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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렌파크 Mar 24. 2021


추웠다가 더웠다가 이러다 곧 여름이 오는 것은 아닌지.. 연일 희뿌연 하늘이다. 며칠 새 자욱한 안개처럼 하늘을 널따랗게 덮어버린 매캐한 하얀 막은 무지막지하게 전 세계를 땅 끝 밑으로 끌고 내려가 버릴 듯한 전염병 공포만큼이나 악질처럼, 숨쉬기에도 역한 내음을 잔뜩 머금은 미세먼지가 되어 한 치 앞의 건물조차 구분하기 어렵고, 모두 삼켜 버릴 듯이 기세 등등하다.


하루에도 나의 계절은 알 수 없는 온갖 풍파 속에 소용돌이쳤고, 춥던 마음이 다 녹기도 전에 흔들리기 시작한 30대 후반, 미혼 여성으로 대한민국을 살아가기 위한, 아니 버텨내기 위한 발악은 멈춰지지 않는다. 꽁꽁 얼어붙어 사늘하기 그지없다. 그 헛헛한 마음을 누군가 알아줄까 싶어 친구들을 만나러 전국 투어에 나섰고, 의령, 진주, 부산, 안동을 거쳐 양양 서피 비치에 당도했지만 남들이 바라보는 한 컷의 행복감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즐거워하는 나의 얼굴과는 다르게 하루 종일 머리를 굴리고 굴려봐도 답은 나오지 않는다.


"안녕하세요. 삶 기술학교입니다. 잠시 후 시작될 면접에 5분 후에 들어오시면 됩니다."

"제가 서울로 올라가는 중이라서요. 잠시 휴게소에 들를 거라서 한 5분 정도 늦을 것 같아요."

"괜찮습니다."


그렇게 정신없을 일인가. 주변을 탓하기 전에 부랴부랴 친구의 도움을 받아 Zoom 화상 미팅을 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하고 기다렸고 담당자의 승인을 받고 10여 분이 흐른 후에야 입장을 했다. 9명의 면접관과 스텝들, 그리고 참여자인 예경과 나는 다양한 질문에 돌아가며 답을 했다. 도대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스쳐가는 질문이 수도 없이 많았지만, 면접자라는 타이틀은 이내 주눅 들게 만들었고, 너무 튈 수도 없는 노릇이라 상당한 자제를 하며 최대한 웃음기 있는 밝은 얼굴로 보이려 애를 쓰며 얼굴 근육을 이리저리 굴려 내야 했다.  




"안녕하세요. 오시느라 고생 많이 하셨어요. 얼마나 걸렸어요?"

"한... 3시간쯤, 아니 그 이상 걸린 것 같아요."

"피곤하시면 방에 쉬다가 오셔도 돼요."

"아, 괜찮습니다. 저는 라운지에서 편하게 쉬면서 기다릴게요."


밀린 프로젝트를 체크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만, 처음 보는 사람들과 장소는 쉽사리 편해지지 않는다. 불편함 만큼이나 빨리 오티가 끝나기 만을 바랐다. 아이스브레이킹 활동과 간단한 소개를 끝내고는 마을 투어에 나섰고, 그로 인해 조금씩 사람들의 눈빛과 행동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색하지만 곧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은. 다행인 건 차갑고 언 땅 위에 새싹이 비집고 나오는 것처럼 그 모습들이 사랑스럽고 귀엽게 느껴졌다. 마을 투어 후 한산면에 정착한 청년들과 새로 참여한 참여자들은 술에 기대어 밤하늘에 해롱해롱 되며 엉켜져 숙소로 돌아왔다. 사진을 찍지 말라며 포즈를 잡는 엉뚱한 매력의 그녀들. 술에 취해 그 미세한 얼굴의 떨림을 기억이나 하려나.


이래저래 몸서리치게 싫은 어색함이란 존재를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빨리 깨 부스고 싶은 마음이다. 그렇지만 분명 그 안에서도 그 틀을 지키고 싶은 사람들은 있는 듯하다. 아마 이곳을 마칠 때까지 그 틈을, 그 틀을, 그 마음을 열지 못할 수도 있다. 각자의 계절은 우주의 섭리보다 더 예민한 존재이지 않는가. 적어도 서천 한산면에서는 말이다. 몇몇의 알 수 없는 표정들은 그동안 흔히 경험했던 그 수많은 인간들의 하나의 범주겠지, 이곳의 청년들이 우리에게 느끼는 진지함처럼. 내가 나 자신에게조차 다다르기 불편한 것들이. 우리라는 공동체에서 풍겨져 나오는 봄날의 흔히 펼쳐진 들녘의 소똥 냄새와도 같지 않았을까. 이래저래 맡기 싫은 내음이든 토악질 나는 냄새에 그칠지. 내 몸에서도 풍기는 어쩔 수 없는 이방인이다. 지금까지도. 그것을 어쩔 수 없음에 익숙한 내음으로 받아들여 줄지, 역한 냄새로 받아 줄지는 우리도, 그들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봄날은 내게 서천으로 데려다 놓았다.




나의 봄날은 찬란하기를! 이곳의 시간도! 그대들의 봄도!


뒷산 넘어 펼쳐진 구름과 산 정상의 빼꼼히 내민 정자가 내게 내어준 감성을 그대로를 느끼길 오늘도 바란다. 아니 내가 그 바람에, 그 공기에 물들길 바라본다. 아직은 모순 투성이인 이 공간이 내게 풀어줄 이야기와 감성들, 내가 그들에게 전해 줄 이야기와 따뜻하고 포근한 봄날이길 바라본다.



안녕!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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