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기의 기술
76년생으로 학부때부터 도시빈민운동을 하다가 2002년부터 노숙인 인권 운동조직의 상근자로 일해온 '홈리스행동' 이동현 활동가의 말이다.
세금 문제 같은 게 제일 힘들어요. 체납 세금 같은 건 지금 제도로 방법이 없으니까요. 동자동에 계신 분인데, 같이 공영 장례 가는 길이었어요. 명의 도용을 주제로 얘기하다가 본인 명의 도용 문제가 해결 안 됐다는 얘기가 나왔고, 저는 그냥 맞장구치고 있었는데, 저한테 "아저씨가 하다 말지 않았냐" 이러시더라고요... 몸 둘 바를 모르겠더라고요. 화도 나고 화끈거리기도 하고. 우리가 당사자 분들을 공무원한테 모시고 갔을 때 그 공무원이 제도를 제대로 모르거나 보수적으로 적용하거나 성의 없거나 하면 되게 화가 나거든요. 근데 내가 딱 그런 사람 취급을 당한 거예요. 사실 제 능력 밖이라 생각해요. 현재 제도로는 안 되는 거잖아요. 섭섭한 마음은 물론 들었지만요.
<힐튼 호텔옆 쪽방촌 이야기 - 우리는 양동에 삽니다>, 홈리스행동 생애사 기록팀 지음, 298쪽
이 문단을 읽은지 열흘쯤 지났다. "아저씨가 하다 말지 않았냐"는 노숙인의 말과 그 말을 듣은 소회를 담담히 털어 놓는 20년 차 활동가의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2000년대 초반 대학 다닐 때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하는 당사자 또래 친구들과 어울렸었다. 사회 생활 경험이 적은 20대 또래 장애인들과 어울려 다양한 활동을 하는 1년 프로그램 활동을 마치고 이후 몇 년은 자주 보는 친구로 지냈다. 그 친구들이 당시에 이동권 연대 활동을 했다. 나는 운동을 같이 했다기보다 이따금 시위 장소에 친구들을 데려다 주고 근처서 기다렸다가 끝나면 뒷풀이 가서 함께 어울려 노는 식이었다.
졸업하고 직장 생활 1년을 지나던 즈음에 "이럴거면 사회복지과나 특수교육과로 편입할까?"하고 진지하게 물었는데, 당사자 친구들이 두 팔 걷고 나를 말렸다. "그러지 않는 게 좋겠어."가 아니었다. "안 돼. 야아~ 제발 그러지마." 였다.
사람을 옹호하고 사회와 제도를 폭로하는 일이 운동이라면, 어떤 운동에든 둘 다 있어야 마땅하나 어쩔 수 없이 경중이 갈린다면 너는 후자를 더 열심히 하는 게 낫다는 뜻이었다. 그 외에도 '너처럼 자기 공간이 확실하게 필요한 사람은 오래 못 버텨'하는 나를 간파한 이의 충고가 있었고, 사회복지제도 안에의 관계 말고 친구로 오래 보자는 바람도 있었다. 스스로는 '(내 성향을 보건 데 백발백중)하다 말 것 같아서' 편입할 생각을 접었다.
열심히 해도 어느 지점에서는 "하다 말지 않았냐"는 말, 도움을 간구하는 사람에게서 적당한 지점에서 돌아선 것이 아니냐는 말, 제도를 폭로하고 바꾸지 못한 채 제도를 수행하는 역할을 하지 않았냐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일이, 그런 상황을 일선에서 마주하도록 제도에 의해 떠밀려진 직군이 바로 사회복지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힐튼 호텔옆 쪽방촌 이야기 - 우리는 양동에 삽니다>에 실린 저 문단을 읽으니, 내 또래의 한 활동가가 지났을 20년을 상상해보게 된다. 제도로 되는 것, 제도로 안 되는 것, 그럼에도 해야 하는 것들 사이에서 도움을 구하는 한 사람 사람을 잡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왔을 것 같다. 그가 최선을 다하고 상대가 그걸 알아주는 성취의 순간들과 나란하게 제도가 가하는 거절 앞에서 서로에게 야속하고 섭섭한 마음이 드는 순간들이 무수히 있었을 것이다.
그는 어떻게 상황을 견디고 버텼나. 요즈음의 그는 '같이 고생하면서 문제를 해결한 노숙인 분들에게서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이 끊기면 상처를 많이 받다 가도 '아 저 분이 나한테 미안한 마음이 있어 연락을 못 하는 구나'하고 헤아리게 되었다 한다. 어렵게 얻은 수급 자격을 지켜내지 못해서 연락을 못 하고, 기대만큼 달라진 모습으로 살지 못해 얼굴을 볼 면목이 없으니 봐도 못 척하는 사람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 한다.
수급 자격을 얻기 위해 애쓰다가 결국 일이 잘 안 풀리는 상황이 되어 “당신이 하다 말지 않았냐"하는 말을 듣게 될 때는 매우 섭섭하고 힘들었는데, 이제는 본인의 능력과 제도의 한계를 구분해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시간을 거쳐 마음을 쇠질하듯 다지며 버텨온 활동가의 고백이 아닐까. "하다 말지 않은 것" 곧 "해야 할 일을 다 한 것"은 어떤 것일까 하는 질문 앞에서, 혹은 "하다 말지 않았냐"는 말에는 어떻게 대답할지를 두고 괴로웠을 것 같다.
사람을 억압하는 제도를 폭로하고 사람을 옹호하는 일. 그 반대를 늘 경계해야 하는 일.
제도의 한계를 넘어 지경을 넓혀가야 하는 일.
혼자서는 어렵고 집단이 받쳐줘야 하는 일 앞에서 저 질문을 받을 때마다 외롭고 야속했을 것이다.
인터뷰에서는 다 말하고 않고 있지만 "아저씨가 하다가 말지 않았냐"는 말을 들을때,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은 집단이 받쳐줄 때만 할 수 있는 말, “그렇다면 이제 같이 해보자."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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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는 일을 생각한다. ‘국제개발’ 혹은 ‘국제협력’ 프로젝트를 수행할때 '해야 할 일을 다 했다'는 기준은 과연 어디일까. 기간, 재원, 수행의 내용이 정해진 프로젝트이다보니 대게는 공여하는 입장에서 하기로 한 일을 기간 내에 마치면 일이 종결된다. 사람들의 삶의 실제로 변화했는가, 그 변화가 충분했는가는 쉬이 평가하기 어려운 문제다.
그러면서도 내가 이동현 활동가처럼 "당신이 하다 말지 않았냐"는 말을 면전에서 듣는 상황을 맞닥뜨리지 않는 유일한 이유는 제도가 틀 지운 ‘거리’ 때문이다. 일이 충분히 잘 되어서야 아니라.
먼 나라에서 수행된 프로젝트의 이른바 ‘수혜자’ 들은 내게 호소하지 않는다. 호소하는 말, 실망을 전하는 말, 약속을 지킬 것을 요구하는 말, 권리를 주장하는 말은 현장의 동료들이 듣는다. 내게 이 거리는 일견 안전거리이지만 동시에 명확한 한계이기도 하다.
경력이 쌓이고 관여하는 프로젝트 수가 늘어날수록 점점 멀어지는, 들을 수 없게 되는 말에 대해 생각한다.
홈리스행동 생애사 기록팀이 노숙인들의 구술을 글로 옮겨 책으로 엮은 덕분에 들을 귀가 없는 나로서는 결코 생각해보지 못했을 세상의 결을 엿볼 수 있었다.
고로 듣기 위해서라도 받아 쓰는 노력이 필요하다. 흔히 질문하는 힘을 강조하지만, 들을 귀를 갖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들을 수 있다면 내가 답을 찾지 못하더라도 사람들이 찾은 답에 힘을 싣을 수 있다.
이 책의 공저자인 한 최현숙 선생님 구술생애사 강의를 수강 신청했다. 국내 구술생애사 기록자들의 현장과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현장은 다소 멀지만, 가까이 있는 이들의 말을 열심히 듣다보면 멀리 떨어진 이들의 말도 조금은 더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당신이 하다 말지 않았냐”하는 원망이 섞인 말일지라도, 말할 수 있고 들을 수 있어야 다음이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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