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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학거사 May 13. 2024

시니어 클럽

[현실 타파_09]

요즘 제가 제 주위부터 제대로 정리해 나감에 있어 하는 일중의 하나는 제가 사는 아파트 주민들의 사고를 일깨워 스스로들이 자생력 있게 일을 처리해나가도록 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는 경로당이 거의 폐쇄 수준과 일인 종신제와 같이 운영되므로 이를 바로 잡아내고자, 66세에 경로당 회원으로 가입했더니.. 자격이 안 된다는 것이 아니라, 막 경로증 받자마자 경로당으로 뛰어오는 경우는 국내 최초라 합니다. 하여튼 요즘 스마트 경로당이 대세인데.. 빨리 정상화 하여 재미있고 세라젬 온열 찜질하며, 맛있는 식사도 하실 수 있게 만들어 들이고자 오늘 메인 어르신들과 식사를 같이 하였습니다. 천천히 하나씩 바로 잡아 갈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좋은 곳이여~ 하실 수 있도록 시간이 나는 대로 최선을 다하도록 할 것이며, 두 번째는 부녀회건으로 아파트 단지는 딱 두 동인데, 큰 평수라 먹고 살만하고 등 따시니 별로 자치적 운영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아 오늘도 여 동대표님께 부녀회 만드는 것 다 해줄 터이니 생각해 보시라고 수익모델도 좋아 재미있게 하실 수 있는데.. 왜? 안하시느냐 운을 띄어 놓았으니 답이 올 것 같습니다. 아파트 공동운영을 위해서는 관리사무소/동대표 회의/노인회/부녀회가 삼바 추듯 빙글 빙글 박자가 맞아야 하는데, 하여튼 시니어 클럽이 잘 운영 될 수 있도록 힘 닫는 대로 노력할 예정인데.. 아이그 노인분들이 교회는 안가고 시니어클럽이 좋으니 와서 일요일에도 죽 때릴까봐? 시작도 안했는데.. 걱정부터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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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zFN3RDKYcoA

 

제가 예전 교회에서 장로님들이 요즘 청년들 왜 그렇게 인사 안 하냐고 청년부 회장이라고 저한테 얘기하실 때마다 마음속으로 하던 말이 있습니다. 먼저 인사하시면 되잖아요. 회사에서도 그런 상사들은 외면 받습니다. 영국 교회 부흥의 역사는 엄청납니다. 14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평양 대부분 같은 일이 15번 정도 일어났습니다. 존 락스, 조지 필드, 요한 웨슬리 찰스스펄전, 마틴 로이드 존스 등등 교회 다니면서 설교에서 한 번쯤 들어봤을 수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세대를 이어가며 바톤 터치를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고 교회는 흥왕하였습니다. 1930년대와 40년대에 영국 교회의 교인 수는 1천만 명이 넘었습니다. 당시 인구는 5천만이 조금 안 됐을 것으로 봅니다. 인구의 20%가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교회는 5만 5천 개에 달했고, 목사도 4만 5천 명에 달했습니다. 어디서 많이 듣던 얘기 같지 지금은 어떨까요? 그 많던 교회들이 문을 닫고 팔려서 술집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다들 들어보셨을 겁니다. 교회는 4만 개가 줄어 1만 5천 개 정도만 남았습니다.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은 20%에서 1979년에 12%, 2005년에 6%, 2022년 지금은 3% 정도로 봅니다. 그런데 출석교인 중에서도 노년층의 비율이 압도적입니다. 2005년 기준 영국 전체 인구의 16%가 65세 이상이었는데요. 교회 안에서는 두 배가 많았습니다. 교인 중에 29%가 65세 이상 노인 인구였습니다. 영국인 전체에서는 3%, 그러니까 100명 중에 3명이 교회에 나간다고 아까 말씀드렸지요. 청소년층에서는 어떨까요? 천 명 중에 3명입니다. 이것도 어디서 많이 듣던 얘기 같네요. 영국 교회의 현실은 이미 한국교회의 현실이 되어 있습니다. 

 

청년부와 주일 학교가 아예 없는 교회가 대부분이지 한국교회에도 이런저런 통계가 있는데요. 10대에서 20대의 복음화율을 3%로 봅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원래 의사였습니다. 1927년 30쯤에 목사가 되어 40년 동안 사역한 후 1968년에 은퇴합니다. 그가 사역하던 40여 년이 영국 교회의 최전성기입니다. 1930년대부터 1960년대 내내 영국 교회의 교인 수는 1천만 명에 달합니다. 그런데 1960년대에서 70년대로 넘어가며 100만 명쯤 줄어들고, 70년대에서 80년대로 넘어가면서는 150만 명 정도 줄어듭니다. 급격하게 세속화되는 영국 사회 속에서 교회의 쇠퇴가 시작된 것입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은퇴 후 이런 영국 교회의 현실을 보며 저술 활동에 힘썼는데요. 그가 남긴 에베소서 강해짐에 마치 오늘날 한국교회에 전하는 메시지 같은 부분이 있었습니다. 조금 읽어보겠습니다. 우리는 무기력하고 둔하다는 인상을 줄 뿐입니다.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생명력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람들은 여러분이 오늘날에는 젊은이들은 교회에 나오게 할 수 없다고들 말합니다. 왜냐하면, 젊은이들에게는 교회가 재미없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 다음 부분이 저는 신박하게 느껴졌습니다. 교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고 감동적인 곳이어야만 합니다. 만일 교회가 그렇지 못하다면 우리는 다소 간에 성령을 소멸하고 있는 것입니다. 청년들이 청소년들이 왜 교회를 떠날까요? 혹은 교회를 다니기는 하는데 왜 마지못해 다니고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순간 교회를 떠날까요? 교회에서 재미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주는 재미는 무엇일까요? 넷플릭스나 유튜브, 술과 마약이 줄 수 있는 재미는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이 모여 공동체를 이루는 재미, 믿지 않는 사람과는 나눌 수 없는 하나님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재미 같이 예배하고 기도하고 교제하는 게 즐거운 그런 재미일 것입니다. 더군다나 하루가 다르게 인간 소외가 일어나고 있는 오늘날 한국 사회 같은 현실에서는 더욱더 그렇겠지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이런 재미를 회복할 수 있을까요? 저는 뻔한 말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물론 기도해야겠지만 그것은 지금 현실에서 뻔한 말일 뿐입니다. 뻔하지 않고 현실적인 액션이 뭐가 있을까요? 첫 번째는 투자입니다. 한국에 온 선교사들은 학교와 병원을 지었습니다. 미래를 내다보고 사람에 투자한 것입니다. 선교적 교회니 뭐니 떠들어대도 재정 집행 어떻게 하는지가 진실입니다. 선교에는 돈을 쓰지 않고 교인들 헌금 모아 건물 크게 지어봤자 다음 세대 없으면 그 건물 대출 이자 못 갚고 이단에 넘어갑니다. 주일학교와 청년부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다음 세대가 중요하다면 교회 재정에서 몇 퍼센트나 해당 사역을 위해 지출되는지, 교회의 헌신과 봉사와 직분과 수고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살펴보고 비율을 조정해야 합니다. 제가 아는 한 교회는 100명도 안 모입니다. 중고등부는 합쳐서 5명 정도, 유초소 주일 학교는 합쳐서 6명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교회 교역자가 3명인데 중고등부 담당으로 1명, 주일학교 담당으로 1명을 세웠습니다. 건물도 없는 교회입니다. 이런 게 투자입니다. 교회에 왔는데 아이들을 돌봐줄 수 없고 신앙 교육을 시켜줄 수 없다면 아이들의 부모님인 30대, 40대가 교회에 있을 수 없을, 그러니까 대형 교회로 쏠림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기도 합니다. 


미자립 정도가 심한 교회들도 있겠지요. 그런 교회는 어떻게 조절할 재정의 여지가 하나도 없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는 돈 없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목회 데이터 연구소 지용근 대표님이 아크 연구소의 설문 결과를 정리한 바에 따르면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첫 번째 이유는 청년부 담당 목사의 권위주의적 태도였습니다. 두 번째는 목회자의 헌신 강요였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다녔던 목요회를 떠난 경험을 돌이켜볼 때 100% 동의할 수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교회 청년부 생활을 10여 년 하며 여러 명의 교역자를 겪으며 점점 깨달아지는 것이 있었습니다. 왜 저 사람들은 월급 받고 일하면서 우리를 섬긴다고 하면서 실상은 굴림하고 지배하려 드는 걸까 왜 이렇게 교회 일을 많이 만들고 헌신하라고 하는 걸까 교회라는 체제가 그리고 이 안에 있는 행사들이 돌아가게 하는 게 더 중요한 걸까 아니면 이 안에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더 중요한 걸까? 왜 나는 회사 다니는 것만도 벅찬데 주말에는 주식회사 예수라는 교회를 가장한 회사를 하나 더 다니고 있는 것처럼 피곤한 이것은 청년부 담당 목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라는 곳이 어느 순간 너무나도 회사와 닮아 있다는 깨달음으로 이어졌습니다. 아니라고 말하겠지만 교회는 사장, 부장, 차장, 대리, 사원으로 이어지는 회사와 너무 닮은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수직성입니다. 소위 말하는 밀레니얼 세대 그러니까 자라면서 인터넷 문화를 접한 세대의 특징은 수평성입니다. 온라인에서 게임으로 만나면 중학생이나 40대, 회사원, 아저씨나 위아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 세대가 나이를 먹어 사회에 진출하자 곳곳에서 권위주의가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회사에서도 그렇습니다. 청년들은 그런 곳에 가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의 본질은 어떨까요? 순종해라 이 한마디로 정리되는 수직성이 교회의 본질에 가까운 걸까요? 로마 제국은 철저한 수직성을 대표하는 피라미드적 사회였습니다. 아시다시피 교인들은 박해를 받습니다. 기독교 신자인 귀족 부인 퍼페투와 그녀의 여종 펠리시스타는 함께 처형되기 위해 원형 경기장에 들어섰습니다. 귀족 부인은 자신의 여종에게 달려드는 들소 앞에 나란히 섰다고 합니다. 교회 안에서는 귀족과 노예가 없었습니다. 초기 교회와 인내의 발효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교회 안에서는 직분이 높아질수록 낮아져야 합니다. 그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수평성이 기본인 청년 세대는 직장에서도 윗사람이랍시고 대우받으려는 사람들의 넌덜머리를 대며 대기업도 공무원도 때려치는 세대입니다. 그런데 그런 모습을 교회에서도 보고 겪으며 스트레스를 받고 싶어 할까요? 교회가 교회 됨을 회복하는 것이 대체 뭘까요? 예수님 말씀대로 크고 작은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제가 예전 교회에서 장로님들이 요즘 청년들 왜 그렇게 인사 안 하냐고 청년부 회장이라고 저한테 얘기하실 때마다 마음속으로 하던 말이 있습니다. 먼저 인사하시면 되잖아요. 회사에서도 그런 상사들은 외면 받습니다. 교회 장로님들이 왜 그러시는 건지 참 이해가 안 갑니다. 섬김 받길 원하지 마시고 먼저 다가가고 인사해 주시고 섬겨주셔야 합니다. 거기에서 청년들은 피라미드가 뒤집히는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고 생명력을 느끼고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야지 한국교회에 미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노인들만 가득한 교회가 되지 않으려면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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