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지 못하고 데자뷔 같은 작별과 만남만 반복 재생 중
2주간의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결혼하자마자 만난 친구, 밥도 잘하지 못해 헤매던 그 친구는 어느새 주부 10년 차가 되어가고 그의 요리 실력은 수준급이었다. 그 친구는 10시간의 운전 길에 먹으라며 삼각김밥을 김치 맛, 스팸 맛, 고추 멸치맛, 야채맛 별로 한가득 싸주고, 삶은 계란도 한가득 싸주었다. 친구와 눈물 콧물 다 빼는 요란한 이별을 하고 휑한 가슴을 안고 남쪽을 향한 운전대를 잡았다.
그. 런. 데. 한 시간을 좀 못 달렸을 때 친구가 전화가 왔다. 아들 스케이트 보드가 거기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모르는 사이 트렁크에서 뺐었나 보다. 이 팬데믹에 고장 난 자전거는 수리를 위한 대기만 삼 개월째이고, 유일하게 아들이 타고 놀고 있는 것이 스케이트보드이다. 요즘은 스케이트보드 구입도 오래 기다려야 한다. 순간 고민을 하다 결국 스케이드 보드를 픽업하러 돌아가기로 했다. 다시 돌아간 친구 집에서 남편은 예상치 못한 업무 전화미팅에 계속 붙잡혔고, 아빠를 기다리던 아들은 내려가는 길 휴게소에서 하기로 했던 태권도 레벨테스트를 하게 되었다. 결국 모든 일을 다 마치고 나니 오후 5시가 다되어갔고, 10시간 운전은 무리였다. 우리는 다시 광란의 밤을 보내고 내일 떠나기로 했다.
산불 때문에 못 떠나, 스케이트보드를 두고 가서 다시 돌아와, 이렇게 자꾸 여행이 길어지니, 친구의 남편은 아주 오래전 순풍산부인과에 이런 비슷한 장면이 생각난다며, 배우 권오중 씨가 역 중에 미국 유학길에 오르며 작별만 다섯 번 하다 떠나지 못한 장면이 있었다 했다. 본 적 없는 장면이지만 우리 모습과 함께 우스운 상상이 된다. 우리는 십 년 차 주부인 친구의 수준급 치킨 가라게와 오래 건 와인을 물고기처럼 들이켰다. 그리고 밤공기를 맞으며 산책을 했다. 크고 으리으리한 포틀랜드 집들, 유난히 커 보이는 달, 촉촉하고 차가운 숲의 공기, 아이들의 웃음소리 모든 게 아름다운 밤이었다.
모든 게 완벽한 이 아름다운 밤 나는 메모 앱을 꺼내 “오래건 탈출 체크 리스트”라는 이름 하에 빠뜨리지 않고 챙겨갈 물건 리스트를 작성했다.
떠나는 날 아침 친구는 가는 길에 먹으라며 세 번째 주먹밥과 삶은 계란을 싸주었다. 우리는 예전 이곳에서 즐겨먹었던 올림픽 펄비젼의 살라미(말린 돼지고기 소시지) 도 빼먹지 않고 챙겼다.
큰 땅떵이에 살아 보고싶은 가족도 친구도 자주 만나지 못하고 살고 있다. 오랜 떠돌이 생활에 헤어짐이 익숙할법도 한데 이렇게 이별하고 돌아오는 길은 가슴이 뻥 뚫린것같고 배가 허전하고 슬프다. 괜히 허기가 진다. 이 허한 마음을 주먹밥과 살라미를 질겅질겅 씹으며 달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