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현주 Dec 24. 2022

당신의 뜨거운 별

한 시절을 같이 한 사람들은 늘 애틋하다. 한숨, 좌절, 전망, 불안, 초조함, 다시 한 걸음 더 내딛는 시도까지도. 모든 행보에서 '그 사람'이 더 깊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간이 쌓일수록 더 좋고, 더 소중하고, 조금은 슬프고, 더 이해가 된다. 


어제는 한 시절 동료였던 친구가 새로 시작한 일을 발표하는 자리에 갔다. 


하나를 닫고 다른 하나를 여는 쉽지 않았을 결정. 그가 새로 시작한 일이, 이전에 그가 했던 어떤 일보다 그를 많이 닮아 있다는 걸 그는 알까. 


담담한 소개인데도 모든 문장에서 그가 왜 그 일을 골랐는지, 혹은 그 일이 왜 그를 찾아왔는지 설명, 혹은 납득이 됐다. 여기까지 오는 데 얼마나 고심하고 용기를 냈을까 싶어 애틋하면서도 자랑스러웠다. 저 쉽지 않은 결정을 하고, 오래 전 마음 먹은 일을 하는 데 점점 더 다가서고 있는 이가, 내가 깊이깊이 좋아하는 동료이자 친구라고. 


일이라는 게, 살아간다는 게... 수십개 오답을 쓰다가 정답 한 두 개를 발견하거나 만들어 내는 과정이라고 해야 하나. 혹은 오답이든 정답이든 그런 건 없고, 결국은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자기만의 답을 써가는 과정이라고 해야 하나.


"다른 사람이 알려준 정답과 자신이 선택한 오답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당연히 후자다. 사람은 오답을 선택하면서 그 자신이라는 한 인간을 쌓아 간다.”

장강명이 단편 <당신의 뜨거운 별>에서 했던 말.


같이 일하던 시절 우리는 함께 만들고 싶던 정답이 있었다. 처음부터 바라보는 방향이 맞았고, 서로가 있으면 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정작 일을 하면서는 오답을 훨씬 더 많이 쌓았는데, 안 가본 길 가보자고 작정했을때부터 얼만큼은 정해졌던 결론이기도 하다. 


꽤 긴 시간 동안 내가 한 헛발질을 지켜봤으면서도, 그 여파를 고스란히 나눠지고, 무엇이든 같이 하자고 말해 달라고 찾아 오고, 자기도 그렇게 하겠다며 일을 던지던 동료.


어제 친구의 발표를 들으면서는, 내가 그랬듯, 그 역시 앞으로는 한때의 답으로부터 점점 더 자유로워지겠구나, 새로운 이야기를 그답게 써나가겠구나 싶어 반가웠다. 


정답을 함께 쓰고 싶었던 사람과 오답을 더 많이 함께 쓴 사이로 남았다는 게 오래도록 아팠는데, 어제 알았다. 오답이 아니라 중요하고 소중한 한 장면을 함께 쓴 거다. 성취 또한 분명히 있었던. 오늘의 우리를 이뤄준.

이제부터는 고쳐쓰고 새롭게 쓰며 달라지는 이야기를 서로 지켜봐주는 사이가 될 수 있겠다. 그리고 나는 지금 팀을 이루는 사람들과 정답이든 오답이든 우리의 이야기를 또 부지런히 써야겠지. 후회가 없도록. 덜하도록.


서로의 여정을 지켜본다는 말이 어제처럼 다가온 날이 이제껏 없었다.

작가의 이전글 "하다 말지 않았냐"라는 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