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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학거사 May 15. 2024

생명을 담보로 하는...

[현실 타파_11]

진짜 무서움에 갇혀 보셨거나, 진정으로 손발이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두려움에 떨어 보신 적 있으신가요? 일반적으로 두려움은 스스로 만들어낸 허상이며, 두려운 마음 그 자체로 그 두려움을 완전히 없애는 것은 어렵다고들 하며 두려움은 그저 인간의 한 “감정”일 뿐이라 합니다. 굳이 두려움의 정체를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잘 아실 것으로 세상사의 인간관계적인 면과 더불어 물질적인 면 둘 다에 해당하는 상황임이 될 것입니다. 그에 대한 기본적 정의는 “어떤 현상이나 경험을 예상했을 때 가지게 되는 불안한 감정”으로 영어적 풀이는 사실처럼 보이는 잘못된 근거(False Evidence Appearing Real)에서 보면 사실이 아닌데 사실처럼 보이게 하는 거짓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그 두려움이 엄습해 옴을 스카이다이빙협회 일반인 2기로 육군 특수전사령부 예하 특수전교육단과 함께 훈련하고 처음으로 군용 헬기에 올라타 그와 같은 순간을 경험했던 적이 있습니다. 모든 상황은 훈련했으므로 헬기타고 올라가고 조금 후에는 낙하지점에 도착하면 낙하하여야 하는 그런 상황으로 전개되었지만, 두려움은 한순간에 확! 몰려오며.. 기본적 정의에 해당하는 방법을 통해 생각을 통하여 온다는 것을 그 때 제대로 알게 되었습니다. https://blog.naver.com/helpforus/222080746228     


3,000 feet 상공에서 뛰어내려야 되는데, 1,000 feet 정도 올라가면서부터 그 상황(두려움)으로 진입하게 되었는데, 주위에는 몇천 번 이상 낙하 경험을 한 베테랑들이 포진되어 앉아 있으니.. 쪽 팔려 어찌할 줄을 모르는 상태를 이루었습니다. 베테랑들은 수많은 경험으로 편안히 휴식을 취하는데 저 자신만 어쩔 줄 몰라서는 아니 되고, 제가 두려워서 못하겠다고 하는 순간 저는 DZ(착지장소)에 가면 무조건 짐을 싸서 바로 퇴소 해야만 하므로 두려움에서 벗어나자 하여야만 했습니다. 상황적으로 표현을 해보자면, 지금까지는 그냥 헬기 타며 뛴다는 생각의 밝고 맑음이 존재 했었는데.. 순간 저의 한쪽으로부터 시커먼 느낌이 저를 덮는데 엄습이란 표현이 적절할 것 같고 그대로 휩싸여 버렸습니다. 왜? 내가 이것을 하여야 하지??? 만일, 실수라도 일어나면 난 이 세상에 없을 텐데.. 라는 생각으로 제 마음 속은 말 못할 뻑뻑함과 싫은데 어찌할 수 없는 상태로의 충돌로 조금 있으면 뛰어야 하는데.. 하며 주위를 의식치 않고 소리를 질러 버렸습니다. 하기사 헬기 굉음과 진동으로 그리 크게 들리지는 않겠지만, 서로가 서로를 알기 때문이라도 모르는 척해주므로 저는 손을 들고 야~ 아!!! 난 할 수 있어.. 하는 순간 희한하게도 저의 그 어둠이 좌에서 우로 사르르 없어지는 것이였습니다.      


그것도 잠시.. 2,000 feet 올라가니.. 똑같은 현상이 나타났지만, 좀 전에 경험해 보았기 때문에 자신 있게 좁은 공간이지만 소리를 질러대니, 마스터 공수부대 대장님이 "Are You Reay?" 하심에 자신 있게 “Yes" 하고 뛰어 내렸습니다. 그런데.. 헬기에서 이탈하여 낙하산이 펴지는 그 순간 하늘에 떠 있는 짧은 시간.. 하늘 상공으로 언젠가 제가 본 영상이 하늘에 펼쳐지는 것이 보였습니다. 예전이라 함은 대입재수하며 한여름 간현 유원지 유격훈련장 옆에 텐트를 치고 야영하면서, 부식거리 서리하러 간다며.. 등 가방을 끈으로 꽉 묶고 강 건너다 가방에 물이 차며 깊이 3m 이상 되는 강 밑으로 빨려들어 갔던 때입니다. 가방에 물이 가득 차니 무거워 물속으로 내려가면 강바닥을 차고 올라와 숨을 한 번 쉬고, 지금 보니 손발 묶고 깊은 물속에서 특수부대 서바이벌 훈련하는 상황에서 물속에서 하늘로 뻗어 펼쳐지는 영상을 보았던 것입니다. 저는 그 당시 불교도였으므로 그게 뭔지는 몰랐지만, 하여튼 잘못된 것들로만 편집된 영상으로 그게 죄인지도 몰랐는데, 이번에는 강바닥이 아닌 하늘에서 똑같이 본 것입니다. 


각설하고, 우리들의 삶에 우연이라는 것은 존재치 않음과 모든 것에 우연함이 없음을 저는 철들기 전 또는 젊었을 때 예수를 몰랐지만, 죽음을 목전에 앞둔 상황에서 제대로 경험케 되었는데, 히브리서 9장 27절로 주신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오,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는 저를 묶어버리기 까지 하였습니다. 제가 보건데, 대부분의 목회자를 포함하는 믿는 자들이 크게 착각하는 부분은 이 세상에서 잘되는 것이 예수님께 영광 돌리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부분으로 이는 수많은 착각과 오류를 발생시키는 구심점으로 자리매김 되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왜? 라는 근본적 측면에서 다른 종교와 이단은 제끼고, 개혁이든 뭐든 순수 기독교적 입장에서 믿음은 “자신의 죽음(생명)”을 담보로 해야 한다는 것으로.. 욥의 생명에는 손대지 말라 하심과 사탄마귀의 닉네임은 “사망의 세력과 주인”임을 통하여 보면, 그리스도를 믿다함은 학문이나 철학과 논리가 아님이 여실히 들어 남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니라구요? 그럼 먼저 지금 현재 자신의 믿음은 주님이 보시기에 너무 좋아하시며, 어떠한 부분인지? 내세울 만한 것들인지? 말씀하실 수 있고.. 진정 자신에게 하나뿐인 죽음이라는 명제를 앞에 놓고 믿어가야 한다는 것을 생각해보신적이 있으신가? 되묻고 싶을 따름입니다.   

   

없으시다구요? 솔직해서 너무 좋습니다만, 당면한 자신의 삶을 해결하는 것이 먼저라기보다는 이제라도 자신의 생명(죽음)을 기반으로 하는 믿음의 증거를 남기셔야 됨에는 하나님 안에서 꿈을 꾸며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 되길 소망하지만 다가올 하나님의 영광이 지극히 우리들 앞에 다가와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바로 호명하여 너는 내 것이라 하시며 부르실 자들은 성령 충만한 자들로 하나님의 임재 아래 기름부음을 받고 숨겨져 자신을 죽여가며 순종으로 불태워 정결해지고 성숙해진 자들을 의미하며, 그들은 아버지가 원하시는 일이 되어지도록 하기 위하여 다음단계를 준비하는 신뢰받는 자들이 함께 모여 나타남을 이룰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풍토병과 언제 어느 때 무슨 일이 일어날 지도 모를 그곳에 자원한 자들과 보내는 것도 선교라 분위기를 이루는 곳에서의 믿음에 성적을 매기기보다는 공적이라는 것이 따르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해봄에는 그 공적서에는 분명 죽음을 불사하며와 눈물로 나보다 더 가족을 사랑치 아니한 이라는 문구가 명백히 박혀있을 것입니다. 우리교회 좋은 교회 내 믿음.. 죽이는 믿음해보지만, 요한계시록 일곱 교회 중에 “나는 네 행위를 알고 있다. 네가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사실 죽은 거나 다름이 없다.” 하십니다.     


죽은 거라는 표현이 나오므로 자신의 믿음에 죽음이 전제된 적이 있었는지.. 죽는 것처럼 믿었는지를 아님 창자가 끊어지듯 한 영혼을 위하여 진정 울며 기도했는지? 한 영혼이 불쌍하여 자식 잃은 사슴처럼 소리쳐 보았는지 돌아봐야 할 때는 분명 지났습니다. 이제는 숨겨논 자들을 부르시어 자신의 영광을 준비해 가시는 때이므로 각 개별적 믿는 자들은 하늘의 음성과 소리에 민감성을 지녀야 할 것으로 “공의와 사랑” 양면적인 부분을 생각하시며 믿음생활 하셔야 할 것입니다. Ɵ께서 직접 역사하심의 때는 주님이 보내주신 성령의 역사하심과는 전혀 다르며, Ɵ 음성을 한 번이라도 직접 들어 보신분이라면 제가 이야기하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잘 아실 텐데.. 천둥과 우레와 같다고 하지만, 그 자체에서 느끼는 그 필은 무자비정도를 넘어 그냥 아니면 아니고 스스로 없어짐이 맞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겁을 드리고자 하는 것은 절대 아니고, 공의의 하나님이라 는 것이 맞으니.. 스리슬적 편하게 믿었던 것 자체는 내세움조차도 할 수 없음을 빨리 눈치 까셔야 한다는 것으로.. 사탄마귀가 두려움과 걱정을 주면 제가 경험한 것처럼 소리를 지르시거나, 환경을 바꾸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위에 잘 믿는 자들을 잘 챙겨 주의 깊게 보시며, 떠나라는 이야기는 못하겠지만 교회 교회하시지 말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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