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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재숙 Monica Shim Feb 05. 2023

꽃 찾아 사막으로 떠난 세 여인

Anza Borego - Ocotillo Wells에서

  "안자 보레고에 꽃이 폈다네. 사진 찍으러 가지 않을래?"

 선배의 말에 두말 않고 여인은 카메라 가방을 둘러메고 나섰다. 57번 프리웨이에 들어서자 멀리 눈산이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나타났다. 그 앞으로 초록의 산들이 들러리를 서고 있다. 겨울과 봄이 함께 어우러진다. 연중 맑은 햇살 덕에 반팔 입고 스키를 탈 수도 있는 곳이 이곳 캘리포니아다. 올 겨울은 비가 많이 내려 사막에 만발할 꽃이 기대된다.


 살림 경력이 두둑한 세 아줌마가 움직이니 간식거리가 풍성하다. 아줌마 셋이 모이면 굶어 죽지 않는단 말이 맞다.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된 듯 차 앞뒤 문짝에는 물병이 쌍권총 차듯 혀있다.


 선배는 오지를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는다. 애리조나 어느 구석 듣도 보도 못한 샌드듄을 찾아 사진을 찍고, 불빛하나 없는 사막에서 은하수를 담고, 굽이굽이 산을 돌아 숨어있는 계곡을 찾아낸다.  마음에 드는 사진을 발견하면 그곳을 기어이 찾아 뷰파인더에 담는다. 그녀의 집엔 거대한 자연들이 액자로 걸려있다. 모두 그녀의 작품이다.  어느 날 보여준 그녀의 컴퓨터 외장 하드에는 지구 곳곳의 풍경이 담겨있었다. 여배우가 가장 빛나는 순간을 담아 자신의 화보집을 내듯 지구 구석구석의 모습이 절정의 순간에 그녀의 카메라에 포착되어 있었다.


 풍경 사진작가는 떠돌이 기질의 유목민 DNA와 새로운 곳을 찾아 도전하는 끈질긴 탐험가의 정신, 아름다움을 갈구하는 예술가의 감성까지 지녀야 할 것이다. 차가 산길을 지나자 선배는 말한다. "저 산 뒤를 가보고 싶어. 뭐가 있는지 궁금해." 못 말리는 호기심도 사진작가에게 필수항목이다.


 오늘의 목적지는 Anza Borego State Park의 남동쪽 Ocotillo Wells다. 드넓은 사막언저리 어딘가에 흰꽃이 만발한 사진을 친구가 찍어 보냈다 한다. 근성 있는 작가가 기회를 놓칠 리 없다. 당장 출발이다. 꽃 몇 포기를 찍으러 왕복 일곱 시간을 넘게 운전해 간다면 이해가 되려나. 이해하기 힘든 일이지만 그녀는 남의 이해를 구걸하지 않는다. 임무에 충실한 군인처럼 묵묵히 카메라에 담을 풍경만을 그리며 떠난다.


 나이 들수록 바쁘다고 그녀는 말한다. 살아온 날보다 살 날이 더 많지 않으니 사진으로 담고 싶은 곳이 아직도 많은데 시간이 부족하단다. 사진에 빠져 살면 허투루 보낼 시간이 없다. 새로운 소재를 찾아 떠나야 하고 카메라를 공부하고 사진 작품을 자주 보며 감각을 키워야 하니 매일이 바쁘다.  작곡가나 작가가 음표와 글자들을 조합해 작품을 만들어내듯 똑같이 주어진 하루라도  하고픈 일을 짜깁기해  멋진 인생이란 작품을 연출한다는 점에서 그는 진정 예술가다.


 10번 프리웨이를 지나 86번으로 접어드니 초록의 산들은 물러나고 황량한 사막이 펼쳐진다. 인디언 보호구역이란 사인이 길가에 보인다. 인디언 보호구역은 왜 항상 불모지에 있는 걸까. 보호한다면서. 메마른 들판으로 말라빠진 풀들이 바람에 흩날린다. 아메리카 원주민은 저 들풀처럼 말라 흩어졌다. 그러니 보호한다는 말은 허망할 뿐이다.


 사막을 한참 달리니 거대한 Salton Sea가 나타났다. 호수인데 워낙 넓고 염분이 많아 바다라 불렸다. 호 너머 도시는  때 사막의 오아시스 역할을 하며 휴양지로 붐볐었다. 어느 날부터 해수면보다 낮은 호수의 물은 흐르지 않고 갇혀 버렸다. 갇힌 호수는 썩어갔고 물고기도 사람들도 떠났다.

 

 흐르지 않으면 비워내지 않으면 물이나 사람이나 썩어 악취를 내게 마련이다. 그 주위에 람이 모일리가 없다. 호숫가에 죽은 물고기의 시체가 썩어가고 있었다. 호수에 바다 이름이 붙은 건 바다로 흐르고 싶다는 열망 때문인 걸까. 노랑 이층 집이 호수를 바라보며 동그마니 서있다. 20여분을 달려도 호수가 따라온다. 바다가 맞나 보다.


 Ocotillo Wells를 향해 78번 길로 접어들었다. 사막을 가로질러 아스팔트길이 곧게 뻗어있다. 한참을 달려도 마른 풀이 날리는 사막만 보일 뿐이다. 도대체 이런 곳 어디에 꽃이 피었단 건가. 


 선배가 알아낸 정보엔 정확한 주소가 없어 어느 샛길에서 사막으로 들어서야 하는지 찾기 어려웠다. 사막 한복판에 주소도 랜드마크가 될 건물도 없으니 쉽지 않은 일이었다. 몇 번을 유턴하며 샛길로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하다 결국 여기서 꽃사진을 찍었다는 사람에게 전화해 좌표를 받아냈다. 그 좌표대로 따라가니 ATV들이 달리는 모래언덕 나왔다. 꽃은 어디에도 없다.


 마침 입구에 숨은 있는 건물하나가 보여 들어가니 인포메이션 센터다. 레인저는  점심 식사 후 졸렸던지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문소리에 놀라 깬 레인저는 얼굴에 눌린 자욱이 선명한 채로 우리를 맞았다.

현상수배자라도 찾듯 꽃사진을 내밀며 이곳 어디에 이런 꽃 핀 데가 있냐 물었다. 레인저는 2주 전 비가 와서 꽃이 잠깐 피긴 했으나 지금은 졌다 한다. 다음 비 온 후 바로 오면  꽃을 볼 수 있을 거라며 이곳 꽃정보가 담긴 안내책자를 건넨다. 이곳은 모래언덕이라 사륜구동차가 아니면 다니기 힘들다고 말하며 그는 일반 승용차를 몰고 온 우리 차를 힐끗 본다.


 꽃이 다 졌다니 이 먼 곳까지 헛걸음을 했나 투덜댔지만 선배들은 유턴할 생각이 없다. 꽃 피었던 흔적이라도 찾아야겠다며 범인은 달아났어도 범죄현장이라도 확인하고 가겠다는 기세다. 차를 몰고 비포장도로로 접어들었다.  곳곳에 구덩이가 움푹 파여 차가 요동을 쳤다. 행여 모래구덩이로 빠질까 조신하게 운전하는 우리를 비웃듯  ATV가 먼지를 날리며 휑하니 앞질러 달렸다.


 "입구에서 2마일 지점에서 오른쪽 언덕으로 간다 했어." 사진작가와 통화한 선배가 말했다. 2마일 지점에서 내려 오른쪽 언덕 위를 걸어 올랐다. 사방이 모래와 마른 풀만 보일 뿐 꽃이라곤 씨알도 보이지 않는다. 꽃이 피었다 진 흔적조차 없다. "꽃 찍었다는 분 믿을만한 사람 맞나요. 경치 사진에 꽃만 포토샵 해서 붙인 거 아니겠지요."


 잘 생긴 ATV운전자가 지나가길래 다짜고짜 차를 세우고 취조하듯 물었다. "이곳에서 이런 꽃을 보았냐." 가수 데미안 라이스를 닮은 그는 단호히 " 결코 본 적 없다."며 딱 잡아뗐다. 혹시 달리다 보이면 알려주겠다며 험한 사막까지 달려온 세 아줌마의 기세에 눌릴 세라 먼지를 뿜으며 달아났다.


 이쯤이면 마음을 접어야 할 때다. 서울서 김서방 찾는 격이다. 이 넓은 사막에서 어느 구석에 핀 꽃을 찾겠다니.  모래는 점점 깊어지고 자갈까지 있는 비포장도로를 천천히 달려도 차 안이 요동친다. 이러다 차가 모래에 빠지면 여자 셋이 대책이 없다. 차를 돌려 나갈 만도 한데 두 여인네는 포기가 없다.


 아이들을 태운 또 다른  ATV가 지나간다. "혹시 근처에 이런 꽃 보셨나요?" 선배는 이산가족이라도 찾는 듯 간절한 얼굴로 사진을 보인다.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얌전한 몸매에...' 그 유행가가 왜 갑자기 떠오르는 건지. "저 언덕 근처에서 꽃을 봤어요." 야호! 드디어 꽃순이 소식을 들었다. 세 여인네의 눈이 빛났다.


 그런데 들을 지나 구릉을 한참 넘어도 꽃은 보이지 않았다. 정확히 어디라고 했어요? 참을성이 한계에 다다른 막내가 추궁한다. 그냥 저 너머라 했는데....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차를 돌릴 순 없다. 못 먹어도 Go다. 곧 해는 서산으로 넘어갈 기세다. 마음이 급하다.


 마지막으로 저 언덕 근처까지 가보자며 힘을 낸다. 구릉을 넘어서니 흰 꽃무더기가 갑자기 신기루처럼 나타났다.  유레카! 더 들어가니 분홍꽃과 흰꽃이 모래언덕에 지천으로 피어있다.


 작은 언덕을 돌았을 뿐인데 식물군락이 판이하게 다르다니. 큰길에서 보는 자연과 산 하나를 돌아서 만나는 자연이 완전히 다른 모습을 많이 보긴 했지만 여긴 산도 아닌 작은 언덕을 돌아왔을 뿐인데 놀랍다. 이런 척박한  꽃을 피울 수 있다니. 자연은 언제나 상상 이상을 보여준다.


  카메라에 삼각대에 바리바리 장비를 챙겨 내렸다. 사진에 찍힌 꽃을 찾는지 두 선배는 이곳저곳 유심히 살핀다. 꼭 그 꽃을 찾아 똑같이 찍어야 하냐는 지친 막내의 성화에 짐짓 놀라 자리를 잡는다. 해는 서산에 걸리고 만삭이 가까운 달이 동녘하늘에 떠올랐다.


 Dune Evening Primrose,  청초한 달맞이꽃이 신랑 앞에 선 수줍은 새색시 마냥 달을 바라보며 피었다.  뜨거운 햇살의 유혹에도 눈길 한번 주지 않다 기다려온 달님 앞에 마침내  환한 웃음을 피운다. 달빛이 수줍은 꽃잎을 어루만진다.  허허로운 사막 한가운데 기다림이란 꽃말이 가슴  저린다.


 세 여인은 꽃과 석양과 달빛에 취해 사막을 떠날 줄을 몰랐다. 고요한 사막 벌판에 카메라 셔터 소리만 들릴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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