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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바롬 Dec 20. 2024

까리쓰마가 이쓰야대!

결과적으로 매장은 더 엉망이 되었다

 난 이때껏 대부분의 커리어를 편의점에서 쌓았다. 기 십 명의 점장을 겪어봤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10년 전 대학가의 매장을 운영하던 양반이다.


 까리쓰마가 이쓰야대, 까리스마! 하와이안 셔츠에 카키색 잭필드 바지를 즐겨입던 점장은 친절도, 정리정돈도, 재고누수방지도 아닌 카리쓰마를 강조했다. 그에게 까리쓰마란 마치 스타워즈 씨리즈의 포쓰와도 같아서, 강력한 '까리쓰마'만 있다면 매장을 굴리는데 필요한 모든 것이 무위이화로 이뤄진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난 그의 까리쓰마 타령에 신물이 올라왔지만, 후술할 사건 이후로는 이해의 마음을, 심지어 약간의 존경심마저 품게 되었다.


 어느 새벽녘엔 노숙자 아닌가 싶은 세 명의 남자가 들어왔다. 백년 전 호주 선교사가 찍은 구한말 조선의 사진에서 튀어나온 비나리패 같은 꼬락서니였다. 금세기 한국에서는 볼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충격적 비주얼에 혹 이건 꿈이 아닌가 싶었다. 가장 표현주의적으로 생긴 사내가 십원과 오십원이 다량 섞인 동전으로 호기롭게 막걸리를 계산하니, 그보다 나이 많아보이는 두 명이 형님 형님 했다. 


 매장 구석 바닥에 앉아 막걸리를 나눠마신 그들은 물건을 부수고 외상을 해달라 쌩떼를 쓰고 입구 옆 우산꽂이 앞에서 바지춤을 풀어 헤치더니... 하여간 더이상 서술하고 싶지 않은 짓들을 했다. 


 진술서 쓰고 씨씨티비 영상 제출하기 귀찮으니 경찰 부를 일 있으면 자신을 부르라는 점장의 당부를 따르기로 했다. 근처에 살던 점장은 수화기를 채 내려놓기도 전에 매장으로 달려왔다. 그는 곧장 손님이 두고 간 파라솔만한 장우산을 집어들어 마구 휘둘렀고, 비나리 패거리들은 아이고 형님 아이고 형님하더니 도망가버렸다. 


 우리 가게 또 오면 늬들 다 죽어! 각자 다른 길로 흩어져 도망가는 비나리패와 우산을 장검처럼 비껴들고 호령하는 점장과 그 모든 광경 뒤로 후광인 듯 눈부신 '까리쓰마'는, 죽기 직전 되돌아 봄직한 명장면이었다. 


 까리쓰마가 이쓰야대! 점장은 지난 몇 주간 수십번 전파한 은혜로운 말씀을 다시 한 번 전한 뒤 자던 잠 마저 자러 돌아갔다. 속수무책으로 샘솟는 법열의 눈물이 철야로 꺼칠해진 나의 두 뺨을 촉촉하게 적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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