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화지문
아직 학교도 안 다닐 시기였다. 할머니 집에서 얹혀 살던 우리 가족은 경기도 외곽 작은 도시의 아파트에 입주했다. 아버지의 형제 몇 명이 당시의 내 키보다 큰 병의 인삼주를 작살내고 짐은 하나도 안 나른채 남의 새집 안방에서 잠만 자는 불상사가 있긴 했지만, 하여간 부모의 생애 가장 기쁜 날 중 하루였을 것이다.
어지간한 짐은 다 들여놓고 거진 마무리로 4인용의 작은 식탁을 옮기는 중 문제가 생겼다. 의자가 세 개 뿐이었던 것이다. 어른들은 오다가 어디에 두고 온 건 아닌지 걱정했다. 그 때, 고작 제 소유의 장난감 정도나 나르고 있으면서도 어엿한 한 사람의 몫을 하고 있다 착각하고 있던 어린 내가 말했다. 의자 원래 세 개에요. 네 개 사면 할머니 자주 올까봐 세 개만 산 거에요.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대부분은 어린애가 뭘 모르고 아무렇게나 한 말이라 생각하거나 생각하는 척 했지만, 할머니는 도저히 어린애가 했다고는 믿을 수 없는 말이라며 노발대발했다. 부모가 주고 받은 대화를 듣고 그대로 옮긴게 분명하다는 것이다.
당시엔 근력이 떨어져 막 은퇴한 참이었으나, 할머니는 산천초목이 두려움에 흐느끼게 하는 호랑이 시어머니 출신이었다. 현역 때의 무용담을 들어보면 여느 무협지나 드래곤볼 못지 않다. 자칫 경기 외곽 작은 도시의 아파트 단지가 거대한 크레이터만 남기고 파괴될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인삼주에 대취했던 이들까지 포함해 아들 여덟명이 할머니를 뜯어말리는 동안, 막내 고명딸이 기민하게 시내 가구점에 가서 의자 한 개를 사왔다. 어머니도 어머니대로 하늘에 맹세코 그런 말을 한 적은 없지만 앞으로는 아이가 착각하지 않도록 조심하겠다 손이 발이 되도록 빈 끝에 사태는 사상자 없이 마무리 됐다.
모든 일의 원흉이었던 어린 나는 새벽부터 깨어있느라 피곤했는지, 새로 생긴 제 방 침대에 누워 쌔근쌔근 잠들어 있었다고 한다.
어찌나 인상 깊은 사건인지 기억력이 형편없기로는 내가 아는 이 중 최고에 속하는 어머니도 가끔 언급하는 일이다. 나처럼 물색도 눈치도 염치도 없는 놈은 세상천지에서 본 일이 없다는 촌평과 함께. 이런류의 일이 한두번이 아니어서 어머니는 그 시절의 나를 ‘재앙의 주둥아리’라는 별호로 칭한다.
이젠 고자질 할 사람도 없으니 솔직히 말해 보시라는 은근한 제안에도 펄쩍 뛰며 손을 내젓는 걸 보면 어머니가 할머니 오는게 싫어 술수를 쓴 건 아닌 모양이다. 그렇다면 나 홀로 저 ‘도저히 어린애가 했다고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꾸며냈다는 뜻이다. 거참, 지금처럼 막장 드라마가 흥할 때도 아니고, 애초에 고부갈등이라는 단어조차도 몰랐던 어린애가 어떻게 저런 내용을 떠올릴 수 있었을까? 미스테리한 일이다.
사실 더 궁금한 건, 꾸며낸 이야기 한 토막으로 온 집안을 발칵 뒤집어 놓을 수 있었던 그 악마의 재능이 대체 어디로 가버렸는지 하는 것이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 나는 이렇게 고작 에세이 한 편 써내는 것에도 진이 다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