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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학거사 May 14. 2024

아~ 옛날이여..

[현실 타파_10]

KBS현대사 아카이브 영상순례(2024.05.09.) 제목 : 100년 전, 전국에서 천여 명이 평양으로 몰려든 이유로 KBS현대사 아카이브팀이 미국 장로교 역사협회와 캐나다 연합교회 아카이브, 그리고 선교사 헨리 브루엔 가족에게 수집, 최초 공개하는 영상에는 일제강점기, 나라를 빼앗긴 한국인의 삶이 서양 선교사의 눈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방인이자 이웃의 따뜻한 시선으로 기록한 생생한 영상을 통해 당시 조선을 들여다본다. 기독교 불모지였던 평양을 ‘동양의 예루살렘’으로 일군 건, 미국에서 온 선교사 ‘모펫’이었다. 그러나 평양의 모습을 기록한 영상에서 특히 눈여겨 볼만한 것은 성경공부 모임인 사경회. 전국에서 1,000명 이상의 여성 교인들이 몰려들었는데, 12일이나 교회에 머물러야 하기에 본인은 물론 아이들 먹을 것, 입을 것까지 싸서 머리에 이고 걷고 또 걸어온다. 사경회에서, 한글과 성경이 보급과 전파에 서로 힘을 싣게 된다. 옛날사진. 옛날교회모습 먼옛날에 여기교회를 최초를 세우고 선교사들을 파송하고 시작된 교회들 옛날에도 신앙생활하고. 교회예배를 생각해보면 순수하고 아름다운 그 자체인제 너무 세속적이고. 세상적인 것들에 변해버린.. 우리 교회들의 아~ 옛날이여..


                  1973년 5.16 광장에서 열린 빌리 그레이엄 전도대회에 운집한 110만명의 군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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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qYWkuqjSnU4

 

지금 나오는 교회가 장대현 교회인데요. 이게 평양의 모교회죠. 가장 장로교에서는 가장 먼저 생긴 교회인데 지금 해벽 사이에 나무로 기둥을 댔죠. 그게 이제 장대인 교회의 특징입니다. 이 장대교 뒷들 뒤에서 보는 화면 같습니다. 근데 그 교회를 중심으로 학교도 운영하고 병원도 운영하고 이런 일을 했죠. 특히 서경에는 쉽게 얘기하면 경전을 공부하는 모임이죠. 성경 공부를 주도했던 교회가 평의에 의해서 장대 교회였습니다. 장대인 교회에서 사경회가 열린 여러 지역에서 사경회에 참석하러 심지어는 목포에서 평양을 가기도 하고 또 환경도에서 가기도 하고 평양 사람뿐만 아니라 길선주 목사입니다. 한국교회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한국인 목회자죠. 길선주 목사님은 1907년에 그 장평양 장로교회 모교인 장대교회 담임 목사가 됐죠.근데 1907년 1월달에 그 교회에서 대부흥 운동이라는 데 탄국인들이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발견하고 회개하고 그런 일이 일어났는데 그 운동을 주도했던 분입니다. 

그래서 1907년 대부 운동이 끝나고 나서 장대교회 담임 목사가 되죠. 그래서 사망할 때까지 1930대 중반까지 한국교회의 사경에 그 바이브 스터디 또 부흥의 얘를 전국을 다니면서 이끌었던 그런 인물입니다. 그분의 에너지, 그분의 활동이 교회 안에만 있었던 건 아니죠. 길선주 목사도 3.1운동 운동 때 민족 대표로 감옥에 갔다 나왔죠. 민족애를 가진 부흥사였죠. 마펫 선교사죠. 우리말 이름으로 마포 삼열이라고 불렀죠. 마펫 선교사는 뭐 우리나라에 44년을 있었습니다. 이렇게 같이 이렇게 서서 동영상으로 말씀 나누는 걸 처음 봤어요. 그전에 사진이 있는데 저분들이 장대현교회를 중심으로 평양에 그리고 북한 지역에 기독교를 전파했다는 점에서 이 두 분의 두 분이 굉장히 중요한 인물이죠. 이거는 서문밖 교회입니다. 소문 받기에 우리가 사진 보면 금방 알 수가 있는데 대체로 저기서 큰 행사를 많이 했으니까 사진을 찍을 때 저런 식으로 찍었죠. 지금 이렇게 1층에서 위로 올라가서 쭉 옆에 계단에 서고 위에 서면서 저런 사진을 좀 많이 찍었는데 이 교회가 당시 평양에서는 제일 컸어요. 

그래서 장로교에 중요한 부분이 있을 때는 전부 사본 바퀴에서 모였습니다. 19 1934년이 되면 장로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 50주년이 되는데 그때 이제 총회를 저 회에서 했죠. 1934년에 여기가 저 토마스 기념교회죠. 대동강변에 있는 토마스 기념교회죠. 저기 교회에 보면 금방 알 수 있죠. 이렇게 지금 d자 형태로 돼 있는 교회죠. 1866년에 중국에서 활동하던 토마스선교사가 우리나라의 기독교를 전학했다고 하죠. 대동강을 따라서 평양에 오는데 당시 조선 정부의 허락을 받지 않았으니까 조선 관군이 물리쳤죠. 나가라고 해도 안 나가니까 공격을 해서 그 배에 탔던 토마스 선교사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이제 사망하게 되죠. 1932년에 토마스 목사가 죽었던 그 대동강변에 세운 교회는 토마스 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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