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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덕생 Jun 25. 2020

영원한 나의 마음속의 연인 지리산을 회상하며..

젊은 날의 지리산 산행기

나는 늘 그 산을 그리워한다. 젊은 날 나를 품어주고 지탱해 준 연인과 같은 그 산을 말이다.

경남의 고도 진주에 있는 국립대학교에 입학하면서 나는 그 산을 처음 만났다. 처음 그 산을 만난 것은 대학 1학년 때인 것 같다. 암울했던 시절, 전국의 대학은 온통 시위로 학교 수업은 정상적이지 못했고, 그리고 오월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인하여 전국의 대학들은 몇 달 동안 굳게 문을 잠그고 만 그 시절, 내가 다니던 대학과 그 산은 가까운 거리 이기도 하고, 시절의 답답함에서 탈출이라는 명분을 꿰어 맞추면서, 나 나름 남한의 최고봉에 대한 동경심도 있고 하여 도전의 실마리를 찾은 것 같다.

처음 그 산에 입산을 시도하는 코스는 중산리- 천왕봉 코스가 첫 도전자에게 가장 무난한 코스인 것 같다. 천왕봉을 가장 빠르게 도달할 수 있는 코스가 이 코스 이기에 그 당시 지리산에 첫 도전을 하는 분들은 이 코스를 자주 이용한 것 같다. 그렇게 그 산과의 첫 조우 뒤에는 나는 그 산과 미치도록 사랑에 빠졌다. 그 후로도 몇 번의 산행으로 조금은 친숙한 사이가 될 즈음, 2학년을 마무리하고 군입대를 결심하게 되었다. 입대 전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실행하여야 하기에 단짝 친구랑 지리산 종주를 결심하게 되었다. 그것도 한겨울 지리산 종주를...

지금 생각해보면 무모하다고 생각될 만큼, 특별한 겨울 장비도 없이 세무 등산화에 비닐로 종아리를 감고, 그저 두꺼운 겨울용 바지와 점프로 산행을 나섰으니 말이다.( 가난한 대학생에게 그 당시로서는 비싼 겨울용 등산장비를 감히 장만할 엄두조차 낼 수 있겠는가!)

구례를 출발점으로 하여  유평을 종착점으로 하는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3박 4일인지 4박 5일 일정의 산행이었던 것 같다. 아마 노고단, 연하천, 세석, 장터목에서 1박씩을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워낙 오래된 일이라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연하천에서 맞은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이브의 추억과 천왕봉에서 무인 대피소인 치밭목 산장을 거쳐 유평으로 다다를 때까지 허리 깊이만큼 쌓인 눈을 헤치고 길을 만들어 내려온 경험이 아직 기억에 생생하다. 그리고 나는 다시금 지리산과 사랑에 빠졌다. 특히나 눈 덮인 백설의 지리산과...

 그리운 연인을 가슴에 담고서 대한민국 남자의 의무를 무사히 마무리 짓고 복학생으로 다시 캠퍼스로 돌아왔지만, 졸업 후 먹고사는 문제에 대해 고민하며 나날이 도서관에 묻혀 취업 준비에 빠져 있느라 가슴에 묻어 둔 연인은 잊고 지내 왔다.

요즘 젊은이들도 취업문제가 심각하다지만, 우리 때도 지방 소도시 국립대 경영학과의 명함으로는 서류 전형에서 탈락하기가 일쑤다. 다만 기댈 수 있는 곳은 대기업 공채 밖에 없었다. 그러니 엉덩이에 땀띠가 날 정도로 도서관에 처박혀 있을 수밖에...

앞날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때때로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 영어 단어와 문장들로 싸우다 지칠 때, 잊고 있던 연인이 생각났다. 그리고 배낭을 메고 달려갔다. 그렇게 그 산은 나를 감싸주고, 지친 마음을 다독여 주었다. 그렇게 산을 다녀오면 또 몇 주를 가뿐히, 상쾌한 마음으로 도서관에서 버틸 수 있었다.

2여 년의 책과의 씨름, 그리고 가끔씩 만나는 나의 마음속의 연인, 이런 조합으로 보내온 나의 복학 생활을 마무리하고, 모두가 부러워하는 대기업 취업에 성공했다. 그리고는 서울에서의 직장 생활, 워낙 먼 거리이기도 하고, 직장 초년생의 바쁜 나날들로 인하여, 나는 또 연인을 잊고 지냈다.

그리고 집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첫째 아들놈이 아장아장 걸을 때쯤, 여름휴가에 그 산을 찾았다. 집사람의 본향이 지리산 칠선계곡 옆 광안리점이고, 그곳에 본향의 옛집이 남아 있는 터라, 집사람과 아들은 그 옛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나는 일반적인 등산로가 없는 광안리점에서 하봉, 중봉 쪽으로 오르는 코스로 천왕봉을 만나고 칠선계곡 쪽으로 하산하였다. 참으로 오랜만에 오랜 연인과의 조우였던 셈이다. 참 오랜만에 만난 연인이지만, 그 산은 늘 변함없이 나를 품어 주고 버팀목이 되는 듯했다.

93년 여름, 나는 새로운 도전을 감행했다. 여름휴가를 맞아 지리산을 찾기로 했는데, 세 살짜리 아들과 함께 천왕봉을 오를 계획을 세웠다. 나름 지원군이 있어 감히 실행에 옮길 수 있었는데, 조카와 처조카와 함께 산행에 동행하기로 하여 텐트와 각종 등산용 장비와 부식들을 집사람, 조카, 처조카 세 사람의 배낭에 분산하고, 나는  아기 등산 캐리어에 아들을 태우고, 백무동-장터목-천왕봉-장터목-세석-한신계곡-백무동으로 코스를 잡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렇게 우리 일행은 주변 사람들의 탄사를 받으면서 천왕봉에서의 일출을 맞았다. 천왕봉 일출은 삼대가 덕을 쌓아야만 볼 수가 있다는 우스개 소리도 있는 만큼, 지리산의 변화무상한 날씨 탓에 일출을 보기가 힘들다. 그렇게 내 마음속의 연인은 오랜만에 찾아온, 나뿐 아닌 나의 식구들을 포근하게 보듬어 주었다. 그때의 산행기를 월간 ‘산’지의 독자 투고란에 올려 내 글이 세상에 공개되는 기쁨을 맛보기도 했다.

그때의 산행이 지리산과의 마지막 조우였던 것 같다. 그리고 삶에 얽매이고, 새로운 삶을 찾아 이민을 하면서 내 오랜 연인과는 만날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래, 다시금 언젠가는 젊은 날의 나를 품어주고 버팀목이 되었던 옛 연인과의 조우를 해보고 싶다. ‘잘 지냈제’ ‘ 나도 잘 있었어’ ‘ 보고 싶었어’ 그런 단어들을 넋두리로 읊어면서 그 산을 찾고 싶다.

마지막 지리산을 찾았을때 찍어둔 풍경 사진을 보고 옛날을 회상하며 그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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