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6.5
자칭 사진반의 정예부대 여인 6인방이 팜스프링스 라퀸타로 2박 3일의 외출을 감행했다. 사진이란 공통분모의 취미를 가지고 모였지만 각자 다른 분야에서 전문인으로 일해왔고 일하고 있는 여인들이었다.
캘리포니아 답지않게 을씨년스러운 날씨로 지난 몇 달간 움츠려 있던 몸과 마음이 간만의 화창한 날씨를 만나 기지개를 켰다. 팜스프링스에 있는 라퀸타까지 가는 2시간여 동안 차 안은 웃음과 수다가 끊이지 않았다. 60대와 70대 소녀들의 수다는 10대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결혼생활 삼사십 년의 시간과 삶의 풍상도 우리에게서 소녀의 감성을 앗을 수는 없었다.
그저 수다나 떨고 스트레스나 풀고 오겠거니 했던 예상은 한참 빗나갔다. S선배가 준비해 온 카메라 웍샵 프로그램은 스파르타 교육 자체였다. 도착한 첫날부터 롱익스포즈 촬영에서 고스트타운 출사까지 쉴 새 없는 일정으로 짜여 있었다.
도착해 점심을 먹자마자 선배는 카메라 수업을 시작했다. 한 사람이 긴 천을 흔들며 춤추면 나머지는 롱익스포즈로 카메라에 담는 것이었다. 천을 이렇게 흔들어 보라느니 셔터 시간이 너무 길었느니 주문이 많았다. 이런저런 방법으로 촬영해보고 결과에 따라 또다른 시도를 해보았다. 집에서는 여기저기 삐걱대고 아프다던 몸들이 땀까지 흘리며 온몸으로 천을 흔들어대고도 지친 기색을 볼 수 없음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밤엔 모기에 물려가며 야외에서 롱익스포즈를 이용한 또 다른 사진기술을 연습했다. 카메라의 셔터 스피드를 길게 두고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나 이리저리 거닐다 사라지면 카메라엔 아무도 나오지 않거나 마치 유령이 지나간 듯 흔적만 남게 된다. 촬영과 모델 역할을 번갈아 하며 유령 코스프레를 했다. 유령놀이가 무에 그리 재미난 지 늦은 밤까지 낄낄대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노는 법도 참 여러 가지다.
다음 날은 데저트 센터의 고스트타운을 찾았다. 사람들이 떠난 마을은 을씨년스러웠다. 빈집과 레스토랑 안은 지진이 휩쓸고 지나간 듯 집기들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었다. 문이 달아난 폐교엔 아이들이 쓰던 책상과 의자들이 아무렇게나 쌓여 있고 바닥엔 깨진 유리조각이 흩어져 있었다. 교실 구석엔 수업시간에 몰래 읽던 빛바랜 소설책이 뒹굴고 벽이란 벽은 스프레이로 그린 그라피티로 가득했다. 창으로 희미하게 들어오는 햇살이 낡은 책상 위를 걸어 다녔다. 찢어진 커튼이 바람에 유령처럼 날았다.
괴기 영화에나 나올 듯한 교실과 빈집을 카메라에 담느라 모두들 여념이 없었다. 카메라만 들면 어디서 용기가 나오는지 이상한 일이었다. 카메라의 최면에 걸린 여섯 여인들이 유령처럼 교실 구석구석을 휘젓고 다녔다. 내리쬐는 뙤약볕도 유령도 개의치 않는 그들을 유령이 더 무서워할 것 같았다.
지붕이 내려앉은 마켓, 주유기가 뜯겨나간 폐주유소, 동반 자살이라도 한듯 가지런히 줄지어 누운 야자수 나무들, 아이들이 떠난 학교, 텅 빈 마을엔 먼지바람이 날리고 있었다. 부서지고 무너졌어도 끈질긴 인간이 살다 간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원폭으로 인류가 멸망한 후의 지구 모습을 담은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어딘가 생존해 숨어있는 인류를 구원해야 할 것만 같다.
마을의 벽이란 벽은 캔버스가 되어 스프레이 그라피티로 가득했다. 색색의 그라피티가 이 허허로운 공간을 또 다른 예술 작품으로 만들고 있었다. 유적지든 기차역사든 가리지 않고 스프레이를 뿌려 그림과 글씨로 뒤덮는 그라피티족에 대해 평소 아주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죽은 공간을 예술 작품으로 바꿔놓은 이곳을 보며 새로운 시각을 갖게 했다.
사관학교 교관이라도 된냥 선배는 뙤약볕 출사 후 돌아와선 쉴 시간도 주지 않고 다음 수업을 강행했다. 라이트박스 위 마른 꽃 촬영 웍샵이 이어졌다. 열정 선배는 일일이 꽃을 말려와 한 사람 한 사람 찍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부실체질인 나는 이미 지쳐 눈치를 살펴 한쪽 구석에 슬그머니 드러누웠다.
소파 사이로 70이 넘은 여인들이 뻣뻣해진 허리를 굽혀 라이트박스 위 꽃을 카메라에 담느라 삼매경에 빠진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배움 앞에 저리도 진지할까.' 그들의 모습 위로 미래의 내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저 모습으로 나이 들고 싶다.' 일어나 꽃보다 아름다운 그 열정을 카메라에 담았다.
오고 가며 틈틈이 들려주는 J선배의 미술강좌 또한 뇌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 주었다. 미술에 문외한이었던 내가 언젠가부터 유투브에서 미술강좌를 찾아듣고 예술작품에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선배 덕이었다. 나만 잘됨으로 그치지 않고 주변인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며 사는 것이 중요하단 것을 그녀를 지켜보며 배운다. 새벽에 일어나면 항상 그녀가 먼저 깨어 있었다. 한잔의 커피를 내려놓고 미술서적을 읽고 있었다. 미국 주류 예술사회에 한인으로 독보적인 그녀의 위치가 그냥 얻어진게 아니었다.
살아온 인생이야기도 나눴다. 젊은 날 홀로 되어 자식과 가정을 책임지며 정신없이 살다보니 어느새 황혼이 되어 있더라며 담담히 말하는 선배는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직장생활을 병행하며 가정을 지키려 분초를 쪼개살던 순간들, 자식에게 행여 부족한 엄마일 새라 노심초사했던 지난 날들, 낯선 나라에서 뒤쳐지지 않으려 부단히 애쓰던 치열했던 시간들, 이런저런 경험담을 나누며 이심전심이 되어 함께 눈물을 글썽였다.
엄마로 아내로 커리어 워먼으로 열심히 살아온 여인들의 이야기에서 등정을 마무리하는 산악인의 모습이 보였다. 정상을 향해 고군분투 앞만 보다 하산할 때야 비로소 산길에 만발한 꽃들이 눈에 들어온 산악인. 그들의 삶이 바로 장대한 산이었다.
라퀸타에서의 삼일은 나의 미래를 꿈꾸게 하는 다섯 명의 롤모델을 만난 시간이었다. 이 나이에 내가 뭘 할 수 있겠냐며 안주하고 우울해하는 시니어가 아닌, 떠나는 날까지 배움 앞에 열려있는 자세로 살아가고자 하는 선배들. 자녀들이 성장해 떠나고 나 자신과 다시 마주한 은퇴 후의 삶이 어떤 모습이면 좋을 지를 생각하게 했다 .
저무는 해가 겹겹의 바위산을 황금빛 노을로 물들이고 있다. 어깨를 맞닿으며 서로 껴안고 어우러지는 산들이 우리의 살아온 날들 같았다. 머언 젊음의 뒤안길에서 이제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라퀸타의 여인들, 그들의 인생 여정이 황금빛 노을을 닮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