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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바롬 Sep 13. 2024

낙타 落墮

습작 꽁트


 1학기 기말고사 마지막 날의 일이었다.


 교실에는 于와 나 외에 아무도 없었다. 마지막 시험이 끝난 지 한 시간 가까이 지나 다른 녀석들은 흐트러진 책상만 남겨두고 썰물처럼 빠져나간 후였다. 학교 전체가 나른한 침묵으로 가득 차 있었다. 멀리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는 아이들의 소리만이 들려왔다. 좀처럼 골이 터지지 않는 것 같았다. 공차는 소리, 운동화가 모래 바닥을 할퀴는 소리, 안타까운 탄성이 뒤섞였다. 그러나 지루한 침묵을 깨기에는 턱 없이 멀고 아련한 소리였다.


 그 놈의 수학선생만 아니었어도 그 때쯤 난 피씨방에 있을 친구들과 함께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을 것이다. 마지막 시험의 감독관이었던 수학선생의 지시에 따라 휴대전화와 지갑을 책상서랍 안에 집어넣고는 까맣게 잊었던 것이다. 나는 뒤늦게 헐레벌떡 학교에 돌아와야 했다. 교실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문을 열자마자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한 아이가 교실 건너편 창틀에 걸터앉아 있었다. 于였다.


 뭐하냐? 한 마디 던져봤지만 그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짊어졌던 가방을 책상 위에 던져놓고 于의 곁에 다가갔다. 뭐하냐고? 다시 한 번 물었지만 그는 여전히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창 밖에 내민 양다리만 물을 젓듯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별다른 모멸감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于의 대답을 적어도 한 번은 들어야겠다는 기묘한 오기가 생겼다. 뭐하냐니까. 안 들려?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나를 전혀 의식하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그의 옆얼굴을 잠시 노려보다가, 살짝 뛰어올라 창틀에 엉덩이를 걸쳤다. 그가 하는 것처럼 다리를 창밖으로 내놓으려다 오층의 높이가 새삼 아찔하게 느껴져 다리는 교실 쪽으로 향하고 상반신만 비틀어 밖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오랫동안 그렇게 앉아있었다. 처음엔 뭔가 흥미로운 구경거리가 있는 건 아니었다. 우리가 걸터앉은 창은 학교 뒤뜰에 면해 있었다. 시멘트를 평평하게 싸바른 뒤뜰에는 체육 창고 두 개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안에는 매트나 뜀틀 같은 것들이 먼지를 잔뜩 뒤집어쓰고 있을 것이다. 뒤로는 학생들의 땡땡이를 막기 위해 높게 설치한 철망이 얼기설기 엮여 있었고, 그 너머로 나무와 잡초가 무성했다. 학교는 야트막한 동네 뒷산에 접해있었다. 덕분에 여름철만 되면 피처럼 강렬한 초목의 향이 진동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고 있는 于를 바라보았다. 그도 딱히 무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는 않았다. 깊은 생각에 빠져있는 것 같았지만, 태평한 표정을 봤을 때 그리 심각한 것은 아닌 듯 했다. 길게 하품을 하다가, 문득 于를 알게 된 이후 그와 가장 가까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같은 반이긴 했지만 난 于와 그다지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그와 친하게 지내는 녀석은 아무도 없었다. 아이들은 적극적으로 따돌리거나 괴롭히지는 않았지만 하나 같이 그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직접 들어본 적은 없지만, 짐작건대 于가 자신들을 경멸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于는 다른 아이들과 전혀 어울리려 하지 않았다. 가끔 말을 걸어도 짧은 대답뿐이었고, 그나마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하루 종일 말 한 마디 듣지 못하는 일도 허다했다. 학교에 있는 내내, 쉬는 시간이든 수업시간이든 자리에 앉아 국어사전을 읽는 것이 그가 하는 일의 전부였다. 특정한 단어를 찾는게 아니라 첫장부터 한장씩 차례차례 넘겨가며 ‘읽는 것’이었다. 그 짓을 얼마나 오랫동안 반복했는지 사전 표지가 낡아 떨어질 지경이었다.


 때로는 노트에 무언가 끼적이기도 했다. 언젠가 于가 화장실에 간 사이 친구들과 그 공책을 펴본 적이 있었다. 깨알 같은 글씨가 가득했다. 그러나 그는 대단한 악필이었고 그 악필로 쓴 단어들은 생전 처음 보는 어려운 단어들이었기 때문에, 무엇보다 于가 생각보다 일찍 돌아왔기 때문에 제대로 읽어볼 수는 없었다. 우리는 슬그머니 공책을 덮고 뒤로 물러났다. 그는 무표정하게 자리에 앉아 우리가 훔쳐보던 공책을 책상 서랍에 집어넣었다.


 학기 초에는 일찌감치 낙오되어 공부를 포기해 버린 학생을 구원하겠다는 사명감 때문에, 혹은 늘어진 교실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 于를 제지하려드는 선생이 몇몇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경고, 애원, 협박에도 于는 묵묵부답이었다. 끝내 수학선생이 예의 사전으로 于의 머리를 몇 번 강하게 내리친 후, 선생들은 더 이상 그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는 태도를 취했다.


 선생들에 대한 특별한 존경심은 없었지만, 어려서부터 그들을 두려워하도록 지속적으로 훈련 받은 우리들은 于의 태도가 불편했다. 그렇다고 그가 선생을 두려워하지 않을만한 굳은 신념이나 확신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쟤 왜 저래? 대충 수학 비위 좀 맞춰주지. 병신, 지는 뭐가 다른 줄 아나. 당시 반 아이들의 소리 죽인 대화를 기억한다.


 이후 모든 아이들은 그를 도무지 속을 알 수 없지만 정작 그 속에는 별거 없는 녀석으로 결론 내리고 유령처럼 취급했다. 나도 다수의 결정에 따라 그런 아이들 사이에 섞여 어울렸다. 그러나 하루에 몇 번 쯤은 于를 돌아보기도 했다. 나는 불안했다. 우리가 질투에 사로잡혀 우리보다 뛰어난 사람을 쑥덕공론으로 깎아내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물론 于는 어느 분야든 결코 평범한 사람 이상의 재능을 보여준 적이 없으므로, 그런 표현은 내 불안의 성격을 명확히 하기 위해 과장된 것이겠지만.


 하지만 그런 모호한 불안이 나로 하여금 于와 함께 교실에 남아 있도록 한 것이리라.


 햇빛은 녹은 쇳물처럼 쏟아져 내렸고 진초록 나뭇잎은 축축 늘어졌다. 공기는 확확 달아올라 숨이 턱 막히게 했다. 바람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구름 없이 새파란 하늘은 시야 끝까지 펼쳐져 있었다. 너무 선명해서 돌을 던지면 와장창 깨져버릴 것만 같았다. 모든 것이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무력감과 답답함, 그리고 까닭 모를 쓸쓸함이 왈칵 밀려왔다.


 문득 고개를 돌렸더니 개미 한 마리가 하얀 창틀의 옆면을 기어 올라가고 있었다. 먹처럼 새카만 모습이 강한 햇살에 선명하게 떠올라 있었다. 개미는 짜증스러울 만큼 느릿하게 움직였다. 개미가 창틀 중간쯤 올라갔을 때, 엄지손가락으로 그것을 꾹 눌러 죽였다.


 그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던 于가 부스럭거리며 주머니에서 붉은 담뱃갑을 꺼냈다. 그는 익숙하게 담배 한 대를 꺼내 입에 물고는 불을 붙였다. 학교 교실이라는 것, 게다가 교무실에 선생들 대부분이 남아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대담한 짓이었지만, 제지해야 할 이유를 떠올릴 수 없어 지켜보고만 있었다.


 于는 담배를 깊게 빨아 연기를 잠시 입에서 굴리고는, 깊이 들이마신 뒤 천천히 내뱉었다. 그는 한 모금 한 모금 온힘을 다하는 듯 담배를 태워나갔다. 그의 늘어뜨린 손가락 사이에 끼워진 담배는 끊임없이 연기를 피워 올렸다. 연기는 수백 가닥의 비단실처럼 엉기어 너울거리다가 뜨거운 햇살에 증발되어 희미해져갔다. 이윽고 필터만 남아버리자, 그는 그것을 창밖으로 튕겨버렸다. 꽁초는 빙글빙글 돌면서 추락해 시멘트 바닥에 떨어졌다.


 슬슬 엉덩이가 아파왔다. 내가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지. 于는 여전히 내 존재조차 깨닫지 못하는 것처럼 굴었다. 얼굴에 태평함과 지루함이 뒤섞인 표정이 떠올라있었다.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그의 대답을 듣고 말겠다는 기묘한 오기가 사그라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살짝 창틀에서 뛰어내려 교실에 섰다. 엉덩이를 툭툭 털며 안가냐? 하고 물었지만 역시나 그는 돌아보지도 않았다.


 맘대로 해라. 무어라 말해야 할지 몰라 투덜거림으로 인사를 대신하고, 내 자리로 걸어가 가방과 서랍 속 물건을 챙겼다. 뒤를 돌아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가방을 들며 다소 큰 소리로 개새끼, 하고 중얼거렸다.


 교실 문을 열기 전, 결국 참지 못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당황했다. 여전히 같은 자세로 앉아있을 줄 알았던 于가 창틀을 딛고 일어서 있었던 것이다. 꼿꼿이 서 있기엔 창문이 좀 작았기에 그는 허리를 낮추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엉거주춤한 자세가 금방이라도 뛰어내릴 것처럼 보여서, 나도 모르게 앗하고 소리쳤다.


 다행히 그는 그 상태로 잠시 멈춰 있었다. 당장 뛰어내릴 것 같지는 않았다. 조금 안심하며 말했다. 뭐, 뭐 하는 거야, 너.


 말을 더듬었다는 것이 창피했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나의 말이 신호라도 된 것처럼 于가 창밖으로 몸을 내민 것이다. 이번엔 정말 비명도 못 지를 만큼 놀랐지만, 그는 떨어지지 않았다. 양손으로 창틀을 단단히 움켜쥐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손을 놔버린다면, 행여나 미끄러지기라도 한다면, 오층에서 곧장 시멘트 바닥으로 떨어져 버릴 것이다.


 미친놈아, 떨어지면 죽어. 겨우 중얼거리듯 말할 수 있었다. 내 목소리는 나 자신에게도 제대로 들리지 않을 만큼 작았다.


 그러나 于는 들은 것 같았다. 나를 돌아보며 하얗게 웃었던 것이다. 순간 정신이 아득해질 만큼 천진한 웃음이었다. 눈 안에 뜨거운 것이 고여 시야를 불투명하게 가렸다. 천둥 같은 이명이 머릿속을 뒤흔들었다.


 이명이 가라앉을 때쯤, 운동장 쪽에서 어렴풋이 환호 소리가 들려왔다. 드디어 골이 터졌나보다. 갑자기 매미가 유별나게 요란한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다소 정신을 차린 나는 손을 들어 눈을 문질렀다. 손등에 눈물이 가득 묻어났다. 창문을 보았다. 여전히 무서울 만큼 선명한 하늘이 보였다. 그리고 그는 보이지 않았다. 그것을 확인한 순간 몸이 주체하지 못 할 만큼 떨려왔다.


 누군가를 불러와야 하나, 신고를 해야 하나, 아니면 이대로 도망칠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망설이는 사이, 나는 나도 모르게 창가를 향해 천천히 걷고 있었다.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다. 이곳을 벗어나거나, 여의치 않다면 차라리 쓰러져 기절해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무력하게 두 다리가 이끄는 데로 창가에 서서 아래를 확인했다.


 그리고 떨림이 멎었다.


 햇빛은 작살처럼 내리꽂히고 있었다. 진초록색의 나뭇잎은 여전히 축 늘어져있었고, 철망은 이제 햇빛에 흐물흐물 녹아 그대로 무너질 듯 했다. 체육창고가 드리우는 그림자의 경계는 칼날처럼 날카로웠고, 그 그림자가 닿지 않는 시멘트 바닥은 햇빛을 반사하여 눈이 아플 만큼 새하얗게 불탔다.


 그리고 그 위에 于가 서 있었다. 마치 완벽한 철봉 연기를 선보이고 착지한 기계체조 선수처럼, 그는 팔을 옆으로 살짝 펼치고 있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于는 천천히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웃고 있었다. 강렬한 햇살 때문인지, 그 미소가 너무나 눈부시게 느껴져서 다시 한 번 아득함을 느꼈다.


 于가 손을 흔들었다. 정말 태평한 놈이네. 겨우 한 마디 할 수 있었다.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그는 여전히 태평하게 손을 흔들며 웃었다. 한참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도, 결국 별 도리 없이 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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