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성이 아빠 Sep 01. 2021

말 좀 되는 아기

휴직 489일째, 민성이 D+738

'저, 강태공이 또 한 번 월척을 낚았습니다!' / 2021.8.27. 어린이집


요즘 민성이가 말하는 걸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말 이래 봐야 단어 몇 개를 계속 반복해서 내뱉는 수준이지만, 아이의 언어 능력은 확실히 날로 발전한다.


물론 그 변화는 매일 아이를 돌보는 엄마 아빠만 알아볼 정도로 미묘하다. 이래서 엄빠들은 늘 제 자식을 천재라고 하나 보다. 다른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엄빠에겐 분명 보이니까.


'주세요'에 이어 '아빠, 주세요'를 통달한 민성이가 - 도대체 저게 무슨 차이인지 부연하자면, 민성이 또래가 단어 두 개를 유의미하게 이어 붙여 말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 요새 많이 하는 말은 이거다. "아빠, 빼!"


민성이의 최애 간식 중 하나는 견과류인데, 그중 아몬드는 아이가 먹기엔 딱딱해서 항상 이건 아빠 거라고 말하며 빼고 준다. 그래서 찬장에서 견과류 봉지를 꺼낼 때마다 민성이는 말한다. "아빠, 빼!"


번역하자면, '아몬드는 아빠 거니까, 빼고 주세요'라고 할 수 있겠다. 어찌나 빼라는 말을 정확히 말하는지, 들을 때마다 웃음이 새어 나온다. 


이 '빼'라는 말이 아이 입에 참 잘 감기나 보다. 그는 이 말을 여러 상황에 응용하는데, 내가 양치를 시킬 땐 칫솔을 빼라고 하고, 할아버지가 제 과일을 뺏어먹으려고 할 땐 할아버지 손을 빼라고 한다. 


그는 또 두 단어를 이어 붙이면서 의사 전달을 더욱 명확히 하기 시작했다. 어제(31일) 부모님 집에선 할아버지가 자기 남은 밥을 먹었다며 '할배, 냠'이라고 했다. 민성이만 빼고 그 자리에 있던 어른들 모두 포복절도했다. 


민성이는 조금씩 숫자도 세기 시작했는데, 전자레인지나 엘리베이터 앞에서 아내와 내가 숫자를 거꾸로 세는 걸 많이 접해서인지 간혹 '십, 구'라고 말할 때가 있다. '팔, 칠'까지는 아직 어려운 듯하다.


휴직 전 제대로 앉지도 못하던 아이가 서고 걷고 뛰는 것까진 봤는데, 아직 제대로 말하는 건 못 봤다. 그건 아직 미지의 영역이다. 그 영역을 남긴 채 휴직 생활을 마무리하는 게 아쉽지만, 설렘의 영역으로 남겨두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 옆에 누우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