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장승포
글을 쓰고 싶은 나에게 첫 종이 책이 발간되었다. 거제 한 달 살기 중 에세이 쓰기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쓰게 된 글로 서점에 발행이 되는 책은 아니지만 기록물 형태로 참여자들에게 전달되는 책이다. 어쨌거나 나의 첫 종이책이다 : 왜 그렇게 글을 쓰고 싶은지 나 스스로도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가장 기대했던 에세이 쓰기는 마감일이 닥쳐서야 억지로 짜 낸 기억들로 밤새워, 흔히 말하는 '발로 쓴 글'에 가깝다는 게 한 없이 부끄러워지는 게 문제다.
10월 27일. 별 기대 없이 지원한 "다양 섬, 거제 - 로컬 라이프 편"에 선정이 되었고, 나의 생일날 선물처럼 국내 한 달 살기를 준비하게 되었다. 선정된 이후 어떻게 지내면 좋을지 참고하기 위해 1기 진행 시의 인스타그램 피드를 모조리 살펴보았고 추가 모집을 했던 것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기회가 또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던 찰나 1기처럼 추가 모집이 뜨자마자 요나에게 전화를 걸어 바로 지원하자고 알려 주었다. 통영 살이 체험형 여행 프로그램 당시 요나가 원했던 프로그램에 선정이 되지 않아 서운해했었기에 내심 마음에 쓰였고, 무엇이든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길 바랬었다.
혼자의 걸음도 좋지만, 함께 내려갈 친구가 생겨 한 달 살기가 더 기대되고 든든해졌다. 그렇게 요나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도시 <거제도>로 간다.
2020년.
디지털 노매드로의 삶, 한 달 살기를 원하는 여행자와 리모트 워커들은 점점 더 늘고 있다. 아마도 그 정점은 코로나로부터 촉발이 되어 더욱더 폭발적으로 늘어나지 않을까 싶다. 나에게도 언제, 어디서나 일할 수 있는 디지털 노매드가 되고 싶었고 여행을 통해 간접적으로 체험하기를 원했다. 대략 3년 전부터는 반달 살기, 한 달 살기를 꾸준히 시작하게 되었고 그 중심은 여행이었지만 다양한 사람, 다양한 생활을 체득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거제 장승포에서의 생활, 그리고 한 달 살기를 함에 주저함이 없었고, 그로 인한 추억을 나눌 수 있게 됐다.
"다양섬 거제 [아웃도어 라이프 편]"는 한 달 동안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었고, 각각의 선택과 필수 참여 프로그램을 통해 커뮤니티 안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려 한 달 간의 시간을 조금 더 풍부하고 의미 있게 보낼 수 있었다. 대부분은 평일 오후 시간으로 프로그램이 진행이 되었기에 생각보다 더 여유로운 일정으로 나만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절호의 시간이었다. 다만, 거제로 내려 간 다음날부터는 쏟아지는 잠에 정말 불면증도 무색하리만큼 신생아가 될 지경이었다. 누군가가 이야기했다.
"아마도 도시독(毒)이 빠져서 그럴 거야"라고, 처음 듣는 이야기였지만 꽤 그럴싸했다.
여행 후 쉬고 있어도 쉬는 게 아니었다. 애초부터 정해 진 것은 없었지만 이제는 취업이든 창업이든 해야 할 시간이라는 건 변함이 없을 것이고, 나이 많은 미혼 백수의 삶에 녹록지 않은 세상의 눈초리도 감내해야 하는 것이었으리라. 그런데 거제는 무엇도 바라지 않았다. 마음의 짐도 내려놓기 딱 좋은 공간, 사람, 시간을 갖게 되었다.
"이미 와 버린 걸 어떻게 해? 한 달 간은 충분히 즐길 거야! 오롯이 나의 시간을 가질 거야!" 이것이 처음 거제에 당도함과 내게 주어진 사명 같은 거였다. 말 그대로 좋은 변명거리가 생겼고, 조급해하지도 않아도 되는 시간이 생겨 버리자 몇 년을 불면증으로 고생했던 시간을 보상이라도 받듯이, 졸리고 또 졸렸다. 거제의 생활이, 스쳐가는 주민들이, 바다의 짭조름해짐도 익숙해지는 시간과 함께.
한 달 살기를 주관하고 기획한 그들은 항상 " 하고 싶은 거 하세요. 행복하면 됩니다."라고 말하곤 한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나만 즐기자, 나만 바라보자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커뮤니티 활동에 왔는데, 나만 행복하다는 건 의미가 있는 것일까? 고민의 꼬리를 물었지만. 최대한 참여하는 마음만큼만은 열정적으로 하자고 마음먹었다. 한 달이 지난 지금 이 시점에 떠올려 보자면 몇 가지 최고의 순간들이 있다.
에세이 쓰기. 에세이 북을 만드는 것은 글을 쓰는 것 이상으로 복합적으로 어려움이 많았다. 주제를 잡는 것부터 시간을 지키는 일련의 모든 과정들이. 사실 미루고만 싶었고, 더 이상 이야기도 떠오르지 않았다. 아마도 정의 내리지 못한 시간들의 과정을 나는 마무리 한 후 에세이를 쓰고 싶었던 것 같다. 4주 동안의 생활 중 3주 안에 탈고를 해야 한다는 게 꽤 부담이었고, 난 말 그대로 주제와 모든 이야기를 거제에서 지낸 생활에 한정 짓고 싶었다. 그렇기에 3주라는 시간이 너무도 짧았다. 아니 클라이맥스는 4주째에 나오리라는 약간의 기대와 바람이 있었는지도. 이래저래 한 달 살기가 끝나고 대략 보름 만에 책을 받아 보았다. 기분만은 정말 좋다.
"이래서 책을 쓰나?" 싶기도 하고.
서점에서 찾을 수 없지만, 나의 영원한 베스트셀러가 되어 있을 추억의 기록이니. 감사하다.
꿈 발표. "나의 꿈?" 분명 있겠지... 그렇지만 그것을 시각화하고 발표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이게 뭐라고, 꿈이 없어 보이는 게 싫어 대충 프레젠테이션을 만들어 가장 먼저 끝내려는 욕심에 가장 먼저 손을 들고 나이로 분위기를 눌러 '내가 먼저 할 거야'라는 눈빛을 발사하고 발표를 하게 되었다. 지금이라면 더 당당히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친구들의 생각과 조언을 들어 봤더라면 좋았을 것을. 아쉬움에 한 달 살기를 끝내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나만의 꿈 발표 자료를 만들었다. 보여줄 이는 없지만 말이다.
아마 이틀 만에 진행된 꿈 발표라 아직 관계도 맺지 못한 그들에게 나를 오픈할 필요는 없다거나, 감추려는 마음이 크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 봐도 부족했던 꿈 발표만큼이나 미성숙함이 오히려 더 성장할 수 있는 경험과 생각을 마주하게 되었으니 나름 뜻깊은 시간이 되었던 것만큼 확실하다.
해변 요가. "하하하, 꺄르륵." 얼마 만에 크게 웃어 보고 뒹굴어 봤는지. 난 그렇게 감성적인 사람도 흥도 많지도 않은 사람이다. 그런데 몇 년 만인지 세상 가장 큰 웃음을 지어 보았고, 친구들과 함께 해변에서 요가하는 그 공간의 냄새와 공기는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아니 잊고 싶지 않은 거다. 내가 사는 곳은 주변에 해변이 없다. 있다손 치더라도 언제 이렇게 친구들과 모여 함께 요가를 할 수 있을까 싶다. 역시나 친구들이 찍어준 사진 속에는 나의 여러 표정이 찍혀 있었고 지금도 소중한 베스트 사진이 되어 있다. 추억의 꼼지락 덕분일까, 아마도 요가를 사랑할 것 같다.
커뮤니티 미팅. 한 달이라는 시간은 셀 수 없이 많은 감정이 넘쳐흐른다. 그리고 다양한 환경과 배경을 가진 10명의 사람들이 모여 수많은 감정 교류와 행동들을 마주하게 되면, 부딪치다 못해 세차게 소용돌이치게 된다. 가끔은 오해와 전혀 다른 생활 방식으로 인해 문제가 발생이 되곤 한다. 커뮤니티 활동도, 취미 모임도, 회사와 가정에서도 그렇듯 다르게 살아온 사람들의 갈등이 발생이 되었을 때, 그것을 해결하고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규정과 그 틀 안에서 조율과 소통의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다. 갈등 해결의 방법에는 '다수냐, 소수냐'로 의견이 분분할 수 있다. 결국 귀찮아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일을 해결하는 것이 더 곪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더욱더 커뮤니티 미팅은 한 집단이 생활하기에 꼭 필요한 제도이고 시간이라는 데는 부정할 사람은 없어 보인다.
이 외에도, 양지암 등대 트레킹, 지심도 트레킹, 유자 막걸리 만들기, 지역 리서치/ 필름 카메라 찍기, 우드 카빙, 커뮤니티 식탁, 낚시, 캠핑요리 만들기, 칵테일 만들기, 홈커밍데이, 커뮤니티 워크 미션, 세컨드 빌리지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
거제 한 달 살기는 무엇이었을까?
한마디로 평온하고 따스했지만, 조용히 흐르던 파도도 감정의 소용돌이 앞에서는 세찬 파도로 돌변하기에 누구도 예상치 못한 항해를 하게 된다. 그렇게 생성되었다 소멸되기를 반복하지만 누군가에겐 꽤 아픔으로 느껴지리라. 커뮤니티 한 달 살기에서의 나는 힐링, 여행, 아웃도어 라이프도 중요하지만, 함께 한 달 살기를 하는 동료들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혼자만의 시간, 혼자의 자유가 최우선시된다고 하면 사비로 반드시 혼자 움직일 것을 추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누군가 크나큰 잘 못을 한 것도 아니다. 고작 몇 분 늦은 시간, 무엇이든 차려진 밥상에만 나타나는 주인공, 적극성이 없어 보이는 모습들이 쌓이다 보면 누군가에게는 그 행위가 공동체의 틀을 깨 부스는 것처럼 느껴졌으리라. 그럼에도 이해받길 원하고 남을 탓하게 된다면 그것이 바로 세찬 소용돌이가 되는 것이다.
코로나로 인한 백수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 운영하게 되었다. 역시나 공동체라는 것은 쉽사리 혼자 결정하고 진행할 수 없다 보니 타인의 행위를 제약하고 옥죄어 가게 되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창업이든, 프로젝트든 함께 진행하는 것은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을 하나로 묶는 것만큼이나 어렵다는 사실을 처절하게 깨닫는 중이고, 커뮤니티 한 달 살기도 똑같은 이치였다.
커뮤니티 한 달 살기 프로그램에 참여한 10명의 사람과 3명 + a 운영진까지. 딱 절반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무덤덤했던 거제 한 달 살기 동료들과 매니저들의 얼굴이 서서히 장난기를 머금어 갔지만, 며칠 새 차갑게 변해 가는 날씨만큼이나 무겁고 차갑다. 결국 내가 원하는 방향이 아닌 복잡하게 만들어지는 상황들이 생긴다. 혼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혼자가 아니기에 더 특별한 한 달 살기가 되는 것도 맞다. 반드시 사람과 공간에 대한 오픈 마인드와 열정이 그 틀을 깨 부스고 틈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한 달이 끝나고 서로 몇 번이고 부둥켜 앉고, 누군가는 눈물을 삼키며 돌아섰고, 누군가는 무뚝뚝한 말로 "빨리 가" 못내 아쉬움을 삼키는 사람, "또 만날 걸 알아"라고 웃으며 보내 주는 사람, 우리 모두는 아쉬움과 그리움을 수도 없는 안녕 인사를 해도 모자란 끈끈한 사람들이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자주 만나지 못해도 상관없다. 그만큼 한 달 이란 시간 동안 각자의 시간을, 함께한 시간을, 그리고 사람과 공간을 우리는 인생의 좋은 추억으로 남길 만큼의 아름다운 감정을 가지고 헤어졌음을 알고 있기에 너무도 근사한 한 달의 기회를 가진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 한 달 살기를 통한 다양한 감정, 다양한 사람, 다양한 삶의 방식을 조금이나마 표현해 보자면 ;
. 프로그램 참여도에 따른 사람마다의 감정이 다르다.
. 타인을 이해하거나 이해하지 않거나.
. 갈등이 발생이 되었을 때는 누군가는 공론화하기를, 누군가는 개인적으로 풀기를 원한다.
. 갈등의 해소 시간은 각자마다 다르다. 단,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이 한정적이다.
. 커뮤니티 식탁을 하며 사소한 트러블이 생길 수 있다.(음식을 해 먹는 행위는 단순한 요리 그 이상이다.)
. 나보다 상대방의 눈치나 마음을 더 챙기는 사람이 있다.
. 독단적인 사람이 있다.
. 자유라는 명목 하에 타의의 자유를 빼앗는 사람이 생긴다.
. 시간은 중요하다. 1분이어도 타인의 1분을 방해할 수 있다.
. 10명만 모아나도 편이 생긴다. 3명이라 할지라도. 유연한 태도가 필요하다.
. 기획자와 참여자가 섞이지 않는다. 아니 조심스러운 눈치다. "그럴 필요가 있을까?"라는 의문점.
. 한 달 살기 프로그램 공간 사용에 대한 주체가 아쉽다.
. 참여자의 나이는 만 19-39세로 제한되었고, 그래도 다양한 나이 때의 공감과 소통을 할 수 있다.
. 밤마다 모여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든다. 본인의 컨디션과 관리는 중요하다.
. 나의 관심사를 함께 나누고, 누군가는 진심으로 조언해 준다.
. 친구와 함께 참여했다면, 몇 년을 알았어도 또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다.
. 타인의 살아온 배경과 환경을 통해 다양한 삶을 엿볼 수 있다.
. 새로운 인맥이 생기며, 커뮤니티를 이해하게 된다.
. 여행이 삶이고, 삶이 여행이다.
어찌 보면 한 달간 당연한 일들이고, 너무 많은 기대보다는 흐름에 따라 최선을 다해 본다면, 그 조각들이 잘 맞춰져 근사한 그림으로 남지 않을까 한다.
거제 한 달 살기를 하며 이룬 것도, 시작한 것도 없다. 다만, 생각의 전환이 분명 있었고 변화 앞에 두려움은 없어야겠다는 확고한 확신을 얻었다. 그래서 내일이 기대된다. 그리고 거제에서의 공간의 경험은 내가 서야 할 무대의 지역과 다양한 사람들을 아우르며 꿈을 펼칠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시발점이 되었다. 체험형, 커뮤니티형, 힐링형 여행을 통한 다양한 생각들을 어떻게 공유할 수 있을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