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말이었다. 눈이 조금씩 녹긴 해도 산은 여전히 하얀 눈으로 덮여있었다. 마당가에는 지붕에서 미끄러진 눈이 처마를 따라 쌓여 있고, 사랑채 아궁이는 소죽을 끓이느라 장작이 활활 타고 있었다. 오빠들은 사랑채 앞에 모였다. 새 학기 이발을 하려고.
아버지는 바리깡을 사 왔다. 바리깡은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누구나 머리를 밀 수 있다고 했다. 새 바리깡은 은색이었고 빗살이 두 개 겹쳐 있었다. 악력기처럼 중간에 스프링이 있었다.
엄마는 큰 보자기와 빨래집게를 내게 주었다. 나는 엄마를 보며 말했다.
“엄마, 이발사 조수 해도 되지?”
“오냐, 오빠들 따라쟁이. 하하하.”
엄마가 웃으며 뭔가를 내밀었다.
“동백기름이다. 바리깡 빗살에 두 방울 떨어뜨려. 이걸 바르면 머리카락이 잘 깎인다더라.”
첫 번째로 넷째 오빠가 의자에 앉았다. 내가 얼른 오빠 목에 보자기를 두르고, 빨래집게로 끝을 고정했다. 큰오빠가 바리깡을 잡은 후 빗살 끝에 동백기름을 떨어뜨렸다. 큰오빠는 목덜미 아래서부터 정수리 쪽으로 바리깡을 밀었다. 큰오빠가 넷째 오빠 머리를 빡빡 미는데 20분 정도 걸렸다. 넷째 오빠 두상 골격이 드러나자 군데군데 부스럼이 보였다. 엄마는 더벅머리를 밀어내니 속이 다 후련하다고 했다.
바리깡을 잡았던 큰오빠 엄지손가락에 물집이 잡혔다. 추운 날인데도 이마에 땀이 맺혔다. 바리깡을 잡고, 머리를 미는 게 쉬워 보였는데, 보기와는 달랐다.
다음은 다섯째 오빠였다. 막내 오빠는 큰오빠에게 주문했다.
“큰형, 빡빡머리 싫어요. 좀 길게 해주세요.”
큰오빠는 알았다고, 빗과 바리깡을 동시에 사용했다. 처음 해보는 일이고 절삭력이 떨어지는 바리깡이라 머리카락이 뜯겼다. 큰오빠가 잘하려고 해도 자꾸 쥐 뜯어먹은 머리카락이 되었다. 큰오빠가 말했다.
“막내야, 쥐 뜯어먹은 머리카락으로 다닐래? 아니면 빡빡머리 할래?”
막내 오빠는 잠시 고민하더니
“그냥 다 밀어주세요.”
결국 막내 오빠도 빡빡머리가 되었다.
조수 일이 끝난 나는 막내 오빠가 두른 보자기를 풀었다. 그리고 잽싸게 의자에 앉았다.
“나도 빡빡머리 해줘.”
막내 오빠 머리를 털어주던 엄마가 말했다.
“안 돼, 너는! 빡빡머리는 남자들만 하는 거야.”
“싫어, 나도 형들처럼 빡빡머리 할 거야. 해줘.”
그때는 뭐든지 오빠들을 따라 하면 일곱 살 꼬맹이에서 벗어날 것만 같았다.
엄마는 혼자 구시렁거렸다.
“고명딸 머리를 빡빡 밀다니. 예쁘게 묶어주고, 따주려고 했건만. 아이고, 아이고!”
빡빡머리를 하겠다는 내가 못마땅한지 엄마는 계속 한숨지었다.
세 번째라 그런지 큰오빠 손이 빨라졌다. 내 머리카락이 조금씩 밀려 나갔다. 빡빡 밀었을 때, 목덜미가 허전했다. 머리카락을 털어내고, 거울을 보았다. 웃음이 나왔다. 튀어나온 이마와 뒤통수가 오빠들이랑 똑 닮았다. 오빠들이 심심할 때, ‘앞디꼭지’라고 놀렸었다. 빡빡이 머리를 해보니 그 말이 맞았다.
엄마는 사랑채 앞에 있던 머리카락을 쓸어모아 아궁이에 던졌다. 활활 타오르던 장작 사이로 머리카락이 타들어 갔다. 노린내가 퍼졌다. 두 빡빡이 오빠는 아궁이 앞에서 불을 쬐었다. 나는 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셋이 앉아서 장작불을 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