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따라 동네 회관에 가고 있었다. 동네 아저씨는 엄마한테 인사한 후, 내게 말했다.
“육일아, 엄마 젖 먹으려고 졸졸 따라다니냐? 너만 모르는 게 있다. 아저씨가 알려주랴?”
아저씨는 뭐가 재밌는지 실실 웃으면서 지나갔다. 나는 아버지 환갑인 61세에 태어났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이 ‘육일’이라고 불렀다.
며칠 뒤에 고샅에서 그 아저씨를 만났다. 소를 데리고 밭에 가나 보다. 아저씨는 밀짚모자를 쓰고, 목에 수건을 둘렀다. 아저씨가 굵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육일아, 전원일기에 나오는 금동이 알지? 금동이처럼 너도 업둥이다. 봐라, 너 이름 없지? 다리 밑에서 주워 왔으니까 이름도 안 지어주었지.”
아저씨는, 엄마가 옆에 있을 때는 못 하던 말을 쏟아냈다. 히죽히죽 웃으며 재밌다는 듯. 쟁기를 짊어진 채 아저씨는 소와 함께 천천히 멀어졌다.
기분이 이상했다.
‘날 주워 왔다고, 다리 밑에서?’
오빠가 구정물 통에 담긴 물을 소죽 끓이는 가마솥으로 옮기고 있었다. 구정물 통은 버려지는 쌀뜨물이나 채소 찌꺼기, 설거지에서 나온 밥알을 모아두는 통이다. 우리 집은 여물과 구정물을 섞어 소죽을 끓였다. 깨진 양동이 사이로 구정물이 흘렀다. 나는 큰 소리로 말했다.
“오빠, 밥티기 흘렸어.”
오빠는 괜찮다며 내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구정물 통에서 물을 뜨고 있는 오빠에게 다가갔다. 작은 소리로 말했다.
“오빠, 나 다리 밑에서 주워 왔어? 내가 업둥이라 이름도 없는 거래. 그 말 맞아?”
아버지와 엄마는 나를 ‘아가’라고 불렀고, 동네 사람들은 ‘육일’이라고 불렀다. 오빠들은 나를 ‘막둥이’라고 했다. 우리 동네 여자애들 7명은 각자 이름이 있었다. 금자, 순자, 영순, 점례, 기화, 효숙, 희주. 나는 출생신고를 안 해서 이름이 없었다.
오빠는 나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맞아. 다리 밑에서 주워 왔대.”
오빠가 ‘아니’라고 말할 줄 알았다. 나는 얼음땡 놀이처럼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서 있었다.
오빠는 내가 꿈쩍 안 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안채와 사랑채를 왔다 갔다 하며 구정물을 퍼 날랐다. 오빠는 구정물 통을 깨끗이 비우고 내게 말했다.
“막둥아, 마루 밑에 있는 장작 대여섯 개만 갖다 주라.”
나는 아주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치~. 우리 오빠도 아니면서. 싫어, 심부름 안 해!”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어던지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눈물이 흘러 입술에 닿았다. 짠맛이었다. 콧물이 나와 ‘팽’하고 풀었다. 소매에다 콧물을 쓱쓱 닦았다. 속상한 마음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아랫목에 있는 벽장으로 올라갔다. 벽장 안은 어둡지만 아늑했다. 이불이 켜켜이 개어있어 푹신했다. 이불 위에 엎드려 울다 잠들었다.
시끌벅적한 소리에 눈을 떴다.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육일아!”
“아가!”
“막둥아!”
아버지, 엄마, 오빠들, 집안 식구가 총출동했다. 옆집, 앞집 사람들도 나를 찾으러 동네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벽장문을 열고, 엄마를 불렀다.
“어~엄~마, 엄~마, 엄마!”
엄마가 쏜살같이 달려왔다.
엄마를 보자 눈물이 났다.
“엄마, 나 다리 밑에서 주워 왔어? 엄마 딸 아니야?”
엄마가 웃으면서 말했다.
“응, 주워 왔지. 엄마 다리 밑에서.”
“힝~, 그게 뭔 말이야. 엄마 다리 밑에서 어떻게 주워 와?”
엄마는 나를 꼭 껴안으며 등을 토닥였다.
엄마가 심부름을 시켰다. 동네 아저씨 집에서 호미를 빌려오라고. 나를 놀렸던 아저씨가 마당에서 쟁기를 손보고 있었다. 아저씨한테 꾸벅 인사했다.
“아저씨, 엄마가 호미 서너 개 빌려달래요.”
아저씨는 호미를 내밀며 말했다.
“야, 김육일, 지금도 엄마 젖 만지고 자냐? 진짜로 여덟 살까지 젖 먹을래?”
아저씨가 놀려도 끄떡하지 않았다. 엄마 딸인 걸 확실하게 알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