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491일째, 민성이 D+740
휴직을 쓰기 전 나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내가 1년 넘게 민성이를 보면 아이는 엄마보다 아빠를 더 좋아하게 될 거라고. 엄마는 별로 찾지도 않고 아빠 껌딱지가 될 거라고.
아내는 절대 그럴 리가 없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민성이와 자신은 절대 멀어질 수 없는 사이라고 그녀는 호언장담했다. 1년 4개월이 지난 지금, 누구 말이 맞았을까. 나는 틀렸고 아내가 옳았다.
그제(1일)였나. 저녁을 먹고 아내가 민성이와 퍼즐 놀이를 하고 있길래, 그녀에게 샤워 시간을 줄 겸, 민성아 아빠랑 할까, 하며 아이 옆에 앉았다. 그랬더니 민성이가 질색하며 손을 내젓는다. "아빠, 빼!"
자기는 엄마와 퍼즐 놀이를 하고 싶으니 아빠는 빠지세요,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서운함이 파도처럼 밀려오는데 옆에서 까불이 아내가 기름에 불을 붙였다. "이것이 육아휴직 1년 4개월의 결과인가!"
웃자고 한 얘기에 기분이 확 상했다. 그날 저녁, 나는 뾰로통해진 채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경험상, 이럴 땐 그냥 아무 말 않고 일찍 자는 게 낫다. 그럼 다음날은 기분이 괜찮아진다.
내가 육아휴직을 1년 넘게 썼다고 해서 민성이가 꼭 날 좋아해야 하는 건 아니다. 내가 잘해준다고 했어도, 아이가 느끼기엔 매일 출퇴근을 해야 했던 워킹맘 아내보다 못했을지 모른다.
혹은 내가 충분히 잘해준 거라고 해도, 아빠는 범접할 수 없는 모자간의 끈끈한 무언가가 있는 건지도 모른다. 애초에 둘은 한 몸이었고, 초기 애착도 단단히 형성돼있다.
뭐, 민성이가 날 더 좋아해 달라고 육아휴직을 쓴 건 아니다.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응당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다. 생각해보면 아이의 사랑은 보너스 개념이지, 반드시 담보되어야 하는 건 아니다.
그러니 너무 서운해하지 않기로 했다. 놀리는 아내가 야속하지만, 틀린 말도 아니니 그냥 웃고 넘기기로 했다. 어쩌면 육아휴직이라도 썼기에 아내에게 조금이라도 비벼볼 수 있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