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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와 돌멩이 Feb 13. 2024

편의점에서 음료 찾기

내면 작업 15

24.02.13



꿈 #1


서울 집 보일러 실에서 한 남자(유튜버 중 한 명으로 나온다)를 초대하려고 한다. 그런데 엄청나게 거대한 말벌들이 득실거리고 있다. 창문의 왼쪽 위로 그런 말벌들이 날아다니며 달라붙고 그런다. 그 남자를 간신히 집으로 들이며 나는 저걸 언제 다 치우나 하는 버거움과 어떻게 치워야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꿈 #2


나는 장승배기 어디 쯤에 한 빈 집을 갖고 있다. 이 집은 벽지부터 바닥까지 온통 아무것도 없는 집인데, 이 집을 꾸미기 위해 고등학교 친구들에게 칠을 해달라고 부탁한다. 집 구조나 방 갯수 등은 기억나지 않는다. 막연하게, 이 공간이 나의 전시 공간을 위한 공간이라는 걸 느낀다. 부탁을 한 이후 나는 내 일을 하다가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간다. 친구들에게 보답을 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처음에는 친구들에게 먹고 싶은 간식이 있는지 물어 리스트를 작성한다. 다들 각각 먹고 싶은 과자를 적는다. 그리고는 또 다시 방문을 해서 이번에는 아이스크림과 음료를 적으라고 요청했다. 친구들은 또 자신들이 먹고 싶은 걸 적는다. 실제 친구가 3명 나왔다. 이후 나는 친구들에게 마실 거라도 마련해줘야겠다 싶어서 근처 편의점으로 향한다. 그런데 편의점에 가는 곳마다 음료수가 없었다. 내가 찾는 건 시원한 이온음료나 그런 것인데, 정말 기발한 방식으로 각각의 편의점마다 오직 그것만 없었다. 이때부터 음료 찾기 여정이 시작된다.


 총 몇 개의 편의점에 들렀는지는 기억나지 않으나, 한 편의점에서는 애초에 냉장고가 없거나 있더라도 내가 찾는 것만이 없었다. 나는 지도를 보며 근처 편의점은 거의 다 본 거 같은데 하는 생각을 한다. 지도에서 '시청'이라고 표시된 곳 근처로 가야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너무 멀었고, 차를 끌고 나왔어야 하나 하는 아쉬움을 계속 느낀다. 편의점에서 음료 찾기를 실패할 때마다 이 생각은 더욱 불거진다. 동시에 다급해진다. 시간이 점점 지체되고, 너무 늦는 거 같다. 친구들에게 빨리 음료수를 주고 싶은 마음에 부채감이 더해진다. 기다리게 만드는 게 너무 미안하다. 그래서 나는 더 서둘러 편의점을 찾아 나선다. 이렇게 늦을 바에 차를 갖고 올 걸, 하는 아쉬움도 계속 든다. 한 편의점에 갔더니 대학 안에 있는 편의점 같았다. 별별 물건들을 다 즐비해놓고는 시원한 이온음료가 없다. 또 다른 편의점에서는 입장하는데 한 여자가 짧은 치마를 입고선 속옷을 입지 않은 채 다리를 들어 순간적으로 성기가 보인다. 나는 순간 못 본 척을 하며 그곳에 들어간다. 그곳엔 여자들이 많았고, 분위기가 음침했다. 서둘러 음료를 찾는데 한 선반을 열어 보니 먹다 마신 음료 병들이 즐비했다. 그걸 보자마자 여기가 편의점이 아니구나, 순간 알아차리고 이곳이 바Bar라는 걸 알게 된다. 분명 여기가 편의점이라는 걸 알고 있어서 의아하게 생각하지만 알고 보니 편의점은 지하에 있었다. 지하 2층과 1층으로 갈 수 있는데, 편의점은 지하 1층에 있었고 거길 찾아 간다. 막상 가 보니 냉장고가 없었다. 이후에는 약간 외진, 사이드? 길로 가야 해서 가게 된다. 비가 엄청 많이 오고, 인도가 무척 좁은데 가로수가 무성하다. 나는 나무와 잎을 헤치며 비에 쫄땆 젖는다. 도로의 차들이 무척 위협적이다. 귀퉁이에서 갑자기 순간적으로 나타나 사고를 당할 뻔 했다. 어두컴컴한 밤이었고, 나는 서둘러 길을 걸으며 뒤에서 가속 주행을 하는 차에 순간적으로 치일 뻔 하는, 위태위태한 여정을 계속한다. 무척 험난했으나 결국 어딘가에 도착했다. 이곳은 어떤 전시 공간? 같다. 예술가들, 작가들이 모여 있는 느낌인데, 꿈에서 나는 예술 하는 여자친구와 그 여자친구와 관련이 있는 어떤 중년의 여자를 알고 있었다. 그 공간에 가니 그 중년의 여자가 있었다. 결국 나는 음료를 구하지 못하고 되돌아가려고 할 때, 그녀가 으시대며 나를 교육시켜주겠다는 말투로 자기 차로 가자고 한다. 그녀는 자기가 반포 대교 쪽으로 간다며 나와 방향이 같다는 뜻을 내비추고, 시속 100km로 가겠다고 한다. 나는 처음부터 그녀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래서 그녀의 모든 말에 신뢰가 가지 않아 깔끔히 거절한다. 이후 분명하지 않으나 어떤 육탄전? 같은 대결이 있었던 거 같은데 잊어먹었다. 꿈의 시작은 밤 시간대로, 막바지에는 동이 틀 때였던 거 같다.






어제 아니마와 관계가 좋다고 말하고 난 뒤 꾼 꿈이다. 역시나 일이 이렇게 굴러간다. 사실 어제 엄마에게 자연의 일부라는 내용을 쓰고, 감사함을 느낀 뒤 집에 도착했을 때 엄마가 왜인지 살짝 심통이 난? 거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나는 이런 낌새를 느끼면 즉각 눈치 레이더를 돌린다. 뭐가 기분이 나뻤나? 무슨 일 있었나? 내 행동에 어떤 불쾌함이 있었나? 등등. 아마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이런 순간은 전혀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바로 이게 객관적인 상황일진데, 나의 경우에는 이런 희미한 '기분 변화'에 무척이나 예민하고 또 그 연관성을 찾아내는 데 특화되어 있다. 직관 능력과 버무려진 이 탐정 능력이 과도해지면 상대가 의식하지도 못하는 데서 어떤 '실체'를 찾아내려고 억지를 부리게 된다. 나의 경우엔 수 년간 담금질을 해놔서 어떻게 찾아내고 다루는지 나름 숙련도를 갖췄다고 자부하지만, 어제의 경우는 뭔가 묘했다.


 그래서 생각했던 게, 어머니의 아니무스였다. 사실 이런 얘기는 밖으로 꺼낼 만큼 설득력 있는 '현실 얘기'가 아니다. 마치 영적인 존재를 육감으로 감각하는 사람의 말을 듣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영매와 접촉해 어떤 살풀이를 해주는 타일러같은 고급 영매술사의 말처럼 말이다. 나는 그정도는 아니지만, 어제는 묘하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한 면에서 너무 어머니를 높게 평가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보상으로 무언가가 건드려졌다고 말이다. 이 알리바이를 감각한 채로 휴식을 취하다 잠에 들고는 말벌 꿈을 꾸고, 깨어났다가 미장에서 간만에 1,000% 파티가 일어나서 구경 좀 하다가 다시 잠들고 꾼 꿈이 편의점 꿈이다.


 일단 말벌들의 침입을 받은 꿈은 융의 말마따나 '벌레'가 나타난 꿈과 일맥상통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예전에 양봉 유튜버 프응을 즐겨 봤었는데, 거기서 벌의 생태와 말벌에 대해 여러모로 지식을 접했다. 그 쪽이 아니면 서울 토박이인 나에게 '말벌'에 대한 연상이 전무하다. 말벌은 잔혹하고, 두려움을 유발하고, 강력하다. 그들은 해충으로 분류되지만 포식이 아닌 모종의 이유로 꿀벌을 죽이는 것으로 보아 힘을 가진 균형 역할을 맡는 거 같다. 말벌의 비행에는 상승 습관이 있어서, 이를 이용해 덫을 만들어 놓기도 한다. 또 일반 벌에 비하면 무척 크다. 이 말벌 무리가 보일러 실 창문에 나타났다. 그들의 역할은 부패나 부식, 망가뜨림에 있지 않고 '접근 불가'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두려움을 유발함으로써 다가오지 못하게 할 뿐, 직접적으로 나의 재산이나 관계 혹은 신체 등 연관된 그 무엇에 대해서도 어떤 작용을 끼치고 있지는 않았다. 이를 토대로 융의 '벌레'에 대한 이야기를 보충하려고 한다.


 융이 다루는 내담자의 꿈에서 벌레는 목화를 망치는 주범으로 나타나고 내담자는 꿈 속에서 이를 사업으로 수행해야 하기에 무척 난감한 상황에서 현명한 조치를 취해야 하는 정황으로 그려진다. 이외에도 각종 연금술 상징이나 다른 책에서 벌레는 해를 끼치는 무엇이지만, 사실 좋은 것을 위한 나쁜 것, 상반된 것들의 한 면일 뿐이다. 즉 벌레는 일단 나쁘게 나타나지만, 좋은 것을 위한 나쁜 것이다. 이 '전반'에 대한 인식이 없으면 사람들은 나쁜 것을 다루는 태도에 있어 과도해질 수밖에 없다. 


 그랬을 때 말벌이 보일러 실에 나타나 내가 집으로 초대하려는 유튜버의 진입을 막음과 동시에 나로 하여금 '문제'로 나타난 건, 어쨌든 무슨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는 기본적인 맥락과 더불어 어떤 균형에 대한 두려움으로써의 경각을 느끼게 한다. 재밌게도, 나는 이 꿈을 꾸고 깨자마자 순간적으로 양치를 안 해서 신경쓰는 마음이 이걸로 나타났구나, 왼쪽 위니까 왼쪽 위 어금니가 충치 생기려고 하나 싶어 얌전히 양치를 했다. 말벌=꿀벌의 적=설탕으로 인해 생기는 충치, 이런 식으로 순식간에 연상이 된 것이다. 이 외에 내용에 대해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흥미로운 건 그 다음 꾼 꿈이다. 무대는 명백히 나의 유년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상도동 지역이다. 장승배기는 노량진과 신대방삼거리 사이에 있는 지역으로, 나에게 무척 인상 깊은 동네다. 또 한 달 전 볼일이 있어 간만에 가 잠깐 산책을 했던 기억도 있다. 그때의 산책도 나의 무의식적 산책이었는데, 유년 시절 갖고 있던 '골목 지도'를 상기하며 이리저리 골목을 돌아다녔는데 아파트 단지 공사 때문에 죄다 허물어져 있어 가는 길목마다 모두 막혀 있었다. 그렇게 갔다가 돌아오고 갔다가 돌아오는 우회를 거진 1시간이나 한 뒤에야 삥 돌아 올 수 있었다. 이럴 때마다 나의 정신에서 벌어지는 건 '이렇게 가면 더 빨리 갈 것 같은데?' 하는 마음이 실제 현실로는 '더 돌아가게 되는' 양상으로 펼쳐지는 국면이다. 이 구도가 꿈에서 자주 반복해서 나온다.


 편의점 여정도 이런 느낌으로 이뤄졌다. 다만 왜 '편의점'인가?에 대해서는 조금 희미하다. 그나마 가장 의심쩍은 알리바이는, 어제 집에 돌아와 엄마와 밥 차려먹고 설거지 하고 쓰레기 버리면서 담배도 살 겸 편의점에 갔는데, 예전에 먹고 싶었는데 조금 비싼 감이 있어서 아꼈던 과자가 세일하고 있어서 기분 좋게 샀던 일이다. 저번에도 사려고 했는데 점주가 GS PAY로 결제해야 할인된다고 해서 헛물을 삼켰기에, 이번에 점주에게 'GS PAY로 사야 되는 거 아니죠?'라고 했더니 아니라고 하면서 나에게 '귀찮아도 하세요~ 남들은 비싸게 사는데 이거 하면 싸잖아~'라며 영업 너스레를 떨었고, 나는 허허 웃으면서 편의점에서 나왔다.


 이게 도대체 왜 꿈으로 연결되어서 '편의점'에서 음료 찾기가 이뤄지는지는 구구절절 설명할 수는 있으나 조금 귀찮으므로 생략하려고 한다. 다만 '음료'는 아마 융이 말하듯 원형 이미지에 가까워 보인다. 친구들 3명에게 방을 칠해달라고 하는 건, 역시 만다라를 위한 초석 같다. 이번 꿈에서 문제 상황으로 나타나는 건 2개인 거 같다. 하나는 편의점에서 음료 찾기라는 여정이 어떤 구도로 그려지는지와 마지막 아니마의 제안을 어떠한 미진함도 없이 내가 깔끔히 거절했다는 것이다.


 꿈에서 지도를 보며 '시청' 쪽으로 가야 원하는 음료를 찾을 수 있겠다고 느끼는 대목은 만다라의 중앙으로 가야 내가 바라는 라피스를 찾을 수 있겠다는 걸 의미하는 거 같다. 하지만 그곳은 걸어가기에 너무 멀고, 나는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맹목적으로 직접 구하러 나선다. 예전 꿈들에서 정말 많이 느꼈지만, 꿈 속에서 내가 무언가를 구하거나 찾기 위해 돌아다니는 '여정'은 무척 끈질기고 장대하다. 나는 뭔가를 찾기 위해 정말 질릴 정도의 에너지를 쏟아낸다. 단순히 한두 군데 찾고서 포기하는 건 내가 아니다. 멈추는 건 찾을 때까지다. 난 절대 지치지 않고,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힘들어도, 험난해도 앞만 보며 간다. 그래서 그런지 여정이 무척 길다. 꿈 속에서는 이런 '자각'을 하지 못한다. 정말 맹목적으로, 개 같이 쫓는다. 그러다 보니 무수한 편의점을 들린 거 같은데 역시 내가 원하는 걸 쉽게 내어주지 않는다. 또 중간에 나오는 대학 편의점과 바 편의점은 이곳들이 상징하는 곳에서는 내가 원하는 걸 찾지 못한다는 걸 보여주는 거 같다. 대학 편의점은 나에게 퇴행과 맞물린 어떤 안전 지대 - 아버지 콤플렉스다. 나의 억압된 욕망 중 하나는 계속 학교를 다니며 공부하고 싶다는 것이다. 학교를 다닐 때 너무 좋았다. 아무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 현실에게서 간섭받지 않고 공부만 할 수 있다니! 책에 파묻혀 살 수 있다니!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면 충족감이 밀려온다. 하지만 나는 대학원을 포기해야만 했다. 학비를 어머니에게 부담시키고 싶지 않았고, 또 장학금을 받으며 입학하기엔 '대학 제도'가 나와 맞질 않았다. 변명은 아니지만 나는 성적 우수 장학금을 받아도 관심없는 과목에는 정말 과감하게 망쳤다. 그중 하나가 '헤겔 철학'이다. 헤겔 새끼... 나의 오래된 콤플렉스 중 하나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쇼펜하우어도 헤겔을 존나 싫어했다. 기질적으로 혐오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 중 하나다.


 여하간 대학은 내가 안전함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이지만 현실적으로 거부된 욕망의 공간이다. 그래서 꿈에서 자주 나온다. 그리고 여자 성기가 노출된, 여자들이 많은 음침한 바 편의점은 퇴행된 아니마 공간으로 여겨진다. 나는 그곳에서 목표를 잃고 휘둘리는 게 아니라 그저 일반적인 편견으로 스스로를 통제하며 해야 할 일을 했다. 만약 현실의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 퇴행된 아니마에 사로잡혀 사는 인간이었다면, 바 편의점은 곧장 매음굴로 변형되어 당연히 섹스를 했을 것이다. 음료고 나발이고, 방 칠해달라고 부탁한 친구고 나발이고, 그건 더 이상 문제가 될 수가 없다. 아마 한 번이라도 성매매를 한 남자라면, 이런 꿈의 대목에서 절대 깨끗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한 발자국이라도 정신의 오염에 발을 담궜으며,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하더라도 정신은 절대 그걸 '없던 일'로 여기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다만 꿈 속의 내 태도도 그다지 현명하진 않다. 성적인 본능의 영역을 너무 통제할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약간 리듬 주기를 보인다. 나의 열등 기능과 결부되어 나타날 수밖에 없으므로, (융도 이에 대해 잘 설명해주는데, 남자의 경우 자신의 열등 기능에 문제가 생길 경우 꿈에서 자주 '성적인 정황'으로 그려진다고 한다) 내가 일상 속에서 이 부분을 잘 다루고 있을 경우 꿈의 성적 정황도 편견 없이 흘러가기도 한다. 다만 지금은 그게 아니기 때문에 이 정도로 나타나는 거 같다.


 정리하면 바 편의점에서 원하는 걸 찾지 못하고 지하로 내려가는 건, 한 구도를 보여주는 거 같다. 그곳에서 발견한 먹다 마시고 남은 음료 병들은 정확히 파악되지는 않으나 왠지 희미하게 '집단적인' 성격을 가리키는 거 같다. 내가 원하는 건 그게 아니라 '시원한 이온 음료', 나의 부탁으로 인해 고생하는 친구들이 환영하며 받아들일 바로 그것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걸 찾아 그곳을 떠난다. 물론 지하 1층 편의점은 애초에 냉장고도 없었다. 뭔 편의점에 냉장고가 없어. 아마 이런 기발함들이 꾸준히 나오는 게 뒤에 아니마와 종합될 여지가 있어 보인다.


 이후 내가 '사이드 길'이라고 느끼는 폭풍우를 헤집고 나아가는 좁은 길은 나에게 무척 익숙하다. 나는 이런 정황을 자주 겪는데, 여러 위협을 느끼며 험난한 길을 헤집고 나아가는 그런 길이 끝나면 꼭 아니마가 나타난다. 이건 너무나 분명한 상징을 가리켜주지만, 지금으로선 딱히 언어화가 되진 않는다. 융이 이에 대해 분명 여러 방식으로 설명을 해줬는데 나에게는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거라 딱히 의식하지 않고 넘어갔다. 난 이걸 너무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에 지금도 크게 이상하게 느껴지진 않는다. 다만 '교통 사고 위협'은 좀 크다. 이게 뒤에 만나는 아니마의 시속 100km랑 연결되어 있는 거 같은데, 솔직히 갈피를 잘 못잡겠다.


 중년의 아니마는 내가 무척 불신하는 사람으로 나타난다. 왜냐하면 그녀가 나를 '가르치려고' 하는데, 나는 그녀에게서 배울 점이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바로 이 부분이 융이 말하듯 정말 중요한 국면인 거 같다. 아니마가 나에게 가치없게 느껴지는 사람으로 나타나는 건 정말 정말 오랜만이다. 어제 아니마와 관계 좋다고 그렇게 써놓으니 역시 무의식은 '적당히 해라'라는 느낌으로 바로 균형을 맞춰준다. 내가 아니마를 높게 보니 보상으로 이번엔 낮게 나타난다. 하지만 이런 구도보다, 꿈 전반적으로 내가 자립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나의 분신인 친구들에게 무언갈 '부탁'하고, 그에 따른 '보답'도 하려고 고군분투한다. 그러다가 아니마가 나타나 뭔가를 해주려고 하지만 그것도 거절한다. 솔직히 이걸 받아들이는 쪽으로 의식 교정을 해야 할까, 고민하지만 '자립'만은 놓쳐선 안 된다는 심정이다. 아마 아니마는 조금 낮은 수준으로 나타나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거 같다. '더 이상 운전하는 걸 겁먹을 필요는 없어, 내가 도와줄까?'


 그래서 일어나자마자 집안일 좀 하면서 엄마에게 이런 내용을 공유했다. 가십으로 엄마에게 이런 얘기를 꺼낼 때마다 엄마는 늘 꾸준히 별로 관심을 갖질 않는다. 그리고는 사이드 미러를 와이드로 바꾸고 주유를 하러 운전을 하는데 부착이 잘 안됐는지 주행 중에 왼쪽 사이드 미러가 떨어져 나갔다. 시발. 


 자동차와 운전에 대해서는 여전히 균형을 잡지 못하고 있다. 운전을 잘하고 말고가 아니라, 운전을 하는 집단 무의식 때문이다. 운전을 좆같이 하는 인간들이 너무 많고, 또 한문철 때문인지 사고에 대한 피해 의식이 너무 과도해져서 정말 정신적으로 너무 피로하다. 세상엔 죽고 싶어 안달난 것처럼 사고를 유발하는 사람이 너무 많고, 내가 조심한다고 사고가 안나는 것도 아니라 이 구도 위에서 과연 내가, 타인의 무의식에 너무 예민한 내가 그런 걸 무시하고서 운전을 할 수 있을 리 없다. 확실히 몇 달 전부터 계속 '오늘따라 도로가 사납다'는 느낌을 받아왔다. 어느 날에는 무척이나 안전한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사납다는 느낌을 받게 되면 나는 자연스레 긴장할 수밖에 없다. 최근에 사고를 낸 것도, 이 사나운 느낌 속에서 나도 모르게 의식의 긴장을 놓쳐서 난 것이다.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흘러갈 아주 사소한 추돌 사고였지만 났다는 것만으로도 내 무의식은 '이제 운전하지 말자'가 된다.


 여하간 정리하면, 무의식에서 분명히 무언가가 시작됐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정직하게 임하고 있는 거 같다. 차와 운전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운전의 집단 무의식을 받아들이기엔 아직 너무 버겁다. 그냥 맹목적으로 해야 되면 할 뿐인데, 어쨌든 문제는 다뤄지는 게 아니라 언제까지 꿈에서 계속 반복해서 나올지는 모르겠다. 중요한 건 이런 뒤집기다. 현실의 의식적인 내가 무언가 잘 되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느끼고 있다 치더라도 나의 무의식은 정반대의 상황을 보여주기도 한다. 또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이럴 때마다 휘둘릴 게 아니라, 상반된 맥락을 같이 두고 봐야 한다. 의식적으로 내가 나아가는 느낌이 들면, 나의 무의식은 반드시 아무것도 가닿을 수 없는 국면을 보여줄 것이다. 날 고문할 수도 있다. 이런 게 무의식과의 관계다. 20대 때부터 유지한 무의식과의 기본 태도 중 하나는, 무의식이 체험시켜주는 걸 감사히 여기는 마음이었다. 현실에서 누릴 수 없는 체험을 이렇게 겪게 해준다고? 그것 만으로도 지금까지 잘 지냈다. 다만 이제는 좀 더 숙련도를 길러야 한다. 집중해서 무얼 어떻게 다뤄야하는지의 분별력이 필요하다. 어제의 꿈을 통해 내가 초점을 맞추고 있는 건, '비합리적인 문제 해결'이다. 


 시원한 음료=라피스가 왜 편의점에만 있을 거라고 목을 맬까? 찾기를 멈추고 딴 짓을 하다 우연히 발견할 수도 있는데 말이다. 그게 시원한 음료가 아니라 존나 생뚱맞은 진흙일 수도 있다. 꿈 속의 나도 그렇게 유연해야 한다. 운전도 마찬가지 맥락으로 접근하고 다뤄야 할 거 같다. 집단 무의식에 나의 의식으로 맞서려고 하는 건 정말 어리석은 짓이다. 우회하고, 옆으로 부드럽게 빗겨가는 게 필요하다. 확실히 나는 합리성이 너무 발달한 사고 유형이라 그 반대로 다가가는 연습이 필요하다. 자립도 자립이지만, 미친 짓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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