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9.3. 토
갑자기 지붕을 우다닥 두드리는 소리에 놀라 나가보니 갑자기 소나기가 내린다. 9월초인데 비가 내리다니. 6월부터 9월까지 비한방울 보기 어려운 이곳 남캘리포니아에선 지극히 드문 일이다. 2주째 화씨 90도를 넘는 무더위에다, 건조한 예년과 달리 높은 습도로 불쾌지수가 높았다. 다음주까지 100도를 넘을 거라는 일기예보에 전기소모에 비상이 걸렸다. 급기야 며칠 전엔 더운 한 낮에 강제 정전까지 되었다.
지구의 기온 변화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는 뉴스를 자주 접한다. 일년 내내 가뭄으로 시달려 사막으로 변해가는 곳이 생기는가 하면 하늘이 뚫린 듯 단시간의 집중호우로 홍수가 나 몸살을 앓는 곳이 늘고있다. 파키스탄은 3개월 내내 비가 와 국토의 삼분의 일이 물에 잠겼다 한다. 반면 이곳 캘리포니아엔 몇년 째 가뭄으로 호수가 바닥을 드러내고 식수 부족현상을 겪고 있다. 매년 엄청난 규모의 산불로 캘리포니아 전체를 다 태워버릴 기세다. 남반구의 오스트리아나 북반구의 유럽도 산불에서 예외가 아니다.
몇주전엔 전형적인 사막 기후인 라스베가스와 데스벨리에 100여년 만에 처음 여름 집중호우가 내려 홍수로 도로가 유실되고 국립공원을 일시 폐쇄해야 할 지경이 되었다. 세상 사는 게 공평하지 않듯 비도 지역에 따라 공평하게 내리지 않음을 그저 받아들여야 하는건지.
오래전부터 지구는 아프다며 이곳저곳에서 소리를 지르고 있는데 인간은 귀를 막으며 계속 외면해 왔다. 환경학자들은 이제 지구 상태가 되돌릴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한다. 지구는 브레이크가 고장난 열차가 되어 어디를 향해 달리는지 모르게 스피드를 내며 달리고 있는 거라한다.
무섭다. 어찌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앞으로의 미래가 어찌 흘러갈 지도 불투명하다. 인간들은 각자 주장이 달라 기후변화는 인재라고도 하고 자연 현상이라고도 한다. 하긴 한 집안에서도 전기를 아끼는데 동참하려 에어컨을 안켜고 더위를 참는 가족이 있는가 하면 다른 가족은 거리낌 없이 종일 에어컨을 틀어대는 판이다. 한 가정 안에서도 행동과 의견이 다른데 하물며 복잡다난한 인간세상이 하나로 뭉칠리는 만무하다.
본래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코로나 바이러스로 사람들이 죽어갈 때는 인류가 변해야 한다고 입을 모아 외쳐댔건만 아니나 다를까 바이러스 힘이 조금 누그러드니 언제 그랬냐는 듯 제자리로 돌아가 버렸다. 한심한 인간들이여.
청춘을 다 보낸 우리야 지금 사라져도 아쉬울 게 없지만 아직 꽃피워보지 못한 다음 세대들은 이 힘든 상황을 어찌 견뎌낼지 안타깝다. 인류가 멸종되어야 이 지구엔 평화가 오려나. 인간을 멸종시키려면 긴 시간 괴롭히지 말고 차라리 하루아침에 없애버리는 게 낫지 않냐고 신에게 외쳐본다. 왜 이리 인간을 엉망으로 만들어 자멸의 길을 가게 하냐고 신을 원망해 본다.
우당탕 내리던 소나기가 그쳤다. 해가 나고 무지개가 뜬다. 이도 신이 인간에게 주는 헛된 희망이려나. 희망 고문이란 말이 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일에 희망을 품게하는 건 고문과 같다는 것이다. 그저 잠시의 이 소나기로 불로 타들어가고 있는 곳에 도움이라도 되길 빌어본다. 발등의 불이라도 끌 수 있길 인간이기에 헛된 희망을 품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