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덕생 Oct 20. 2022

동화의 섬에 머물다.

PEI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

그 이름만으로 신비감과 유럽의 분위기, 그리고 왕족이나 영주의 땅이 상상되는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 (PEI).

우리는 그 이름을 캐나다 국경을 넘고 나서도 한참 만에야 알게 되었다. 노바 스코샤 여행 일정이 어느 정도 진행될 즈음, 캐나다에서 가장 작은 주, 노바 스코샤 머리 위에 있는 섬, PEI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노바 스코샤 여행 도중 PEI 여행을 결심했다. 더더구나 소설 ’ 빨간 머리 앤’이 태어난 곳이니 집사람의 관심이 더 집중될 수밖에…


우리 세대의 어린 시절 여자 아이들에게 최고의 화제였던 ‘빨간 머리 앤’ , 아니 소설과 만화로 몇 세대를 걸쳐 회자되었던 이야기의 본고장인 만큼 더더욱 가고 싶은 욕구가 솟구쳤다. 사실 그 시절 남자아이들은 관심도 두지 않은 이야기였으나, 워낙 유명세가 있다 보니 나도 덩달아 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지도를 살펴보고 인터넷을 검색한 결과 PEI로 가는 길은 2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노바스코샤 Caribou에서 PEI의 Wood Islands까지 페리를 이용하여 가는 방법과 뉴브런즈윅에서 세계에서 가장 긴 다리 컨퍼더레이션 브릿지를 건너가는 방법이 있었다.


처음엔 페리를 타고 가서 나올 때 컨페더레이션 브릿지를 건너 나오는 것을 계획했으나 페리의 시간 일정을 맞추고 승선 절차를 밟고 하는 번거로움을 고려하여 들어갈 때도, 나올 때도 컨퍼더레이션 브릿지를 이용하기로 했다.


PEI 여행을 끝내고 알게 된 사실은 브릿지를 이용하면 통행료는 PEI를 나올 때만 지불하면 된다. 캐나다 달러로 $50.25 그리고 자동차 2개의 축을 기본으로 초과 축 1축당 캐나다 달러$8.50을 추가한다.

 페리 운임은 페리 운영 사이트에 나온 것으로 추측해 본다면 차량에 따라 다르지만 차량요금과 더불어 운전자를 제외한 승객수에 대한 요금을 왕복요금으로 한 번만 내는 것으로 추정된다.


 노바스코샤의 아쉬운 추억들을 새기며 뉴 브란즈 윅을 거쳐 8마일의 끝이 보이지 않는 다리 앞에서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의 풍경을 상상해본다.


 앤이 매슈 아저씨에게 ‘이곳의 흙은 왜 이렇게 빨간가요?’라고 물었던 흙과 돌이 온통 빨간, 그리고 푸른 바다와 하늘이 맞닿는 빨간 머리 앤의 마을을 그려 보면서 우리는 컨퍼더레이션 브릿지를 지나 PEI welcome center로 들어선다.


Welcome center에서 입수한 지도는 PEI를 네 지역으로 구분한다. West, Central , East지역 그리고 주도인 샬롯타운, 우리는 웨스트 지역의 웨스트포인트 등대를 첫 목적지로 삼고 길을 나섰다.


노바 스코샤와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아카디안의 삶과 역사의 흔적들이 곳곳에서 아틀란틱 오션을 건너온 첫 이민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서머사이드(Summerside)를 지나  미스코쉐( Miscouche)라는 작은 마을에 있는 아카디안 박물관이 대표적일 게다. 문을 닫을 시간에 도착하여 박물관 건물 주위만 보았지만 오래된 비석과 예수상에서 풍겨오는 분위기만으로도 그들의 역사를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West Point Lighthouse  Inn & Museum 은 명칭 그대로 등대 안에 숙박업과 박물관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우리는 가까운 주립공원 캠핑장에 자리 잡았는데, 등대에서 하룻밤 지내는 것도 꽤나 운치가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인근의 작은 항구도 역시 PEI 이름에 걸맞게 동화 속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부둣가 창고에도 알록달록 각각의 색깔로 닻, 바닷게, 불가사리, 등대 등을 그려 두고 배에도 깜찍하게 해적 깃발을 달아 두었다. 그래서 나는 PEI를 ‘동화의 섬’으로 부르기로 했다. 물론 ‘빨간 머리 앤’의 본고장이어서 더더욱 그렇지만 말이다.


붉은 바위와 흙으로 이루어진 곶과 해안… 그 색깔과 대비되면서 눈 부시도록 푸른 애틀란틱 바다와 청량한 하늘…. 푸른 벌판을 가로질러 질주하는 말들…. 그리고 폐부 깊숙이 들어와 온몸으로 느끼는 신선함…


North Cape까지 가는 North Cape Coastal Drive를 거치며 느끼는 감상을 표현하자면, 군더더기 없이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빨간 머리 앤’ 몽고메리 작가가 세계적인 명작을 구상한 마을…그리고 지금은 세계적인 명소가 된 Anne’s Green Gables 그곳을 향해 Cental Coast Drive를 달려간다.


그렇게 우리는 동화 속으로 빠져 든다. 그렇게 환상적인 동화 속의 분위기를 기대했지만 기대만큼 충족되지 못하는 아쉬움을 가진다.


그렇지만, 뛰어난 명작 하나가 이 세상을 어떻게 움직이는지 충분히 공감을 가지고 또 길을 나선다.

Anne’s Green. Gables




건축디자인 일을 하는 아들이 꼭 가봐야 할 장소로 추천해준 장소 ‘ The Dunes Studio Gallery & Cafe’를 향한다. 내비게이션을 찍고 달려간 그곳, 유명세를 타는지 주차장이 발 디딜 틈이 없다. RV는 차체도 큰 탓에 겨우 겨우 자리를 잡고, 주변을 둘러본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건물 주변의 소품 하나부터 분위기를 압도한다. 때가 때인 만큼 카페에서 간단한 식사로 점심을 해결하고 이곳 투어를 시작한다. 연신 나의 입에서 ‘존경스럽다’는 감탄사가 저절로 새어 나온다. 개인 소유의 갤러리, 단지 카페 운영과 예술품 및 각종 소품 판매로 운영하면서 일반인에게 멋진 옥내, 옥외 갤러리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정말로 존경스러웠다. 동서양을 망라한 예술품들이 시선을 압도한다. 내 짐작으로는 이곳 갤러리를 운영하는 분은 동양인이거나, 동양의 피가 흐르는 분이라고 추측해 본다.


그분, 이름도 얼굴도 모르지만 그곳 ‘The Dunes Studio Gallery & Cafe’의 오너분에 대한 존경심을 가득 가슴에 안고 PEI  National Park으로 향한다. PEI 안내 자료에서 본 멋진 풍경 그곳을 향해서… 정확히 말하자면 ‘Greenwich beach floating boardwalk’


내가 만든 유튜브에서 나는 그곳의 풍경을 소개하고 배경 음악으로 ‘ walk into paradise ‘를 실었다. 어쩌면 정말 환상적인 floating boardwalk 지나 모래언덕을 넘어 눈앞에 Greenwich beach를 보았을 때 파라다이스를 만난 그런 기분이었기에 감히 그 음악을 선택했는지도 모르겠다.


‘ 아 아하 ㄸㄸ ㄸ ㄸ… 아 아하 ㄸ ㄸ ㄸㄸ…’ 그 풍경과 ‘walk into paradise’ 내가 선택했지만 정말 멋진 조화라고 자찬한다.


floating boadwalk에서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길에 캐나다  온타리오주에서 오신 세 쌍의 60대 후반 한국분들을 만난다.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만으로 무척 반갑다.


이민을 온 지가 이십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낯선 곳, 한국인이 많지 않은 여행지에 오면 늘 그렇게 낯익은 언어가 반갑기 그지없다. 뭐라고 해야 할까? 속된 표현을 빌리자면 ‘뭔가 당기는 것이 있다’고 해야 하나? 어디서 오셨나? 어떻게 오셨나? 다음 여행지는 어디냐? 주고받는 이야기들이 일상적인 이야기지만 정겹다.


 제주도의 3배 크기이면서 캐나다에서 가장 작은 주, 크기에 걸맞게 North Cape부터 East point까지는 그리 멀지 않은 것 같다. Anne’ Green Gable, The Dune’s Gallery Studio & Cafe, 그리고 Greenwich beach Floating walkboard를 거쳐 East Point로 향한다.


해가 뉘엿뉘엿 기울어 가고, 침엽수림이 병풍처럼 펼쳐진 도로 위의 노을빛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지만 덜컥 걱정이 앞선다. 아침에 출발할 때부터 캠핑장 예약 없이 길거리 한적한 곳이면 1박을 할 각오로 달려왔으니 말이다. 지도상에는 East Point 가끼운 곳에 2개의 캠핑장이 표시되어 있다.


땅거미가 깔려 주위가 이미 어두워질 즈음, 겨우 캠프벨 코브 캠핑장(campbell’s cove campground)에 도착했다. 캠핑장 오피스는 비어 있고, 친절한 아저씨 캠퍼분이 매니저를 찾아서 다행히 체크인을 한다. 대부분의 캠핑장이 오후 5시 이후쯤이면 문을 닫고 미리 예약한 캠퍼들에게만 체크인 관련 인포메이션 봉투를 게시판에 걸어 두는 것이 상례인데, 참으로 다행이다.


늦은 시간 도착하여 허둥지둥 캠핑 모드로 바꾸고 저녁 준비를 한다. 이것도 어쩌면 캠핑의 묘미일지도 모르겠다. 별이 참 맑고 많다. 캠핑장 언덕 아래가 바로 작은 만(cove)이기에 파도소리가 밤하늘 별과 조화롭다. 모닥불을 피우고 파도소리와 더불어 장작 타는 소리도 함께 즐긴다.


다음날, 캠핑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East Point로 향한다. 오늘은 East Coastal Drive를 달려 PEI의 주도 샬롯타운까지 갈 계획이다.


외로운 등대, East Point Lighthouse, 낡고 허술한 등대지만 주변엔 이 등대를 지켜온 등대지기의 이름과 살아온 날에 대한 간단한 소개가 적혀있다. 어쩌면 약간은 낡고 허술한 모습이지만 붉은 언덕으로 이루어진 작은 만과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다시 길을 나서, East Coastal Drive를 거치며 때로는 중간을 가로지르는 하이웨이를 통과하여 주도인 샬롯 타운으로 들어선다. 역사적인 작은 도시지만 주도답게 복잡하다. RV를 가지고는 쉽게 구석구석을 구경하기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에 항구 쪽에 있는 공공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시내를 순환하는 마차 투어를 하기로 했다.


비롯 작은 도시지만, 오래된 건물들이 저마다의 위용을 자랑한다. 한반도의 오랜 역사에 비교하면 짧은 이민의 역사지만, 나름의 역사를 지키고 보존하는 것이 감탄스럽다. 마차 가이드분의 안내 또한, ‘이 건물은 얼마나 오래되었고, 그리고 어떻게 보존되었는지’에 대한 안내가 주를 이룬다.


그런데, PEI 안내책자에 있던 수채화 같은 그림, 작은 항구에 알록달록 그림 같은 창고가 부두에 늘어서 있던 그곳을 찾을 수가 없다. 안내책자에 있던 사진 아래 그 주소를 찾았을 때 분명 샬롯타운이었는데….


다시 인터넷을 뒤져보니 그곳은 Central PEI 서북쪽에 있는 말페큐(Malpeque)란 곳이다. 샬롯타운에 표시된 곳은 그 풍경 그림이 있는 갤러리였다. 급히 근처 주립공원 캠핑장(Cabot Beach Provincial Park Campground)을 예약을 하고 말페큐로 향한다. 멋진 풍경이 있는 곳, 흔히들 ‘인생 샷’을 찍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야 하지 않겠나?


알록달록하게 줄 지은 창고 건물, 그 앞에 늘어선 어선들… 홍보 책자에 나온 그대로의 풍경이지만 어선들의 색깔이 좀 아쉽다. 책자 속의 어선들은 알록달록 창고 색깔과 같은 색깔로 맞추었는데…

늘어선 창고 중의 한 곳은 ‘The Malpeque Oyster Barn’이란 레스토랑이다. 유명한 레스토랑일 거라는 생각으로 갔는데, 진짜 유명 레스토랑이다. 예약이 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아쉽게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저 Malpeque Wharf의 이쁜 풍경을 눈에 담고 가는 것으로 만족해야겠다.


이제 PEI의 여행을 마무리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내일이면 다시 컨페더레이션 다리를 건너 PEI와 안녕을 고해야 한다. 하나라도 놓칠세라 주변을 살피며 나오는 길에 독특한 곳이 눈에 띄어 차를 멈춘다. 켄싱턴이란 마을에 있는 ‘Haunted Mansion’ … 말 그대로 도깨비 집이다. 아직 문을 열지 않았지만 건물 외관과 가든에서 풍겨 나오는 분위기는 으스스하다.


이 지역 전설에 따르면, 잭 박사라는 부유한 영국인이 1890년대 말에 켄싱턴에 정착했고 그의 고향 런던을 모방하기 위해 이 저택을 지었다고 한다. 잭 박사가 이 저택을 여관으로 사용하면서 많은 손님을 끌었다고 하며, 그 이후 사람들에 의하면 다시는 잭 박사에 대한 소식을 듣지 못했고, 또 다른 사람들은 이곳을  미국의 악명 높은 살인사건 ‘Lizzie Borde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한다.


아무튼  PEI는 동화의 섬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어디를 가도 동화 속의 등장인물이 되는 나를 발견한다.


‘프린스 에드워드’란 이름부터, 온통 붉은색의 흙과 돌 그리고 붉은 바다, 먼 곳의 바다는 바다 색깔과 하늘색이 구분되지 않는 푸르름, 빨간 머리 앤, 말페큐의 알록달록 건물, 또 다른 그림 같은 이곳저곳의 풍경들….. 그런 동화의 섬을 이제 떠난다.


컨퍼더레이션 다리를 건너며, 언젠가는 다시 이 다리를 건너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곳을 거쳐 뉴펀들랜드까지 나의 동화를 쓰고 싶다는 욕망 아닌 욕망을 마음속에 새기며 더없이 푸른 바다와 푸른 하늘을 우러러본다.


컨페더레이션 브릿지










매거진의 이전글 가을 단풍 그리고 육십 대의 감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