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맞이 옷장을 정리하다 울컥 울어버렸다. 그리고 다 버렸다...
난 그 옷을 입을 수 있을줄 알았어..
봄을 맞아 옷장을 정리했다.
입지는 않고 몇 년째 걸어두기만 했던 옷들을 두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래 이참에 안 입는 옷들 싹 정리해보자!’
그렇게 갑자기 일이 커져버렸다.
정리해야 할 옷들은 결혼 전
그리고 큰아이 출산 전에 입던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지금은 못 입고 있지만
예전에는 너무 아끼던 옷들 이었다
살을 빼면... 아이가 조금만 크면 ...
살 쫙~ 빼고 입고 말거야~!!
생각하며 가지고 있었던 옷들이다.
몇 년만에 다시 꺼내서 보니
어떤 것은 색이 변해 버렸고,
출산 후 찐 살이 여전히 상승곡선인 나에게
이제는 너무도 작은 옷들이 되어 있었다.
살을 쏘옥 뺀다고 해도 유행이 지나 입기 촌스러울 것 같았다.
금기의 추억을 소환시켰다.
그 옷들을 과감히 버리려고 꺼내서 차곡차곡 상자에 담는데,
옷마다 담긴 추억들이 하나하나 같이 떠올랐다.
‘어머! 이건 남편이랑 소개팅 했을 때 입었던 옷이네~’
‘이거는 호주 워킹가서 산 옷인데..‘
‘이 옷은 회사 다닐 때 외부 미팅 있으면 꼭 입었었지..
이 옷 입고 프리젠테이션하면 내가 봐도 멋졌었는데...
버리기 아깝다.. ’
그렇게 옷들은
나 스스로 꽤나 괜찮게 살고 있다고 자부했던
금기와 같았던 추억의 시절들을 소환시켰다.
갑자기 울어버렸다.
그런데....
갑자기 왈칵 눈물이 쏟아진다...
나는 이 옷을 처음 옷장에 넣을 때는,
출산하고 나면 금방 다시 입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이 예쁘고, 근사한 옷들은
아이가 태어나고 나니 도저히 입을 수가 없었다.
출산으로 체형이 달라졌고,
무엇보다 어디든 아이와 함께해야 하는
아기엄마가 입기에는 다들 불편한 옷들이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단아한 원피스는
어디서든 모유수유를 해야 했던
신생아 시절에는 절대 입을 수 없는 아이템이었다.
나의 통통체형을 커버해준
플레어 스커트와 허리잘록 상의들은
아이를 안고 내릴 때마다 배가보이고, 허리가보이고...
한번 입고는 너무 불편해서
확~ 찢어버려야 하나 갈등하게 만드는 아이템이었다.
첫째가 어느 정도 자라
이제 이 옷을 다시 입을 수 있겠다...
설레였던 그 어느즈음...
둘째가 생기고 사회로 돌아가는 시기는 또 늦어졌다...
그렇게 다시 육아를 하며 벌써 5년이 훌적 지나버렸다.
그 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 줄 알았다..
그동안 입지도 못하면서 옷들을 버리지 못했던 것은
옷이 아까워서가 아니었다.
이 옷들은
오롯이 나를 위해 살았던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의 상징과도 같았기 때문이었다.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고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두 아이가 있지만
그 속에서도 나는 엄마, 아내가 아닌
그냥 나 스스로로 살았던 시간에 대한 그리움을 늘 마음 한 켠에 두고 있었다.
아이가 어느정도 자란 어느때가 되면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 줄만 알았다.
나에게 이 옷을 정리한다는 것은... 뭐랄까...
그 희망이
현실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옷을 정리해서 상자에 담을 때마다
내 마음 속에서는 옷을 넣는 것이 아니라
그 시절의 꿈을 접어 넣는 것 같이 느껴졌다.
청승떨지 말고 새 옷을 사자!
그렇게 꽤나 긴 시간을
상자에 담긴 옷들을 차마 정리하지 못한 채
옷에 묻은 그리운 시절을 꺼내 보며
눈물이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아니 엄마가 된 사람은
울음의 끝도 내가 정하지 못한다.
곧 남편과 아이들이 돌아올 시간이 왔고
나는 마음도, 옷도 정리를 해야 했다.
서둘러 상자에 테이프를 꼭꼭 붙혀 마무리를 하고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 옷장 정리했어. 올 봄엔 옷을 몇 벌 사야할 것 같아.’
그렇게 나는 이 옷들을 버리고 새 옷을 사기로 했다.
이제야 현실을 받아들였다.
나는 ... 돌아갈 수 없다.
돌아보아 후회하지 않을 만큼
열정을 쏟아 일했고, 공부했다.
그렇게 꿈을 향해 열심히 달렸던 그 시절이 있었기에
그 길 어디즈음에서 사랑하는 남편을 만났고,
세상을 다 주어도 살 수 없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이제야 아이들이 다 커도
다시는 그 시절처럼
나를 위해서만 일하고 먹고 쉴 수 있는 시간은
기다리지 않는다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
불같이 빛나게 태워보냈던 그때의 나에게
꼭 맞는 옷이 있었던 것처럼
이제는 지금 내 삶을 풍성히 채워주고 있는
가족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새로운 마음의 옷도 필요한거구나..
마음을 고쳐먹었다.
꿈을 정리했는데 2만 2천원이라니..
그렇게 눈물로 정리한 옷들은
헌옷수거하시는 아저씨가 2만 2천원에 가져가셨다...
눈물과 함께 꿈을 접어 넣은 그 옷들을
돈으로 환산해 받으니 참나~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그 돈으로 치킨을 시켜
가족과 내 배속에 다 넣어버렸다~
새 옷을 입을 때는 내 이름으로,
그 옷을 벗으면 엄마로..
얼마가 지나 정말 새로운 옷들을 샀다.
그리고 또 얼마가 지나
일주일에 두 번 짧게 하는 일을 시작했다.
거짓말 같은 타이밍으로 새로 산 옷을 입고 일한다.
이제 예전처럼 밤새 일하고 출장가고 쓰러져 자다가
또 일하러가는 그런 일상은 없다.
아침부터 일하러 가기 전까지
집안일에 저녁준비까지 다 해놓고,
일을 마치면 종종거리며 아이들을 데려와
예쁜 옷 훌훌 벗어버리고 얼른 헐렁이 옷으로 갈아입는다.
그리고 다시 엄마가 된다.
새 옷을 입을 때는 내 이름으로 살고,
집에 와 그 옷을 벗으면 엄마가 된다.
옷을 정리하며 마음도 정리했더니,
이런 일상도 꽤 괜찮다.
202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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