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497일째, 민성이 D+746
어제(8일) 내가 즐겨 듣는 라디오 DJ가 말했다. 오늘 같은 날은 하늘을 안 보면 손해라고. 진짜 그랬다. 주말부터 이어진 흐린 날씨를 보상이라도 하듯, 그림 같은 하늘이 종일 머리 위에 펼쳐졌다.
이토록 화창한 날씨에 민성이를 품에 안고 어린이집에서 걸어 나오는데, 지금처럼 아이를 실컷 안아줄 수 있는 날도 며칠 안 남았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씁쓸했다.
사람들은 오랜 기간 해온 애증의 무언가를 마무리할 때 시원섭섭하다고 말한다. 육아는 내게 애'증'까지는 아니고, '애난(難)'이나 '애고(苦)' 정도는 되었던 것 같다.
500일의 육아를 정리할 때가 되니, 시원함보단 섭섭함이 더 크다. 물론 지나고 나니 그런 걸 수도 있다. 회사로 돌아가면 내가 가장 아쉬울 것, 그리고 생각날 게 뭘까. 그건 내가 앞으로 알아듣지 못할 아이의 일상이다.
민성이는 가끔 소방차를 가리키며 '까까 뿌뿌'라고 말한다. 소방차가 뿌뿌라는 건 어렵지 않은데, 도대체 까까와는 무슨 상관일까. 단언컨대, 우리 부부를 빼고 그 누구도 두 단어의 상관관계를 유추하지 못할 것이다.
아내와 내가 주말마다 민성이를 데리고 가는 대형마트 옆엔 소방서가 있다. 그래서 아이는 마트에 갈 때마다 장난감이 아닌 진짜 소방차를 볼 수 있는데, 까까를 사러 갈 때 보는 뿌뿌이기 때문에 소방차가 '까까 뿌뿌'인 것이다.
아이를 돌보다 보면 까까 뿌뿌 같은 게 많다. 아이와 일상을 공유해야만 알 수 있는 암호문, 나는 지금 그중 9할은 해석할 수 있다. 암호문을 해독할 때마다 민성이가 두 손을 맞대며 환히 웃는데, 그게 참 중독성이 있다.
복직을 하면 민성이가 하는 말을 점점 알아듣지 못하게 될 것이다. 지금과 달리, 아이와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같은 경험을 공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 말을 못 알아듣는 아빠가 야속할 테고, 그게 조금 슬프다.
길게 보면 휴직은 잠깐이다. 맞벌이 부부인 우리는 계속 출근해야 한다. 그러니 복직 이후에도 아이와 함께하는 순간을 차츰 늘려나가는 것이 지속 가능한 길이다. 섭섭함은 뒤로 하고, 앞을 보자. 암호문 해독이 9할은 안돼도, 5할은 넘을 수 있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