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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바롬 Dec 06. 2024

꿈속에서

서울 장수 막걸리 매니아와의 만남

 아버지의 꿈을 꾸었다. 아버지가 죽은 후로, 아니 이전부터 그가 나오는 꿈은 늘 악몽이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악몽에서 깨어 이제는 아버지가 세상에 없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다는 것 정도이다.


 그러나 지난 밤의 아버지는 드물게도 취하지 않은 말짱한 모습이었다. 그는 즐겨가던 대중 목욕탕 스킨 냄새를 풍기며 부드럽게 웃고 있었다. 


 그는 눈에서 장난기를 반짝이더니 대뜸 넌 누굴 닮아 그렇게 못 생겼냐고 물었다. 나는 조금 놀랐다. 아버지와 나는 부자지간은 물론 다시 없을 원수끼리라도 아 그건 좀... 싶은 비난을 수도 없이 주고 받았었지만, 외모를 지적 받는 건 처음이었다. 어차피 그럭저럭 만족하고 살고 있었으니 그저 웃어 넘기면 그만일 텐데, 늘 그랬듯이 다른 사람이라면 웃어 넘길 수 있는 말이라도 아버지를 상대로는 그럴 수 없었다. 나는 버럭 화를 내며 결코 동의할 수 없는 말이지만, 억에 하나 그 말이 사실이라 한들 그것이 누구 탓이겠냐고 반문했다. 아부지 아들이니까 그런 거 아니에요!


 아버지는 만족스러운 듯 씨익 웃었다. 처음부터 그 말을 듣고 싶었을 뿐이라는 것을 깨달은 나는 아차, 속았다고 생각했다. 허나 전세금을 사기 맞은 기분이라기 보다는, 그저 짓궂은 장난에 휘말렸다는 정도의 기분이었다.


 잠에서 깨어 날짜를 확인하니 아버지의 첫번째 기일 무렵이었다. 아버지의 유골을 묻은 산에 가서 술 한 병을 뿌렸다. 서울 장수 막걸리. 서울 장수 막걸리의 성공 요인은 유통망을 따로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매우 신경을 쓰는 것으로 보이는데, 생전의 아버지는 그 유통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소매점을 본사에 알려서 직접 찾아온 서울 장수 막걸리 이사에게 90도 인사를 받은 바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닥 장수하지 못했다.


 인쇄소에 들러 별다른 기대는 하지 않는 신춘문예 응모작을 출력했다.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와 근방 학교 대학원생의 촉새의 생태에 대한 연구 논문이 복합기 배출구에서 뒤섞였다. 우체국에서 등기를 보낸 후 돌아오는 길에 복권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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