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비즈 컬럼기고의 원문입니다.
스타트업의 산실인 실리콘밸리가 속해있는 캘리포니아는 미국 서부시대의 상징이다. 서부시대의 핵심 키워드인 ' 골드러시'는 1849년에 시작된 금을 찾아 캘리포니아로 향한 현상을 말한다. 그 시절 캘리포니아에는 금광을 찾고, 사금을 채취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채취한 금은 본인이 소유할 수 있었기 때문에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꿈, 아메리칸드림을 쫓아 미국으로 넘어온 이주민과 동부에서 넘어온 사람들이 25만 명이 넘었다.
많은 이들의 바람과 다르게 골드러시는 5년 만에 끝나고, 도시는 황폐해졌다. 골드러시는 아쉽게 막을 내렸지만 골드러시를 통해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세 명의 부자가 있었다. 샘 브래넌, 리바이 스트라우스, 그리고 릴랜드 스탠퍼드이다.
샘 브래넌은 서부에 금이 나온다는 기사를 쓰고 금을 캐는 도구를 독점하여 부자가 되었고, 리바이 스트라우스는 금을 캐는 사람들에게 청바지를 만들어 팔아서 부자가 되었다. 우리가 기억하는 리바이스는 이때 시작된 것이다. 릴랜드 스탠퍼드는 철도 사업을 통해 골드러시를 향하는 사람들을 이동시키며 부를 축적하였다. 오늘날 실리콘밸리의 상징인 스탠퍼드 대학은 그가 죽은 아들을 기리기 위해 세운 학교이다.
19세기 골드러시의 핵심 성공요소는 재화의 독점, 상품 혁신, 인프라 선점이었다.
금광을 캔 사람들이 아닌 금광을 캐기 위해 필요한 재화를 독점 공급하고, 혁신적인 상품과 인프라를 제공하여 골드러시의 참가자(플랫폼 사용자)들의 주머니를 가볍게 만들어 성공했다. 아쉽게도 골드러시 참가자들은 큰 부자가 되지 못했지만, 브래넌, 리바이스, 스탠퍼드는 엄청난 부자가 된다.
21세기에도 ‘골드러시’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정보의 민주화가 가속화되며 빠른 실행력과 기술, 더욱 나은 고객 경험 제공, 협업과 경쟁을 통한 시장 확장 등이 성공의 핵심 요소로 인정받고 있다. 19세기에는 금을 찾는 사람들이 서부를 개척하고 자유와 질서를 만들었다면, 21세기에는 IT와 데이터를 재료로 인간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들이 혁신의 시대를 만들어 가고 있다.
21세기 '골드러시'의 상징은 바로 유니콘 기업이다. 유니콘 기업은 10억 달러(약 1.3조 원) 이상의 가치를 인정받은 비상장 스타트업으로, 설립된 지 10년 이내의 기업을 의미한다. 리서치 기업 CB인사이츠의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9월 기준 한국의 유니콘 기업은 10개다. 미국, 중국 등에 이어 세계에서 6번째로 많다. 하지만, 동 기관에서 예측한 미래를 선도할 유니콘 기업 50개 중 한국 기업은 없다. 50개 기업 중 절반 이상이 데이터와 핀테크, 헬스케어 등 기술 중심의 회사들이지만, 한국의 유니콘 기업은 커머스와 제조, 유통 기업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원천기술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기보다, 연결의 사회적 비용(트랜젝션 비용 최소화)을 줄이는 회사들이 대부분이다.
국내에서 기술 중심의 스타트업이 탄생하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척박한 사업 환경과 작은 시장 규모의 한계 때문일 것이다. 높은 수준의 IT와 데이터 인프라 환경이라는 금광을 보유하고 있지만, 각종 규제로 인해 발목이 잡혀 있다. 특히 대표적 규제 산업인 금융은 혁신의 속도가 더욱더 더디다.
이러한 한계 극복을 위해 금융당국은 미래의 금광인 금융 데이터 산업 활성화를 위해 마이데이터사업(본인 신용정보관리업)을 신설했다. 데이터를 이용하여 금융 혁신을 추진할 법적 근거도 마련되었다.
마이데이터 사업이 정착되고 데이터 기반의 신규 사업자가 시장에 진출하면 금융시장의 혁신과 디지털화는 더 빨라질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실제 2019년 5월 이후 등장한 대출 비교 서비스는 금융사 간 경쟁을 촉진해 평균 대출 금리를 낮추는 등 시장의 변화에 기여하고 있다. 금융사와 핀테크의 협업과 경쟁이 공존하는 시대가 다가온 것이다.
산업 활성화에 있어 제도와 규제는 필수 불가결하다. 그러나 규제는 완벽할 수 없다. 절차와 합의라는 물리적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빠르게 달라지는 시장과 고객의 니즈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마이데이터사업은 인적, 물적 투자를 기반으로 사업모델을 만들어야 하는 제약이 있다. 소규모의 스타트업이 도전하기 위해서는 많은 투자와 준비가 필요하다. 대규모 투자를 통해 구축한 망분리* 환경, 가이드라인은 스타트업의 다양한 실험을 저해하는 요소이다. 개발망은 인터넷 연결을 허용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으나 연내에는 불가해 보인다.
최근 투자 시장이 얼어붙고 있고, 복잡한 규제에도 불구하고 데이터라는 21세기의 금광을 향한 골드러시는 계속된다. 미국 서부의 골드러시와 같은 반짝 인기가 아닌 더 나은 가치를 만들어내는 뉴 골드러시가 되기 위해서는 복잡한 규제와 진입장벽을 완화해야 한다. '알고 하는 동의'와 같은 일률적인 가이드라인이 아닌 최소 요건을 요구하고, 나머지는 참여 업체들의 자율적인 실험으로 채워져야 한다.
이러한 실험이 성과를 내기 위해서 국가 차원의 데이터 역량 확보와 기술 연구에 대한 공격적인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까지 핀테크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보다 금융 거래의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역할을 해왔다면, 이제는 새로운 가치 창출을 위한 다양한 도전을 해야 한다.
이 모든 도전은 온전히 금융소비자를 향해야 하며, 특히 금융소외계층이 차별받지 않도록 금융사각지대를 줄이는데 도움이 돼야 한다. 이러한 도전이 성과를 낼 수 있도록 21세기의 새로운 골드러시를 위해 탄생한 마이데이터 사업이 초심을 잃지 않고 핀테크 업체들의 샌드박스가 되길 기대해 본다.
* 망분리 : 네트워크 보안 기법의 일종으로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내부의 자료를 보호하기 위해 업무용 내부 망과 인터넷 망을 분리하는 것을 말한다. 망분리 규제는 국내에서는 2006년 중앙 정부 기관을 시작으로 2011년 농협 전산망 마비 사태를 계기로 2013년 모든 금융권에 적용됐다. (한경 경제용어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