어쩌려고요?! 당황스러워서 내 지갑을 직원 손에 쥐어주고 뛰어갔다 올게요 외치고 호스텔로 전력질주해서 돈을 가지고 왔다. 캄보디아 사람들은 어떻게 이렇게 다들 순수하고 착할까? 캄보디아에 대한 좋은 기억들은 다 이런 사람들 덕분이다. 

 이 카페가 기억에 남는 두 번째 이유는 블랙 핑크 때문이다. 사실 여행을 하면서 케이팝과 케이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기는 했다. 그런데 여기서 제일 신기한 경험을 했다. 가끔 카페에서 블랙핑크나 방탄 소년단 노래가 나온 적은 있었는데 여기서는 블랙 핑크 노래에 맞춰서 사람들이 박수를 막 쳐서 뒤를 돌아봤다. 카페 사장 아저씨가 프랑스인이었는데 그 아저씨와 아저씨 친구들이 다 같이 박수를 치고 있었다. 그 가운에 데는 아저씨 친구들 중 하나의 딸인 것 같은 애기가 블랙 핑크 'Shut down'이랑 'Pink Venom'에 맞춰서 춤을 추고 있었다. 난 진짜 내가 꿈을 꾸미는 줄 알았다. 캄보디아에 있는 프랑스 베이커리 안에서 한국 노래에 맞춰서 춤을 추는 아이와 박수를 치는 프랑스인 아저씨들이라니. 문화의 힘이 강한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크게 느낀 순간들 중 하나였다.

 카페에서 나와서, 호스텔에서 해피 아워 타임이라고 맥주를 싸게 주는 시간이 있는데 시끄러울 것 같아서 일부러 그 시간을 피하려고 한 시간 정도 걷고 돌아갔는데 핼러윈에 맞춰서 엑스트라 풀파티를 한다고 노래를 엄청 크게 틀고 다 같이 파티를 하고 있었다. 정말 고통스러운 순간이었다. 아니 풀파티를 이렇게까지 할 수가 있나. 나는 호스텔이었지만 개인 방을 썼는데 방까지 쿵쿵 음악소리가 다 들려서 이 날도 귀마개를 꽂고 잠들었다. 정말 다 좋은 호스텔이었는데 소음이 무지막지한 곳이었다. 개인도 아니고 호스텔 주최로 열리는 풀파티라서 이건 말을 해도 소용이 없겠다 싶어서 그냥 잠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구글맵과 아고다에 후기 쓰는 것밖에 없겠구나 싶었다.

할로윈을 맞이한 펍 스트리트

 다음 날 점심에는 한식이 그리운 건 아니었는데 그냥 캄보디아 한식당이 궁금해서 한식당을 갔는 데 직원들이 너무 친절했다. 사장님이 영어로 음식 맛있냐고 해서 짱이라고 말하다가 느낌이 이상해서 'Are you Korean?' 하니까 맞다고 하셔서 '저도 한국인이에요 으하하학'하고 서로 빵 터졌다. 정말 친절하시고 맛도 있고 직원들도 너무 착하고 한국 노래도 계속 나와서 좋았다. 젊은 사장님이셨는데 타지에서 한식당을 하시는 게 너무 멋져 보였다. 한식을 먹고 나자 갑자기 입이 터지기도 했고 다음 날이 방콕을 가는 날이라서 남은 캄보디아 돈을 다 써야 한다는 사명감에 한국 아이스크림을 엄청 먹었다. 사실 핑계다. 생각해 보면 굳이 그걸 다 쓸 필요는 없었다. 환전을 하거나 기념품을 사거나 실용성 있는 옷을 샀어도 됐는데. 솔직히 말하면 그냥 내가 먹고 싶었던 거다. 왕창 먹고 나서 다음 날 출국을 위해 짐을 정리하고 그대로 잠들어버린 여유로운 하루였다.

 캄보디아에서의 마지막 날, 그랩을 잡아서 툭툭를 타고 공항으로 갔다. 캄보디아에서 쓰고 남은 돈은 다른 나라에서 화폐 가치가 없기 때문에 주변에 팁으로 주거나 유니세프 모금함에 넣어주고 오는 게 낫다. 아직도 내 지갑 속에 어디서 쓰지도 못하고 기부도 못하는 2600리엘을 들고 다니고 있다. 캄보디아를 다시 돌아오지 않는 이상 평생 들고 다닐지도 모른다. 이쯤 되면 얼마 되지도 않으니 그냥 일기장에 붙여야 되나 고민도 든다. 캄보디아 다음은 태국이다. 태국 다음에 라오스를 가려고 예매해 둔 비행기가 취소되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하면서 태국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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