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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재숙 Monica Shim Dec 23. 2023

불의 계곡(Valley of fire)을 담다

출사 Day1. 11.13. 2023

                                                                        

   이열치열이라 했던가. 사진에 대한 열정으로 불타는 KOAM사진동아리 회원들이 불의 계곡을 담으러 나섰다. 해지기 전 목표지에 다다르기 위해 쉼 없이 달려야 했다. 짧은 겨울해가 가는 길을 재촉했다. 모하비 사막의 황량함을 지나고 라스 베가스의 화려함을 거쳐갔다.


 메마른 덤불만이 뒹구는 사막을 지루하게 달릴 때는 이런 곳에 다른 지형이 숨어있으리란 기대조차 어려웠다. 그러나 Valley of fire State Park 입구에 다다르자 주변은 전혀 다른 경치로 바뀌었다.  숨어있던 게릴라들이 불시에 나타나듯 거대한 붉은 바위의 군상(群像)들이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불의 계곡(Valley of fire State Park)은 라스베가스에서 50마일 정도 떨어진 네바다 주립공원이다. 1934년에서 1935년에 네바다주 최초의 주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4만 에이커의 방대한 땅에 1억 5천만 년 전 쥐라기 시대에 형성된 붉은 아즈텍 사암 위로 모래언덕이 덮이며 바위로 모래가 스며들어 굳어졌다. 그 후 지각운동으로 땅이 갈라지며 산과 계곡이 형성되고 오랜 침식작용으로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붉은색과 분홍, 흰색의 사암에 퇴적과 침식이 반복되며 기이한 모습의 바위와 문양이 생겨났다. 붉은 사암에 햇볕이 반사되면 마치 바위가 불타는 것 같다 하여 불의 계곡이라 이름 지어졌다. 이름처럼 여름엔 섭씨 37-48도를 넘나 드는 불지옥이다.  


 만천 년 전 이곳에 인류가 처음 발을 디뎠다. 2500년 전의 바스켓메이커 문명에 의해 그려진 암각화가 발견되었고 그 후 초기 푸에블로 문명이 자리 잡았다. 이 일대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성지처럼 여겨지던 곳이었다. 물이 없는 지역이니 사람이 살기에는 적합한 곳이 아니었다. 1912년에 솔트레익시와 로스앤젤레스를 잇는 길이 건설되면서 불의 계곡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입구에서 받은 안내 지도에는 코끼리바위, 벌집바위, 세븐시스터즈, 불의 파도, 아치바위 등 각종 이름이 붙여진 바위들이 주소지의 문패처럼 표시되어 있었다. 공원을 들어서자 지옥 불구덩이에서 용틀임 치다 굳어버린 듯한 바위 산들이 사방으로 나타났다. 소돔을 빠져나오다 뒤를 돌아보는 바람에 소금 기둥이 되어버린 롯의 아내처럼, 온갖 생명체들이 쫓기듯 달아나다 일시에 뒤돌아 보기라도 한 것일까. 온갖 동물의 모습이 굳어 바위기둥이 되어있었다.


 신이 만물을 창조하기 위해 이곳에서 연습 작업이라도 한 것처럼 거대한 스튜디오에는 미완성의 작품들이 사방에 널려 있다. 이 광활한 계곡은 마치 미래의 노아의 방주 같기도 했다. 또 다른 기후변화와 지각변동으로 생명체가 다시 멸종될 것을 대비해 모든 살아있는 것을 복제로 떠 이곳에 들여놓은 건 아닐까. DNA들의 거대한 저장소 일지도 모른다.


 첫날 촬영 대상은 이곳의 랜드마크인 Fire Wave Rock이었다. Fire Wave 방향으로 접어들자 주변 풍경은 낯선 행성으로 돌변했다. 붉은 사암들의 행렬이 사열하는 군대처럼 줄을 잇고, 언덕 아래로 펼쳐지는 날 것 그대로의 경치가 태초의 지구의 모습을 짐작케 했다. 지구는 알을 품듯 또 다른 행성을 품고 있었다.

 

 트레일 입구엔 거대한 붉은 바위 기둥들이 수문장 역할을 하고 있다. Fire Wave로 향한 길 곳곳에는 이무기들이 서로 부여안고 뒤틀다 똬리를 틀고 앉은 듯 기묘한 형태의 바위 산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었다. 잘게 부서진 돌조각과 붉은 바위로 가득한 길은 화성을 연상케 했다. 무거운 카메라 가방과 삼각대를 둘러메고 가는 회원들의 표정이 화성 탐사단이라도 된 듯 진지하다. 트레일은 울퉁불퉁한 바위 언덕을 넘고 잔돌이 흩어진 길을 걸어야 해서 등산화나 탄탄한 신발을 신지 않고는 발을 접질리기 쉬웠다.


 바위면은 지구의 무수한 지각변동의 역사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빙하기를 지나며 해빙기로 들어설 때 빙하가 녹으며 거대한 홍수가 지구를 휩쓸었다 한다. 이를 증명하듯 큰 물이 바위를 깊이 할퀴고 간 자욱과 물이 소용돌이친 자리,  물살에 밀려온 모래가 겹겹이 쌓이다 굳어 돌이 되어 있었고 물가에서나 볼 수 있는 몽돌들이 주위에 흩어져 있다.  풍화작용으로 깎이고 떨어져 나간 바위엔 억겁의 시간의 흔적이 문신처럼 새겨져 있다.  바위는 살아 숨 쉬고 있기라도 한 듯 허파 문양이 있는가 하면 고목처럼 사방으로 뿌리를 뻗고 있었다.


 20여분 걸어 들어가니 회오리로 소용돌이치며 하늘로 솟은 Fire Wave rock을 만날 수 있었다. 붉고 희고 노란 띠를 두르고 몸을 꼬며 하늘로 치솟은 바위는 승천하는 용과 같았다. 내리쬐는 태양 빛을 고스란히 받으며 영겁(永劫) 인고의 시간을 보낸 이무기가 용이 되려 하고 있다. 그 순간을 담으려 카메라 세례가 한동안 쏟아졌다.


 이내 Fire wave rock은 지는 해의 햇살을 받아 붉게 달아오르며 불을 머금었다. 일몰과 함께 용이 뿜어낸 불길은 하늘로 옮겨 붙으며 천지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구름은 불춤을 추며 용의 승천을 축하했다.


  짧은 겨울 해는 화려한 축하연을 베풀곤 서둘러 퇴장했다. 파이어 웨이브를 나오며 아쉬움에 뒤돌아보니 세상은 불바다가 되어 있었다. 롯의 아내처럼 우리는 한동안 소금기둥이 된 채 타오르는 불의 계곡에 마음을 앗겼다. 노을을 머금은 물개바위, 거북바위, 코끼리 바위들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어둠이 내리면 이 수많은 생명체들이 깨어나 한판 신명나게 잔치판을 벌이지 않을까. 그들만의 잔치에 방해꾼이 되지 않으려 서둘러 버스에 올랐다.


          

 *위 대문사진-KOAM 사진클럽 이은혜 작가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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